001. 노을이 피는 언덕을 오르는 나는 초와 같다.
시는 정말 큰 매력을 지녔다. 감정과 감상의 응축,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수 없을때 짧은 문장의 시는 깊은 감동을 준다. 순간적인 메모에는 다 담지 못하는 깊은 감동과 감상을 짧은 시로는 담아 볼 수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 문학의 폐해(?)라면 폐해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시 자체에서 글쓴이의 의도나 시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 졸업 이후에는 정해진 해석과 답은 없다는 것도 한층 풍미를 더해 주었다. 너의 의견도 옳고 나의 생각도 옳다. 이 대전제를 가정하고 시를 볼 때 넓어지는 생각의 폭은 상상 이상 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글을 해석하고 누군가는 글 자체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감상을 이해하고 누군가는 ‘의견없음’ 그 자체의 감상을 낼 때도 있었다. 동일한 현상에 대해 개인마다의 순간적인 느낌들이 달랐던 것이고 개인마다 가진 카메라나 렌즈가 달랐으니 그 결과물도 달랐던 게 아닐까?
매년 연말연초에 다들 의레 하는 신년 다짐처럼 올해의 목표로 독서를 정했다. 올해는 무조건 독서에 흥미를 붙이기로 마음을 먹고 도서관을 가는 길이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어려움에 선뜻 보지 못했던 시집을 두 세권 정도 골랐고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을 읽다가 폐관 시간이 다 되어 읽던 책을 가방에 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에는 어제 온 눈이 다 녹지 않았고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은 응달이 진 골목길을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었다 골목 끝에는 조금은 허름한 시장이 있었다. 파란 대야에는 이름 모르는 나물들이 있었고 빨간 대야에는 과일들이 담겨 있었으며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는 동태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시를 읽고 오는 길이어서 그런가 이 광경 자체가 하나의 감동이자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몽글몽글 끌어오르는 감정을 가지고 집에 오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언덕길이 상당히 가팔라서 평소에는 불평 가득하게 오르는 언덕길이었다. 입김을 불어가며 300~400미터 가량의 언덕길을 다 오르고 나자 언덕 위 정면에 노을이 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저 아래에서 나를 봤을 때는 초와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 위에 핀 촛불과 같다.’,‘나의 마음에 시와 글에 대한 불이 붙었다.’ 2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핸드폰 메모장에 메모를 했다.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메모였다. 노을은 아름답게 저녁을 마무리하며 피고 있는데, 언덕길을 올라가는 나는 끄적임에 이제 막 불을 붙인 초와 같은 모습으로 저녁을 밝히고 있었다. 사진을 보정하는 것은 집에 가서 해야 될 일이었다. 집에 마저 돌아가면서 이렇게 보정을 할까? 저렇게 보정을 할까? 생각을 하면서 돌아갔다.
“ 서른 두살에 시가 궁금하여 도서관으로 갔다. 나약한 나를 알기에 서점은 가지 못했다. 걸어서 20분, 멀다 그리고 춥다. 아파트 숲을 지나 신축 도서관에 들어갔다. 평소에 관심만 있던 시집을 2권 골라 자리를 잡고 책을 봤다. 대출을 등록함에 머뭇거렸다. 그렇게 도서관을 나왔다. 아파트 응달에 가려진 골목길의 얼음은 아직 녹지 않았고 하얀 수염 부슬한 노인은 빙판에 넘어질라 조심스레 지팡이를 짚으며 옆을 지나간다. 바다를 담았던 눈을 그대로 얼린 하얀 동태는 바람따라 날리는 진눈깨비에 더 얼고 있고 옆의 아주머니는 푸성귀를 한 가득 붉은 그릇에 담아놓고 머리에는 고달픈 보자기를 썼다. 도서관으로 가면서는 미처 보지 못한 것들 달라진 것은 무엇인지 모르나, 달리 보임에는 무엇인가가 있었겠지. 5분만에 돌아왔다. 가볍고 뜨겁게 돌아왔다. 붉은 해가 지는 언덕길에 올랐다. 작은 초에 불이 올랐다. ”
MEMO: 돌아오는 길 언덕에서의 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생생한 골목길에서의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처럼 쓰기보다 이 순간을, 이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