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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현 Aug 04. 2018

4차 산업혁명과 융합

[4IR I.7] 4차 산업혁명 크게보기-7

   4차 산업혁명(4IR)의 특징을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또 4IR의 본질을 ‘융합’으로 설명하는 문헌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정작 4IR과 융합 간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 찾을 수가 없다.   글에서는 융합의 의미, 등장/발전과정, 미래 전망 등을 살펴봄으로써 4IR 시대에 융합을 어떻게 이해, 접근할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융합의 2가지 의미와 등장 배경

   융합(融合)은 일상 용어이면서 정책/전략 용어이다. 일상 용어일 때 융합은 ‘섞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퓨전(fusion)에 해당된다. 융(融)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字) 해 보면 왼쪽에 세발 달린 솥단지(鬲/력)가 있고 오른쪽에 벌레(忠)가 있는 모습이다. 융합은 이처럼 여러 가지 재료들을 완전히 녹여서 하나로 만든다는, 약간은 이상적(ideal) 의미가 담긴 용어이다. 정책/전략 용어일 때 융합은 ‘이질적 개체들을 연결/통합해서 가치가 더 커진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내는 혁신활동’을 의미한다. 앞에서 ‘개체’는 지식/학문, 제품/서비스, 산업, 사회 등 여러 가지 개념이나 기법, 사물 등으로 치환될 수 있다. 이때 융합은 영어로는 컨버전스(convergence, 수렴/收斂)를 사용한다. 컨버전스는 ‘여러 개체가 한 곳으로 모인다(또는 모으다)’는 의미이기에 融合에 비하면 실현가능성이 높은 작업이다. 필자가 얘기하는 융합(, 컨버전스)은 일상 용어가 아니라 정책/전략 용어이며 종래의 방식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신개념의 혁신’을 가리킨다.

   1970년대 말, MIT의 네그로폰테 교수는 방송, 통신, 컴퓨터, 미디어 등 산업  경계가 낮아지는 현상을 디지털 컨버전스라고 하였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ICT와 전통산업(예: 기계, 전자, 섬유, 금융)이 컨버전스 되어 디지털 제품/서비스/산업이 등장(즉, IT 융합 또는 산업융합)하였다.  이처럼 융합(이하, 컨버전스)은 과거에는 지식/학문, 기술, 산업 등에 등장한 ‘현상’, 즉 자연발생적(또는 우연에 의한) 혁신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목표 달성을 위한 의도적 혁신되었다. 예를 들면,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 기계공학+전기/전자공학+시스템공학)나 서비스과학(Service Science, 경영학+산업공학+전산학+심리학+수학+사회학 등) 같은 융합 지식/학문이나 바이오 컴퓨팅, 재생의학(Regenerative Medicine) 같은 융합기술(Converging Tech.)은 자연발생적으로, 또는 학자/기술자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EU, 우리나라 등은 융합기술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국가혁신 정책을 수립하였다. 선도기업들은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같은 융합제품/서비스를 개발, 출시하고 전통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린 융합산업을 일으켰다. 정부, 기업, 기술자, 연구자 등이 융합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복잡성이 커져서 한두 가지 지식/기술로는 풀기 어렵고, 소비자의 높은 기대/욕구를 기존 역량만으로 충족시킬 수 없으며, 기업 간 경쟁이 심화되어 제품/서비스/브랜드 등의 차별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융합 정책/전략의 등장과 발전

   1990년대 말까지 미래 유망기술로 IT에 집중했던 미국 정부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나노기술(NT)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참고로, NT는 기계, 전기, 전자, 화학, 물리학, 생물, IT 등이 결합된 전형적 융합기술이다.) 그 결과, 2001년에 국가나노기술사업(NNI: National NT Initiative)을 시작했고 2002년에는 이를 확장한 NBIC 융합 전략을 수립하였다. , 미국은 21세기 경제/사회는 원자(atom: 물질계)를 다루는 NT, 유전자(gene: 생명계)를 다루는 BT(바이오기술), 비트(bit: 디지털, 가상계)를 다루는 IT(정보기술), 그리고 뉴우런(neuron: 신경계)을 다루는 Cognitive Science(CS, 인지과학)의 창조적 결합을 통해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인지과학은 언어학, 신경과학, 철학, 인류학, 인공지능, 심리학이 융합된 학문이다.) 미국의 그와 같은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EU는 2004년에, 우리나라는 2008년에 각각 국가 차원의 융합기술발전계획을 수립했다. EU는 지식사회 건설을 목표로 NBIC에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추가한 NBIC+ 기술융합을 추진하면서 신기술이 환경과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였다.

   우리나라는 미국, EU와는 달리 융합 자체를 기술혁신뿐만 아니라 산업혁신 전략으로 보고, 자연과학/공학은 물론, 사회과학, 인문학, 문화예술 등을 융합기술에 포함시켰다. 우리나라 정부가 융합의 범위를 기술혁신을 넘어 산업혁신까지 포함한 것은 2007년 6월에 출시된 아이폰이 던져 준 충격과 오랜동안 정부 주도로 성장동력산업을 선정, 육성해 온 관행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의 융합 정책을 통해 융합기술개발과 융합 제품/서비스(예: 스마트 자동차/선박, 헬스케어), 융합산업(예: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스마트 그리드) 육성을 추진해 왔다. 또한, IT(또는 ICT) 융합산업융합에 대한 법/제도 정비, 추진조직 설치, 인력양성 등 인프라 구축도 추진해 왔다. 2013년 이후, 창조경제가 부각되면서, 또 2016년 이후, 정부/정치권에서 4차 산업혁명 논의가 확대되면서 융합 정책의 추동력이 크게 약화되었는데 이는 내내 유감스러운 일이다.      


융합의 미래: 사회/인류 차원의 혁신 & 체계적 융합

   2011년, 미국 과학재단(NSF)은 WTEC(World Technology Evaluation Center)와 함께 그간의 미국 내 융합기술 R&D 성과와 EU, 중국, 한국, 일본 등의 융합 추진 동향에 대한 조사분석을 시작해서 2013년 7월, NBIC2 또는 CKTS라는 새로운 융합전략을 제안하였다. CKTS 융합은 Convergence of Knowledge, Technology, and Society 즉, 국가 및 인류 차원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과 기술의 융합을 가리킨다. CKTS 융합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건강/복지 향상, 생산성과 경제 개발 증진, 사회의 지속가능성 달성, 개인과 커뮤니티의 권한 증대, 인간의 지식 및 교육 확장, 혁신적이고 공평한 사회 구현 등을 목표로 한다. NSF는 이와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4가지의 기술 플랫폼 즉, NBIC 융합기술(인프라), 인간활동 지원(human-scale), 지구/환경지원(Earth-scale), 그리고 공동체지원(society-scale) 등 플랫폼과 각각의 구성요소도 제안하였다.

   CKTS 융합 전략은 기술중심(technology-push) 정책으로부터 EU와 한/중/일 아시아 국가 같은 사회/시장중심(society/market-pull) 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NSF는 CKTS 융합을 위해서는 (그간의 기술융합, 산업융합 노력에) 사회융합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회융합(Societal Convergence)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즉, 정부, 기술/경제/사회 전문가, 일반시민)가 협력과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방식을 가리킨다. 독일의 ‘노동 4.0’ 정책은 사회융합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NSF는 CKTS 융합을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과거, 현재, 미래의 융합을 아래와 같이 3단계로 설명하였다.

  <1단계> 2001~2010년, 반응적(reactive) 융합: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한 파트너 또는 독립적 영역 간에 우연히 발생하거나 임의적(ad-hoc) 협업에 의한 융합

  <2단계> 2011-2020년, 능동적(proactive) 융합: 보다 명확한 의사결정 분석에 따라 일정한 원리를 갖춘, 보다 포괄적 접근에 의한 융합

  <3단계> 2020년 이후, 체계적(systematic) 융합: 전체적이고 고수준이며 다수의 영역을 대상으로 한 목표 달성을 위한 조직적 융합     


융합의 본질과 성공조건

   NSF는 CKTS 보고서(2013)에서 융합을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까지 이질적 요소들이 하나로 모이는 수렴(convergence) 과정과 새로운 시스템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산되는 발산(divergence) 과정이 반복되는 진화 과정’으로 정의하였다(아래 그림 참조).                        

융합은 수렴-발산이 반복되는 진화적 프로세스 (출처:  NSF/WTEC, 2013)

     

   ‘수렴 과정’은 새로운 기술/제품의 R&D 과정을 설명한 ‘혁신 깔때기’(innovation funnel), ‘발산 과정’은 신제품의 상업화 단계를 설명한 로저스(Rogers)의 ‘혁신 전파’(Diffusion of Innovation) 이론을 합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융합 R&D는 이질적, 개방적 환경에서 진행되는 다학제/학제간/초학제(Multi-, Inter-, Trans-disciplinary) R&D이기에 동질적이고 폐쇄적인 종래의 R&D와는 차이가 있으며, ‘혁신 전파’의 의미도 달라진다. 즉, 융합 제품/서비스는 한 가지 용도가 아닌 One-Source-Multi-Use가 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기획-설계되어야 하는데 이는 R&D에 참여한 여러 플레이어들이 함께 수행해야 할 과업이 된다. 이질성(또는 다양성)이 크면 클수록 이를 하나로 모으는 데는 커다란 비용/노력이 투입되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새로운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쉽고 또 빠르게 이용자/소비자에게 확산될 것이다. 융합은 일과성이 아닌 반복적, 진화적 과정이기에 ‘큰 성공을 위한 작은 시행착오(trial-and-error)’가 축적되어야 한다. 1990년대 이후 산업경제 시스템은 개별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간 경쟁으로 전환되었다. 융합 제품/서비스는 개별기업이 아닌 지식생태계가 축적, 공유하는 지식/경험과 R&D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의 성공 여부는 정부는 물론 특정 기업의 역량보다는 국가 차원 내지 글로벌 차원에서 구축되는 산업생태계의 유효성에 따라 결정된다.      


4차 산업혁명 vs. 융합

   4IR은 개념 측면에서는 융합혁명(즉, 융합기술이 촉발하는 경제/사회의 변화)의 부분집합이다. 기술 측면에서 4IR은 디지털 기술을 강조하고 있지만, 융합은 2000년대 초부터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NBIC 융합기술에 주목해 왔다. 4IR은 기술 중심, 공급자 시각에 머물고 있지만, CKTS 융합은 기술과 산업을 넘어 문제 중심, 수요자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만, 기술 쪽에서 시작했든 문제 쪽에서 시작했든 관계없이 4IR과 융합 모두 ‘인류 공영’을 궁극적 가치로 추구하고 있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지상의 모습을 1천 m 상공에서 내려다볼 때, 또 5천 m 상공에서 내려다볼 때 두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더 크고 높은 시각(즉, 융합)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면, 굳이 더 낮고 작은 시각(즉, 4IR)에서 미래를 바라다볼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 것은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드론 등 하나하나의 신기술이나 제품이 만들어 내는 변혁이 아니라 요소기술과 제품/서비스가 서로 연결되어 폭발적 시너지를 만들고 선도기업들이 시장과 산업을 선점하고 있는 변혁이다. 알파고 때문에 일반국민들까지 주목하게 된 ‘AI의 위협’은 실제로는 AI(딥러닝 알고리즘)는 물론, GPU라는 시스템 반도체, 이를 만들어 낸 NT와 소재기술, 센서, 슈퍼컴퓨터, 초고속 통신망, 빅데이터, 분산처리 등이 결합된 융합기술의 위협이고 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과 연구자들의 협업 네트워크가 만든 위협이다. 융합은 4IR을 촉발하는 원동력이면서 성공요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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