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IR I.8] 4차 산업혁명 크게보기-8
2000년대 이후 융합 논의에서 또 최근 4차 산업혁명(4IR) 논의에서도 다양한 스마트 시스템, 예를 들면 스마트 TV, 스마트 자동차, 스마트로봇, 스마트시티 등이 거론되고 있다. ‘스마트(Smart)’가 똑똑한, 멋진, 말쑥한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니까 ‘스마트 시스템’은 ‘똑똑한 시스템’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지만,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Wikipedia는 스마트 시스템을 ‘예지 또는 적응을 위해(predictive or adaptive manner) 가용한 데이터에 입각해서 특정 상황을 분석, 판단하고 필요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센싱(sensing), 구동(actuating), 제어(control) 기능을 가진 시스템’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스마트’는 폐쇄회로(closed-loop) 제어, 에너지 효율성, 네트워킹 등 역량을 기반으로 (외부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속성이라고 하였다. 스마트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5감과 신경계(즉, 센서)를 통해 외부 상황을 인지하고(즉, 센싱), 기억/경험 또는 데이터에 입각해서 적절한 대응방안을 탐색-선택한 후(즉, 제어), 자신의 몸이나 외부장치(즉, 액추에이터)를 움직이도록(즉, 구동) 명령(즉, 제어)하는 것을 본뜬 인공(artificial) 시스템을 가리킨다.
스마트 시스템의 센싱, 구동, 제어 기능은 각각 센서, 액추에이터, 제어기 등 구성품으로 구현된다. 센서(sensor)는 (1) 외부환경(예: 온도, 습도, 기압, 빛, 지자기)이나 (2) 관심 표적(target)의 형태/상태/동작(예: 크기, 속도, 가속도, 두께, 질량, 위치, 회전, 이동방향, 변형, 진동, 소리/음향, 이미지/영상, 냄새, 맛 등)을 측정해서 전기신호로 바꿔 주는 소자(素子)를 가리킨다. 센서는 금속, 반도체, 세라믹, 광섬유, 고분자, 생체물질, 복합재료 등으로 만든다. 제어기(controller)는 센서로부터 입수한 데이터/신호의 분석-판단-실행지시를 담당하는 장치를 가리킨다. 1969년, Modicon 084라는 최초의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는 종래의 아날로그 제어방식이 디지털 제어로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구동기/액추에이터(actuator)는 제어기로부터 받은 신호에 따라 실제 동작을 수행하는 HW나 SW를 가리킨다. HW 액추에이터는 공기(압력), 유압, 전기, 전자 에너지로 가동된다. 회전운동을 담당하는 전기모터, 직선운동을 담당하는 실린더, 공기나 기름의 양을 조절하는 밸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 열을 가하거나 냉각시키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형상기억합금(shape memory alloy), 폴리머로 만든 인공근육 등이 액추에이터로 사용되기도 한다. SW 액추에이터로는 제어기의 명령에 따라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앱/웹 프로그램이나 에이전트(지능형 SW)가 있다.
여러 가지 스마트 시스템을 단순화, 추상화(abstraction) 하면, 물리적 형상을 가진 물질/재료(materials)와 이들을 연결하는 논리적 프로세스,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으로 前者는 재료공학의 연구 대상이고 後者는 전기/전자공학(자동제어)의 연구 대상이었지만, 기술혁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통분모를 갖게 되었다. 즉, 물질 부분(즉, node)은 초소형화, 고집적화, 다기능화, 지능화, 저전력화 되고, 프로세스 부분(즉, link)은 연결-통합, 자동화/지능화, 디지털화되면서 하나의 시스템 기술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970년대 이후 디지털 제어방식이 보편화되고 1980년대 이후 MEMS(초미세 기계전자장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센싱, 데이터 저장, 제어 기능이 하나로 통합된 스마트 물질이 등장하였다. 1990년대 이후, M2M(Machine-to-Machine), (무선) 센서 통신망, IoT 등 기계-사물-사람 간 통신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외부의 지시나 도움이 없어도 구성품들이 실시간 수준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스마트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물리적 장치들을 아날로그나 디지털 방식으로 제어하기 위한 기술을 운영기술(OT: Operational Tech)이라고 한다. 이는 오랜동안 가상세계에서 논리적 계산/연산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어 온 정보기술(IT)에 대비(對比) 하기 위한 용어이다. OT는 아날로그 기반에서 디지털로 전환된 시점부터는 대상만 다를 뿐 IT와 공통부분이 많았지만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왔고, IT는 기계장치의 제어와는 거리가 먼 경영관리/사무 영역에서 프로세스의 효율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기계장치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OT는 IT의 데이터 플로우 기술을, IT는 OT의 컨트롤 플로우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OT에 속하는 기술로 PLC, SCADA, DCS, CNC 등이 있다. 최근 급속히 발전된 3D/4D 프린팅이나 메이커(Maker)를 위한 아두이노(Arduino)도 OT에 속한다. SCADA(Supervisory Control and Data Acquisition)는 제조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감독 시스템이다. DCS(Distributed Control System)는 높은 신뢰도나 안정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중앙집중식 제어기능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 것이다.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는 생산장비를 디지털 데이터로 제어하는 기술이다. 물질계를 다루던 OT가 가상계를 접목시켜서 시너지를 얻고자 한 것처럼, 가상계만을 대상으로 했던 IT도 물질계와의 접목을 시도하게 되었다. 유비쿼터스 IT(u-IT)는 가상계와 물질계를 연결하기 위해 등장, 발전한 융합기술인 셈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도처에 존재하는’이란 의미의 형용사로서 초소형 컴퓨터, 침투적(pervasive) 통신망, 센서 등이 현실세계의 사람, 사물, 공간 등에 내장되어 있는 환경을 가리킨다. u-IT는 1984년 동경대 사카무라 켄 교수가 유비쿼터스 네트워킹을, 1988년 Xerox PARC의 마크 와이저가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제시함에 따라 발전해 왔다. u-IT는 최근까지 개인생활(예: u-Home), 산업경제(예: u-쇼핑, u-물류), 정부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되어 왔다.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기기와 WiFi, LTE, 블루투스 등 이동/휴대 통신기술 발전, 그리고 2012년에 인터넷 주소체계가 IPv4(약 43억 개의 주소 가능)에서 IPv6(무한대의 주소 가능)로 전환됨에 따라 u-IT는 사물/만물 인터넷(IoT/IoE: Internet of Things/Everything)으로 확장되고 있다.
IT와 OT가 결합된 가상물리시스템(CPS)은 2007년 8월 미국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의 제안에 따라 2009년부터 과학재단(NSF)이 본격적으로 R&D 투자를 시작한 기술이다. 2011년에 시작된 독일 Industrie 4.0도 CPS를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로 꼽았다. CPS는 모든 스마트 시스템의 코어(core, 즉, ‘System of systems’)로서 물리적으로는 센서, 제어기, 액추에이터와 이들을 연결하는 통신망, 그리고 사람 또는 다른 장치와 상호작용하기 위한 인터페이스로 구성된다. CPS는 논리적으로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그리고 두 세계 간의 인터페이스로 구성된다. CPS는 두 단계 즉, ① 현실세계(예: 공장)의 개체들(예: 장비, 작업자, 공정)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정의하는 모델링 단계와 ② 현실세계가 가동될 때 모든 개체의 동작/상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서 가상세계에서 분석, 최적화 방안을 현실세계에 피드백하는 실행 단계로 나뉘어 구축, 운영된다. 현실세계를 그대로 모사한 가상세계를 디지털 트윈(twin)이라고 한다.
CPS의 부분집합이라 할 수 있는 IoT 플랫폼은 센서, 무선 센서 네트워크, 그리고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기동시키는 인터페이스 등으로 구성된다. IoT 서비스는 개인용 서비스(예: 가전제품 제어, 건강관리)와 산업용 서비스(예: 생산계획 수립 및 조정, 원격정비)로 나눌 수 있다. 산업용 서비스를 위한 IoT를 종래의 소비자 인터넷과 구분하기 위해 산업인터넷(IIoT: Industrial IoT 또는 Industrial Internet)이라고 부른다. 스마트 팩토리는 CPS 기반 위에서 공장 내의 가공장비, 치공구, 자재, 완제품, 작업자 등과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컴퓨터 내부의 디지털 트윈을 통해 분석, 최적화 함으로써 고객 주문(또는 주문 변경)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려는 미래형 공장이다. 스마트 팩토리는 대량맞춤/개인화(customization/personalization) 생산, 온디맨드(on-demand) 생산, 모듈화 된 공정, 유연/가변적 설비배치, 분산/협업 제조, 소규모 설비/자원을 이용하는 마이크로 제조 등이 가능한 공장이다. 한편, CPS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농축산임업 등 모든 산업의 생산-유통을 혁신하는 인프라로 활용될 수 있다. 즉, 스마트 의료/물류/유통 같은 스마트 서비스는 CPS 기반 위에서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된 개체의 상태/동작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화된 의사결정과 실행(예: 질병의 진단 및 처방, 재고관리, 타깃 고객에게 상황에 알맞은 판촉 메시지 발송)이 가능한 서비스이다.
u-IT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IT는 주로 기업의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지원수단(enabler)이었지만, u-IT는 제품/서비스 나아가 산업경제를 변화시키는 혁신주체(transformer)가 되었다. u-IT 등장 이후, 각종 센서와 초소형 컴퓨터, 통신망 등이 제품/서비스에 내장되거나 부가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IT 융합은 전 산업에서 ‘IT+제품’(예: 스마트카), ‘IT+서비스’(예: 인터넷/모바일 뱅킹), ‘IT+공정’(process)(예: MES, 제조실행시스템) 등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2000년대의 IT 융합은 주로 유/무선 인터넷, 데스크톱 PC, 웹 프로그램, 정형 데이터 위주의 DB를 활용했지만, 최근의 IT 융합은 모바일 기기/통신망, AI & ICBM, AR/VR, 로봇 등을 활용하고 있다. IT 융합은 4IR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혁신 방법론인 것이다.
4IR의 대표적 수단 내지 산물로 소개되고 있는 드론, 스마트 로봇, AR/VR 서비스 등은 IT 융합의 결과로 만들어진 스마트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선정한 성장동력 내지 전략 산업(예: 스마트자동차, 착용형스마트기기, 가상훈련시스템, 고기능무인기, 지능형로봇, 재난안전관리스마트시스템, 스마트 시티) 대부분은 IT에 수송, 의료, 교육, 환경, 재난/안전 관련 기술이 융합된 스마트 시스템이다. CPS를 포함한 스마트 시스템은 디지털 기술과 BT, NT, CS 등이 융합됨에 따라 개별 구성품의 지능화, 연결-통합 수준과 사람/사물 또는 타 시스템과의 상호작용 수준이 점점 더 고도화될 것이다.
스마트 시스템을 구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일까? 하나하나의 요소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지식/경험/기술을 ‘꿰는 기술'이다. 스마트 시스템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기업이나 개인/전문가는 없고 ‘여럿이서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공통의 목표/비전, 이를 구체화 한 시스템 아키텍처(표준 포함), 역할분담과 시스템 통합 방안이 포함된 추진체제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독일 Industrie 4.0은 RAMI 4.0, 미국 IIC은 IIRA(Industrial Internet Reference Model)이라는 참조모형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 참조모형은 물리적 기반(예: 장비, 컴퓨터) 위에서 실행되는 플랫폼 기능(즉, 센싱, 제어, 구동)과 그 위에서 운영되는 비즈니스 서비스(즉, 데이터, 작업,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등 스마트 시스템의 구성요소와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정의한 표준(안)에 해당된다. 이들은 산업용 IoT 표준이지만, 사실 상 CPS의 핵심기능에 대한 표준이라 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국, EU 등은 크고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할 때는 그러한 시스템의 운영개념(Concept of Operation)을 정의하고 이를 참조모형(: 설계문서)으로 구체화 한 다음, 참조구현(Reference Implementation: 프로토타입)을 통해 기술적/경제적 구현 가능성을 확인하는 식의 접근을 하고 있다. 참조모형 없이 만들어지는 시스템들은 중복, 낭비,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결여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기술, 인력, (성공 및 시행착오) 경험,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국내/외) 투자, 시간, 시장 등이 크게 부족한 우리나라가 공통 가이드라인이나 공유 플랫폼이 미비된 가운데 부처별, 지자체별, 사업별, 기업별, 산업별로 만들고 있는 스마트 시스템, 그것도 글로벌 시장이 아닌 국내용 시스템이 기술생태계, 산업생태계, 나아가 일반국민들에게 과연 어떤 효익을 주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