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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호영 Apr 10. 2016

우리는 왜 정치적 견해 표현을 터부시하는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유 찾기 

잠깐의 미국 생활과 종종 보는 미드나 영화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으로 나에게 다가온건 미국 사람들이 너무나 서슴없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는 모습이다. 서슴없이 특정 인물을 비꼬거나 비판하기도 하고, 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이 낯설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우리는 공개적인 자리는 물론이고 사적인 공간에서도 정치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 옳지 않게 여기거나 정치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기도 한다. 요즘 들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정치적 성향을 갖는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이 아닌 일부 운동권이나 혹은 정치적 야망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뮬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에 대해서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나만의 몇 가지 추론을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유교 관념이다.  조선 500년을 지배했던 유교는 지금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유교에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명확히 구분이 되어있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는 우매한 백성을 덕으로서 다스리고 백성은 그 덕을 통해서 교화되어야 할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높으신 분들의 '나랏일'이고 백성이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다. 나이 드신 분들은 종종 '대통령'과 '왕'의 개념을 혼동한다. 왕은 군주국에서 주권을 가진 존재이고,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한 존재임에도 '왕'과 '대통령'은 같은 존재로 여기고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치는 '나랏일'하는 높으신 분들의 일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국가에서 정치인들은 우리의 '대리인'에 불과한다. 그들은 우리의 왕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감시할 권리가 있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광복 초기의 좌우익의 충돌로 인한 혼란과 625 전쟁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인해서 형제가 서로 총을 겨누었고, 친구들끼리 총을 겨누고 싸웠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겪으신 분들에게는 정치적 견해 차이는 단순히 의견의 충돌이 아닌 폭력이 수반되는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싸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표현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의견의 차이로 인해 생명을 걸고 싸워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지 않거나 의견 자체를 가지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세상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한 이념이고, 정치는 이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방식을 결정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세 번째는 독재시대의 유산이다. 우리는 이승만 독재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군사 독재를 거쳐왔다. 독재 시절에는 말 한마디 잘못해서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가고 고문당하고 때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다. 1945년 광복 후 지금까지 70년 동안에 민주정부였던 시절은 20년이 조금 넘는다.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조용히 숨죽여서 살아야 하는 시절을 거쳐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아버지와 할아버지 밑에서 조용히 사는 법을 배워왔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 그러한 시절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네 번째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정치인 되는것에 대한 관심을 혼동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종종 사람들은 '정치인이 되고 싶어? 국회의원 나갈거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건 앞에서 언급한것 처럼 정치는 정치인만의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난 정치인이 되는것에는 관심이 전혀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고 그것이 정치인이 되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삶에 정치가 영향을 주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주권자로서 대리인들이 일을 잘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것은 당영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의도되고 만들어진 무관심이다. 가끔 CNN의 정치 관련 뉴스를 보다 보면 정책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검증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는 당연한 것이고 토론과 협상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방송에서 보여주는 정치의 모습은 언제나 싸우고 충돌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사이좋게 지내지 정치인들은 왜 싸울까? 국민들을 위해서 사이좋게 일하면 좋잖아' 이건 민주주의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싸워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을 대신해서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뽑아준 거다. 우리가 가진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라고 뽑아서 국회라는 곳에 보낸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정치인들이 견해 차이를 가지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싸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들에게 정치에 대해서 신경을 끄라고 주입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끄게 되고,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쌈박질이나 하는 정치인들과 동일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난 운동권도 아니었고 특별히 정치적인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사회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내는 세금 고지서, 전기요금, 국민연금에 영향을 주고, 우리가 여행할 때 타는 교통수단의 안전에도 영향을 주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나의 아이가 살아갈 나라의 모습에도 가장 많이 영향을 주는 것이 정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 나라를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정치인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좋은 정치인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좋은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을 기울이고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고라에 모여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치적인 토론을 하고 국정에 참여를 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꽃을 피었다.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가 도시국가에서 가능한 체제라고 배웠다. 이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비용이 급격히 낮아졌고,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법과 제도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점점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바꾸려고 하는 의지와 작은 노력이 있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뿌리를 극복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국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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