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래된 동네, 건입동
할머니 홀로 사는 집들이 많았다. 할아버지와 자식들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같았다. 영감은 몇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고 자식들은 육지에 나가 산다는 답변이었다. 한 집에 수도계량기가 두 개 있는 집도 있었는데, 하나는 이층에 사는 아들 네 것이라고 했다. 그 아들네 식구들은 놀러 가서 집에 없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혼자 살기에는 넓어 보이는 집도 있었고, 쪼개서 세를 준 것으로 보이는 집도 있었다. 집들은 대개 오래된 낡은 집이었다.
제주에서 태어나서 근처에 있는 국민학교를 1960년대 다녔다는 P에 의하면 원래는 초가집이었는데 나중에 슬래브를 치거나 기와를 얹어 고쳐진 집이라는 것이다. 제주 변두리 시골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돌담집도 곳곳에 보였다. 제주시 한가운데 있는 동네인데도. 그는 이곳을 '두맹이골목'이라고 불렀다. 초가지붕이 기와나 슬래브로 바뀌고 흙길이 시멘트 길로 바뀌었을 뿐,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했다.
제주의 모습은 이상했다. 아들이 결혼해서 분가하면 한 집에 살더라도 남과 같이 살았다. 부엌도 따로 곳간도 따로 식사도 따로 하는 것이 관습이라는 거다. 아흔 살에 가까운 할머니도 혼자 식사를 해결하며 홀로 살고 있었다. 심지어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알아듣는 할머니도 그랬다. 내 눈에는 '후레자식'들로 보였으나, 제주에서는 그게 관습이라고 한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자식들에게 한 줌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거다.
서너 달 전 어떤 기회로 제주대학 교수라는 분에게 '괸당문화'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여교수는 제주 백성들이 워낙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 부모 자식 간에도 독립해서 살게 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굶어 죽더라도 자신들만 죽겠다는 것, 자식들은 살도록 해야 한다는 현실이 관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커피가 한국에서 그토록 대중화되었는지에 새삼 놀랐다. 할머니들이 커피를 들고 나왔다. 어떤 분은 뜨거운 물에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을 주기도 했으나, 나이가 드신 할머니들은 예쁜 커피 잔에 탄 커피를 쟁반에 올려 정성스레 갖다 주었다. "쌀쌀한 날에 우리 동네를 위해 고생 많수다!" 심한 제주 사투리를 흉내 낼 수는 없으나 그런 뜻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어떤 날은 두어 잔의 커피를 억지로(?) 마시고 속이 쓰릴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없기도 했다. 마시고 싶지 않더라도 할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면 몰래 버릴 수는 없었다.
간혹은 무얼 마시겠느냐고 물어보는 예의 바른(?) 할머니도 있었으나 대개는 물어보지 않고 커피를 내다 주었다. 자신이 수확한 것이라며 밀감이나 홍시를 내오는 분도 없지 않았다. 허리가 잔뜩 굽은 채 지팡이를 짚고 골목길을 왔다 갔다 하는 할망(할머니의 제주 사투리)은 운동을 하는 것이리라. 연세를 물어보니 곧 아흔이 된다고 한다. 두 노인이 함께 걷는 모습도 가끔 보였다.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을 마주 잡은 채, 서로 어깨를 맞대고 천천히 걷는 노인은 아마도 운이 좋아서 함께 장수하는 부부일 것이다.
어찌 된 사연인지는 몰라도 빈집들도 있었다. 할머니 혼자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일까. 비교적 큰집에서는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이기도 했으나,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가 우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재개발되지 않는다면 구식 가옥에 사람이 쉽사리 들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사는 노인들이 작고하고 나면 누가 이곳에 살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제주에서도 위치가 좋은 곳이니 언젠가는 재개발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신제주가 들어서기 전인 4~50년 전에는 제주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았던 곳이었다고 P가 알려주었다.
그래서겠지만 빈집이 나오면 외지 사람들이 사둔다는 말도 들렸다. 비어있는 집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집은 담을 넘어 들어가 작업을 했다. 차가 드나들 수 있는 도로변에는 공사하는 집들도 많았다. 낡은 집을 헐고 2층이나 3층으로 새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런 곳을 제외하면 조용하고 한적했다. 인적도 드물고 차량동행도 많지 않았다. 과일이나 야채를 싣고 다니며 확성기로 장사하는 1톤 트럭이 가끔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아침이면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한편으로 주차된 차들은 많았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했던가? 어떤 노인은 곱고 품위 있게 늙은 반면에, 추한 모습으로 늙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고약한 인상의 어느 이웃한 노인은 서로 쌍욕을 하며 싸웠다. 자기 집 담에는 못 한 개도 밖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x만 한 새끼가 까불어!" "야, 개새꺄! 네 x이 나만해! 꺼내봐 새꺄!" 열 살짜리 코흘리개나 다름없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선한 눈망울과 고운 모습을 가진 자그마한 할망이 노란 액체가 담긴 종이컵을 놓고 갔다. "날씨가 고약하슨게 커피보다 생강차가 날거우다." 참 곱게도 늙었다는 내 말에 P가 응답했다. "혼자 사는 할망이우다. 할아방은 3년 전에 암으로 떠나고, 자식들은 대도시에 나가 살꾸다."
아, 그랬다! 외로움은 이민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로움은 모든 인간이 세월에 따라 겪어야 하는 숙명이다.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가 사람마다 달라서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죽을 때까지 점점 더 무겁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마주한 외로움에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차라리 이민자라서 덜 외로울지도 모른다. 기막힌 핑곗거리라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