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뉴스'라는 것이 있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땡'하는 아홉 시 시보와 함께 TV에서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첫마디가,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 하면서 그날의 대통령 동정을 첫 소식으로 전했기 때문에 붙여진 비하다.(Youtube) TV를 '바보상자'라고 비하하며, 멍청한 사람들이나 TV 앞에 앉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는 폭력적(?) 주장을 한 것도 '땡전뉴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서른 살 전후의 일이었으니까.
6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한국의 변한 모습에 감동이 여럿 있었다. 말단 공무원의 친절도 놀라움이었으나 더 큰 감동은 TV의 수준 높은 시사와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의 NHK나 영국의 BBC에도 견줄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뉴스 후'나 'WWW' 같이 꽤 괜찮아 보이는 시사프로그램이 하나 둘 없어지더니 새로운 다큐멘터리도 보이지 않았다. 뉴스도 편파적으로 변하며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만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는 사이 KBS나 MBC의 언론노조는 파업으로 대항했고 사측은 전보, 해임이나 파면 같은 인사로 맞섰다. 그중에서도 MBC 김재철 사장의 횡포는 압권이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정크나 다름없는 뉴스였고 30년 전의 '땡전뉴스'를 기억나게 했다. 자연히 TV에서 멀어져서 세상 돌아가는 일은 '이털남(이슈 털어주는 남자)'이나 '나는 꼼수다' 같은 인터넷 '팟캐스트'에서 얻었고, 신문이나 책을 통해 이해하는 게 더 정확했다. 국무총리실의 '장진수 주무관'은 내부고발하기 위해서 'PD수첩'이나 '추적60분'이 아닌 '이털남'을 찾아갔던 것을 보면 내 생각도 크게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지상파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렇게 된 원인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2008년 임기 초에 '미국 수입 쇠고기 항의 촛불집회'에 놀란 MB는, 그 원인을 '미국산 소의 안전성'을 다룬 'PD수첩'의 MBC와 자신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하는 인터넷 탓으로 돌렸다. 방송장악과 민간인 사찰을 통해 촛불집회 재발을 방지하려는 시도가 MBC사태와 국무총리실의 공권력 남용을 초래했다. 그리고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2011년 말 4개의 종합편성방송을 탄생시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일방적으로 하게 만듦으로써 박근혜 정권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JTBC', 'TV조선', '채널A'와 'MBN'이 그것이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요란하게 출범했고 그해 5월, MBC 출신의 손석희 씨가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으로 부임한다. 그가 돋보인 것은 2014년 세월호 사건 때로, 그는 팽목항에서 유족들과 함께 숙식하며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현장에서 생생한 뉴스를 전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불렀다. 그래서 시청하기 시작한 '뉴스룸'이었고, 모처럼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비평과 비판이라는 언론의 본질에 충실한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카페를 만들고 팔자에 없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분수도 모른 채 중구난방으로 천 편이 넘는 많은 글을 지난 6년 간 써 왔다. 몇몇 회원 분들로부터 과분한 칭찬을 받으면서, 주제넘게 글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는 생각도 했고, 글쟁이로 거듭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도 했다. 좋은 글을 보면 부러워서 어떡하든 흉내라도 내보려고 메모도 해두고 강의도 듣고 관련 책도 찾아 읽었다. 최근에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룸을 보면서, 내 재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도 못 내겠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저녁 8시에 시작해 90분간 진행하는 뉴스룸이 9시에 이를 즈음에, 손석희는 '앵커 브리핑'이란 걸 시작한다. 말로 진행하지만 글로 옮겨도 뛰어난 명문장이었다. 어제 그가 말한 요지는 이랬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저급한 나라에 고급스러운 시민"
얼마 전에 26살의 유시민 씨가 1985년에 쓴 '항소 이유서'를 보았다. 판사들도 돌려 읽었다고 소문난 그대로 대단한 글이었다. 26살의 나이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앵커 브리핑이야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쓰고 손석희가 검토하겠지만, 유시민의 글재주를 알아본 변호사가 직접 쓰라고 했다는 항소 이유서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썼음이 틀림없다. 자신의 징역살이를 결정하는 재판부에 비굴하지도 애걸하지도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다하며 소신을 거침없이 밝혔다. 게다가 재판부 너희들이 얼마나 저급하고 이성과 양심도 없이, 권력에 아부나 하는 형편없는 존재인지 비판까지 더했다.
주눅 들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지? 지난 60 평생에 그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힘 있는 자에게는 항상 납작 엎드렸고 불의를 보거나 부당함을 당하고도 웬만하면 저항하지 못했다. 기껏 했다는 게 늦은 나이에 택한 이민이었다. 즉 도피이자 회피였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당당하고 떳떳하고 싶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저들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낀다. 불의와 부당한 것에 저항하고자 매주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나서는 젊음이 몹시 부럽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손석희가 전하는 앵커 브리핑이나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솔직히 뭣 때문에 글을 쓰는지 자괴감마저 들어 생각을 어지럽힌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글이 된다. 생각은 신념의 산물이다. 소신이 뚜렷하지 않은 탓에 모든 것이 흔들린다. 수구초심이다. 내가 손석희나 유시민이 아닌 이상 그들의 글을 쓸 수는 없다.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꾼다.
정권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종편이, 정권의 궤멸에도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는 아이러니에서 세상의 이치를 본다.
▼ 어제 방송된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
▼ JTBC의 공정보도가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시민들이 편파방송에 지쳤는지 보여주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