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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Sep 02. 2016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3)

성인발달연구(Study of Adult Development)

연구에서는 노인을 세 종류로 구분했다. 젊은 노인(60~69세, Young Old), 일반 노인(70~79세, Old Old), 고령 노인(80세 이상, Oldest Old)으로 나눴는데, 책을 집필한 시점에서 '이너시티 집단'은 젊은 노인, '그랜트 집단'은 일반 노인, '터먼 집단'은 고령 노인에 해당했다. 이 세 집단의 성격을 구분하면 다음 표와 같다.

<세 집단의 특징 비교>

이너시티 집단은 처음에는 '청소년 범죄'를 연구하는 목적으로 선택된,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의 대조 표준 집단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과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그들과 같은 학교에 다녔다. 4명 중 1명은 2년 이상 유급을 했고, 범죄 소년들과 비슷한 범죄율이 높은 거주지역에 살았으며, 부모들은 대부분 이태리,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출신의 이민자들이었다. 1940년 당시 보스턴 지역 하우스의 16%만이 욕조나 샤워시설이 없었던 것에 비해, 이들 가정은 절반 이상이 샤워시설이 없었다.


그랜트 집단은 이너시티 그룹과는 달랐다. 그들은 전부 백인이었으며 조부모들도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났을 정도로 이민자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들은 징집되었는데, 신체적 사유로 11명, 정신의학적 사유로 3명만이 결격 판정을 받았다. 당시 미국 평균을 적용하면 그 숫자는 77명과 36명이 되어야 했다. 이는 이들이 미국 전체 평균에 비해 뛰어난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를 지녔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거두어, 아버지 세대보다 신분이 더 높아졌고 더 많은 부(富)를 이루었다. 민주당 지지자가 훨씬 더 많았으며, 1954년 당시 매카시 청문회 지지자는 (지지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리는 사회분위기에도 불구하고) 16%에 불과했다. 1968년 베트남전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정책에 91%가 지지했다. 이들의 취미나 생활양식, 정치적 견해는 대학교수 수준의 지식인들과 비슷했다. 또한 75세 이전 사망률도 백인 평균의 절반에 머물렀고, 60%가 80세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국 백인의 평균은 30%에 불과했다.


터먼 집단은 천재 아동을 연구했던 스탠퍼드 대학의 교육학과 교수 루이스 터먼이 1922년에 시작하여, 4대에 걸친 연구자들에 의해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1987년 스탠퍼드 대학의 4대 연구원인 교수들의 도움으로, 672명 중에서 90명의 명단과 연구자료를 받아 성인발달연구에 포함시켰다. 면담을 시작했을 당시, 29명은 이미 사망했고 21명은 면담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서 40명만 인터뷰했다. 그들이 평균 연령은 78세였다. 이들은 유머와 상식이 풍부하고 인내심과 리더십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학생 시절에도 비교적 인기가 많았으며, 그랜트 집단과 마찬가지로 미국 백인 여성의 평균에 비해 80세 미만 사망률도 절반에 그쳤다. 면담하지 못한 50명의 삶도 남은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서 지었다. 


지난 글에서 앤서니 피렐리의 사례가 주는 교훈으로, 인생의 노후가 중요한 것은 결과가 비참했던 유년기와 고생스러운 청소년기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편집된다는 사실이다. 업그레이드된 인생의 장밋빛 긍정 효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세대가 어릴 때의 추억을 분홍빛으로 덧칠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버지가 사 온 수박을 시원하게 만들어 먹으려고 '어름' 심부름을 다니던 것조차 그리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일 거다. 설탕이 없어 사카린으로 달게 만든 수박화채를 함지박에 넣고 온 식구가 달라붙었던 그 시절이 정말 그리워서 돌아가고 싶은 아닐 거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 30평 대의 아파트에서 그럭저럭 괜찮게 살았던 소년 시절 기억을 갖고 있는 젊은이가, IMF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혹은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린 부모의 병환을 치료하느라 가산을 잃고 '지옥고(반지하, 옥탑방이나 고시원)'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자기 평생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두 번 다시는 30평대 아파트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낀다면 어떨까.


게다가 사회는 온통 가진 자들의 반칙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 않는가. 부족한 실력에도 부모의 권력 덕으로 로스쿨에 입학하고, 군대생활은 꽃보직으로 호강하고, 국회나 정부에서 손쉬운 아르바이트로 귀족 스펙을 쌓는가 하면, 탈세나 횡령을 하고도 전관예우 변호사를 돈으로 사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고, '갑질'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약자에게 자행되는 현실에서, 그래도 6~70년대에 비할 수 없이 좋아진 세상이니까, '헬조선'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반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정당할까. 이렇게 좋아진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절망할 수 있느냐, 동남아시아 저개발국의 생활상을 봐라,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몇 년씩 남의 나라에 가서 가족도 못 보고 하루에 15시간 노동하는 네팔의 젊은이도 있다고 달래고 어르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뉴저지 '덴빌'이라는 동네에서 '바이레벨'이라는 구조의 4 베드(침실) 3 베쓰(화장실) 이층 집에서 살았다. 쇼핑을 하고 난 후, 차를 게라지에 넣고 아래층과 통하는 문만 열면 큰 냉장고가 있었다. 나중에 먹을 것은 그곳에 넣고 금방 먹을 것은 이층에 있는 부엌 냉장고에 가져다 넣었다. 사정이 생겨 2004년 브리지워터라는 동네의 2 베드 2 베쓰 콘도로 이사 갔다. 쇼핑한 것을 두 손에 잔뜩 들고 이층까지 낑낑대고 날라야 했다. 정말 불편했다. 그러다 2009년 캘리포니아 부에나 팍 아파트로 이사 갔다. 이건 콘도 정도의 불편이 아니었다. 50미터 이상 떨어진 주차장에서 아파트까지 쇼핑한 물건을 나르려면 따로 카트가 필요할 정도로 불편은 더해졌다.


다운그레이드 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심약하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정도의 작은 불편에도,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극복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2014년 2월에 있었던 송파구 셋방에서 자살한 세 모녀를 나는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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