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디지털의 반대 개념은 아날로그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아날로그 밖에 몰랐던 세대가, 디지털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게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대학시절 후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디지털 공학’이라는 과목에서 부울 대수를 배웠는데 사뭇 낯설었다. ‘1’과 ‘0’만으로 수를 만들고 계산을 하는 것인데, 산수인지 수학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공부하라고 사준 휴대용 계산기를 전당포에 잡히고 술 마셨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사회에 나와서 처음 컴퓨터를 접했으니 입문과정이 쉬울 리가 없었다. 내가 처음 본 11MB짜리 하드디스크는 작은 냉장고 크기였고 전원을 넣으면 디스크가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몇 분을 기다려야 데이터를 읽을 수 있었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더 작은 메모리에 100GB 이상의 용량을 가진 지금이나 40여 년 전의 하드디스크나 변함없는 것은, 그 안에 저장되는 내용은 ‘1’과 ‘0’이라는 기호뿐이라는 것이다.
컴퓨터 안에서 처리되는 모든 내용은 ‘1’과 ‘0’로만 구분된다. 사진, 소리, 동영상이나 문자 같은 데이터는 물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이 ‘1’과 ‘0’로 이루어진 데이터를 그림으로 보느냐, 소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글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한 것은 디지털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컴퓨터 회로 안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1’과 ‘0’의 디지털은 어느덧 컴퓨터 밖으로 나와 세상과 함께 하고 있다.
부울 대수는 논리 함수라고도 일컫는다. 논리에서 ‘1’은 ‘참’으로, ‘0’은 ‘거짓’으로 읽히기도 한다. ‘참’과 ‘거짓’만 있을 뿐 중간은 없다. ‘유’와 ‘무’, ‘부자’와 ‘빈자’, ‘승리’와 ‘패배’,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편’과 ‘반대편’의 이분법만이 지배하는 세상은 양극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번 주 미국 백악관의 주인이 바뀐다. 퇴임에도 불구하고 55%의 지지를 받는 오바마와 취임 직전임에도 44%의 역대 지지율 최저치를 기록한 트럼프는 양극화의 본보기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오바마케어와 TPP 협정 폐지를 선언했다. 상원과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오바마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오바마케어를 트럼프는 가장 시급한 적폐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누구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극단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미국만이 아닌, 유럽이나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적 현상이다. 지금 살고 있는 한국도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뒤질 리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놓고, 문화체육계 인사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하여 지원정책에 차별하는 기준을 삼았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장관은 후임도 정하지 않고 며칠 후 경질했다. 그녀에게 ‘1’이 아닌 것은 모두 ‘0’이었던 것이다.
나는 컴퓨터 게임을 거의 하지 않지만 아들 녀석은 어려서부터 게임기와 컴퓨터를 갖고 살았다. 꼬맹이 때는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을 했고 미국에서는 중학생 시절 무슨 스트라이크 어쩌고 하는 게임을 했다. 녀석이 하는 게임이 신기해서 구경을 했는데,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였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다. 새로 시작하거나 끝까지 살아남아서 스테이지를 통과하거나.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를 산 세대에게는 ‘승자독식 – Winner takes all.’이 더 익숙한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금껏 살아온 시각으로 접하는 뉴스와 경험하는 세상이 많이 불편했다. 천편일률적인 아웃도어 스타일의 옷을 입고, 염색과 성형을 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이 어색하기만 했다. ‘수구꼴통’이니 ‘종북좌파’니 하며 서로 손가락질하며 색깔공세를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한창 숨바꼭질이나 소꿉놀이를 하며 놀아야 할 아이들은 태권도, 미술, 피아노, 교습학원으로 몰려다녔다.
아날로그의 시각으로 디지털 세상을 보았던 것이다. 디지털 세상은 게임을 하듯 한 스테이지를 통과하면 다음 단계만 있을 뿐이다. 통과한 스테이지는 다시 되돌아볼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들은 그렇게 성장했고 그렇게 배웠으며 그렇게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에만 집중하며 디지털 세상을 살아간다.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디지털 선진국인 한국이 특히 심하다. ‘혼밥’과 ‘혼술’을 하며 SNS 상에서 소통한다. 지하철에서 앉거나 서서, 혹은 길을 걸으며 스마트폰의 화면에 집중한다.
시스템 운영자와 관리자로서 매뉴얼을 읽으며 평생을 살았다.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세미콜론 ‘;’을 넣을 곳에 콜론 ‘:’을 써도 시스템은 동작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All or Nothing’이었다. 전문가가 되거나 무능하거나 그게 내가 아는 디지털 세상이었으며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유능하다는 평가도 곧잘 받았으나 갈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세상에서 빠져나온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세상이 온통 디지털화되어 있었으니까.
컴퓨터도 없고 모두가 가난했어도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없으며 그래서 내편이 아니거나 패배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혼밥'이나 '혼술'이라는 이상한 말도 없이 한데 어우러져 살았던 아날로그 시대가 때로는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