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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번뇌 Mar 21. 2022

신촌 길바닥에서 채소 파는 사람들

사이드 프로젝트 시작부터 길바닥에 나앉은 건에 대하여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이번 사이드 프로젝트는 술자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술자리에서의 약속은 대부분 후회를 불러온다지만...  처음 이야기를 했던게 2021년 3월,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의 대화를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최A : 지난 주말에 망원시장 가니까 애호박을 500원에 파는거야!
최B : 오, 대박! 그걸로 뭐 해먹었는데?
최A : 두부도 같이 사서 된장찌개 해먹었는데 아직 두부랑 호박 다 남음... 혹시 필요해?
최B : 응, 좋지! 근데 진짜 망원시장 싸서 좋은데 매번 먹다보면 혼자서는 처치 곤란이야.
최A : 그니깐.. 주변에 그런 사람들 모아서 n빵하는 서비스 누가 해줬으면 좋겠다.
최B : 너가 해봐, 내가 도와줄게 굳굳
최A : 진짜지? 다음주에 언제 시간돼?
최B : 응...? 


여기서의 화자 A,B는 지난 글 '회사에서 당당하게 투잡하는 법' 에서도 언급했었지만 프로젝트메이트이자, 입사동기이자 퇴사동기이자, 최씨 두 명(본관은 다르다는 tmi)임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이다. 위의 대화는 재구성임을 감안해도 다소 극단적이고 현실감이 없는 픽션이라기엔, 놀랍게도 분명 한 번씩 언급되었다는 팩트뿐이라는게 더욱 넌센스랄까...


각설하고 이렇게 최씨 A,B는 애호박 하나로 시작해서 창업, 투잡, 소셜임팩트 등의 굵직한 이야기들을 몇 시간 동안 하기 시작했고 결국 일단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둘 다 동의하게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첫째, 둘 다 잃을게 없었다. 초반에 투자할 것이라곤 그저 시간 뿐 따로 돈 들어갈 곳이 크게 없었다. 감사하게도 회사 인프라 중 놀고 있는 신촌의 공간 사용을 허락 받았고, 재료비를 포함한 기타 비용은 개인 당 얼마 되지 않았다.

둘째, 그냥 재밌을 거 같았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한정될 수 밖에 없는데 각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고 보완해보자. 당연히 현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잘 되면 더욱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게 서로는 훗날을 약속하고 술자리를 마무리했었더랬다. 물론, 장밋빛 미래를 술김에 마음껏 펼쳐본 것은 서로에게 맡겨둔 소중한 비상금인듯 모른채했었지만. 그러나, 현실마저 모른척 하진 않았다. 약속한 날짜인 차주 수요일에 다시 만났다.


퇴근 후 다시 출근


그 때까지 퇴근 후에 서로 만날 일이라곤 술 약속을 잡는 것 이외에는 따로 볼 일이 없었다. 홍대 근처 맛집을 찾아보는 것 대신 노트북 사용이 가능한 카페를 찾는 건 다소 어색한 일이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마저도 희미해졌다. 큼직한 주제를 몇 개 잡고, 각 주제의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곧 바로 랜딩 페이지로 활용할 노션 페이지를 만들고 인스타를 만드니 금방 사회적 거리두기 통제 시간이다.


이런 식으로 퇴근 후, 주말을 이용하여 약 3주간 시장조사 및 기획을 하였고, 모객을 위하여 세팅을 하나씩 해나갔다. 이외에도 손쉬운 사후 관리를 위하여 스프레드시트 기반 페이지를 세팅하였는데 아무래도 자연스레 현업에서의 경험을 최대한 살리려 했었다. 어떻게 보면 결과적으로 퇴근 후 같은 일을 또 다시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하루 설레였고 변화에 민감하고 새로워하며 궁금해했던 시기였더랬다.


토요일 12시, 신촌
첫 오픈


준비를 한지도 벌써(?) 3주. 다행인건지 무모한건지 일단 오픈일을 인스타에 공지해버렸다. 픽업 2종 세트(기본 야채&샐러드 세트)와 현장 판매도 진행을 하니 많이들 찾아달라는 메세지를 업로드하였고, 왠지 모르게 최소 인스타를 접한 분들이면 한 번씩 들릴 것만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픽업의 경우 사전예약을 받다보니 직장 동료들과 지인들의 주문건이 적지 않았고, 남은 채소들을 활용하여 현장 판매로 이어갈 계획은 적자는 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다른 최씨 동료를 한 명 더 섭외하여 당일 현장 매장 세팅을 하였다. 돌아보니 사내에 최씨가 많았을 뿐 전혀 친인척 관계는 아니다. 아침 일찍 망원시장에서 만나 미리 계획해둔 야채를 구입하여 신촌 현장 판매장소로 향하였다. 기존에 스터디카페로 활용하던 곳으로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사이 즈음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훌륭하였다. 심지어, 이전에 살던 쉐어하우스 건물의 1층이었기에 더욱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였다.


토요일 정오, 평소 같았으면 평일의 야근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늦잠을 자고 겨우 일어났을 시간이지만 여느 출근 시간보다도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 부지런히 준비를 마치고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각자의 집에서 괜찮아 보일듯한 아이템을 한두개씩 가져와 현장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블루투스 스피커라던지, 실제와 같은 강아지 인형이라던지. 특히나, 강아지 인형은 꽤나 많은 분들의 가던 길을 멈추기도 하였다.


그래서 잘 팔렸냐구?

결론적으로는, 잘 팔리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사전에 주문해주신 분들이 픽업해주시기로 한 건 외에는 현장 판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도 그럴게 주변에는 대형마트와 소규모 마트, 야채가게를 비롯하여 저렴하고도 신선한 채소를 구입할 채널이 망원시장보다도 꽤나 잘 구축되어 있었다.


또한, 토요일 오후 황금 시간대에 핫하다는 카페나 소품샵이 아닌 평범하다 못해 뭔지 모를 처음 보는 공간에 쉽사리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충분히 홍보가 되거나 외부에서 바로 어떤 공간인지 인지하기도 어려운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팔로워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던 인스타만 믿었던 우린 뒤늦게 현실 분석을 해가며, 남은 야채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당장 오늘 팔지 않으면 다음 판매일은 다음주이므로, 선택지는 내가 먹거나 버리거나 둘 중 하나 밖에 없었다. 우선 긴 테이블 두 개를 길거리로 가져나왔다. 마치 통신 대리점 판촉을 하듯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채소들을 원가에 내놓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으나 여전히 우릴 특수 종교단체인듯, 설문조사 대행사인듯 여기며 눈을 마주치자마자 경계하며 갈 길을 서두르기 바빴다. (그럼에도 신촌 한 가운데서 청양고추를 팔고 있으면 분명 어떤 사유는 있어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더랬다.)


영업이 끝나고도 왜 팔리지 않는가, 홍보의 문제인가, 품목의 문제인가, 방법의 문제인가 등등 여러 논의를 거쳤다. 단돈 1,2만원으로 광고를 돌려보기도 하고, 품목도 바꾸어보고 나름대로 포스터도 만들어보았다. 하나씩 바꾸며 진행하기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퇴사라는 새로운 국면이 찾아왔다. 갑분퇴사? 괜찮다더니 결국 사이드프로젝트 때문에 짤렸냐구? 다음 이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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