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23살 처음 운전면허를 땄을 때는 아빠차를 빌려 운전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아빠차로 한 번, 언니차로 또 한 번, 차 사고를 내고 나서부터는 운전을 하는 것이 싫어졌다. 또 사고가 날까 봐 너무 긴장되었고, 운전하면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30대 중반이 되기까지 차를 사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오토바이 여행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친구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리자 친구는 스쿠터를 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타!"를 외치며 활짝 웃는 그 친구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나를 뒤에 태우고 바닷길을 씽씽 달릴 뿐만 아니라 스쿠터를 기울이며 코너링을 할 때는 무서우면서도 신이 나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 친구는 널찍한 부두에서 스쿠터 타는 법을 간단히 가르쳐주었고 나는 겁도 없이 스쿠터를 운전했다. 처음 엑셀을 힘껏 돌려 앞으로 튕겨져 나가듯이 출발했던 그 순간은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때부터였을까? 항상 오토바이가 타고 싶었다. 부모님의 반대와 겁 많은 나의 성격에 오토바이 면허조차 따지 못했지만 늘 오토바이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언젠간 면허를 따고 오토바이로 해외여행을 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J와 함께 평화롭게 쉬던 평일 오전, 둘이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임신 전에 즐기자는 이야기를 하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알고 있던 J가 갑자기 오토바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이미 오토바이 면허가 있고, 해외에서 오토바이 여행을 해 본 J가 앞장서서 준비했다. 4월이지만 오토바이를 타면 춥다며 옷을 신경 써주었고, 근처 오토바이 대여점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출발!"을 외쳤다.
오토바이 대여점에서 스쿠터와 헬맷을 빌리고 J의 지휘에 따라 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20대 때 우도에서 스쿠터를 타고 여행을 한 경험을 살려 조심스럽게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차와 신호가 많아 긴장이 되었지만 시외로 나가면서 조금씩 스쿠터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햇빛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해안도로를 맘껏 달리는 해방감은 정말 최고였다.
"이야호~~~~~~~~~~~~~~~~" 맘껏 소리 지르며 부릉부릉 스쿠터를 몰았다. 게다가 앞에서 진두지휘하며 리드해 주는 J가 있어 마음이 놓였다. 수신호로 이것저것 알려주는 그의 뒷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J가 새롭게 보였다.
열심히 달리다 함덕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사발면을 먹고, 또 달리다 구좌에서는 런던베이글에 들려 베이글 한 입 하고, 또 달려 마지막엔 성산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자 온몸이 뻐근했다. 엉덩이가 아프고, 허리가 찌뿌둥하고 어깨가 걸렸다. 그러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게 여행하는 맛이지.
함덕해수욕장과 런던베이글
처음 계획은 성산일출봉을 올라갔다 올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늦어 다시 제주시로 돌아가기로 했다. 반나절 일정이었기에 해가 지기 전에 스쿠터를 반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면 운전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쉬지 않고 제주시까지 가기로 했다. 스쿠터 운전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나는 속도를 좀 더 내며 열심히 달렸다. 다행히 어두워지기 전에 스쿠터를 반납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뜨거운 햇빛에 그을린 얼굴에 팩을 붙이고 누워 버킷리스트를 해낸 오늘을 기념하며 치킨을 주문했다.
"자기야, 나 오토바이 면허 딸래." 치킨을 먹으며 갑자기 결심을 발표한 나를 쓰담쓰담하며 "오토바이는 위험해."라는 J. 그래도 나는 J몰래 오토바이 면허따기를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이번 버킷리스트도 꼭 성공해야지.'라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