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140-1번이야

버스정류장 기둥을 툭툭 치며 울던 날

by 윤덕순

하굣길.

왁자지껄, 말 그대로 시끄럽게 떠드는 여중생들.

이제 갓 소녀의 모습을 한 앳된 우리들은 국도 1호선을 따라 반석천이 흐르는 비포장길을 걸으며 자연을 벗 삼아 다녔다. 사춘기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떠들며, 배고파지면 생라면 하나를 부숴 나눠 먹고 그게 모자라면 철마다 바뀌는 주인 없는 나무열매를 따 먹곤 했다.


각자 다른 동네에 살았지만 3km 정도 되는 길은 함께 걸었다.

그런데 늘 마지막에 터벅터벅 혼자 걸어가야 했던 건 나였다.


걷기 싫어서 버스를 타는 날에도 나는 늘 혼자였다.

친구들은 150번이나 104번 좌석버스를 타고 가고, 나는 우리 동네까지 들어가는 140-1번을 기다렸다.


그 버스는 한 시간에 겨우 한 대만 왔고,

다른 노선은 우리 동네와 먼 정류장만 지나가기 때문에

그 뒤에는 집까지 최소 20분은 걸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게 지겨울만한데도 우리 동네까지 운행하는 버스만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친구들을 보내고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온 140-1번 버스가 나를 못 보고 그냥 가버린 것이다.


눈치는 빠른데 걸음이 느려 슬픈 내가,

목 놓아 외쳤다.


“아저씨 가지 마요! 여기요! 저 좀 태워주세요!”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돌아올 기미도 없이 매정하게 멀어졌다.


버스가 내놓고 간 먼지에 목이 막히고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흘렀다.

나는 정류소 표시판 기둥을 괜히 툭툭 쳐봤다.


더는 한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

’어떤 버스든 오면 그냥 타야겠다‘ 마음먹고

20분쯤 지나 온 150번을 탔다.


동산을 끼고 굽이굽이 굽은 길을 돌아 정류장에 내려 다시 30분을 걸었다.

멀리 내다보면 꽉 막힌 계룡산에서 뻗어 나온 우산봉이 보이고 길 왼쪽엔 조그만 교회, 단무지 공장이 있었다.

보이는 게 전부인 지루한 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동네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140-1번이 동네를 진입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한쪽만 흘러내리던 가방은 결국 양쪽 다 흘러 바닥에 털썩.

“아.. 내 버스 또 지나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뒤로 버스를 탈 때면, 누가 뭐라 해도 늘 140-1번을 기다렸다. 비효율적이고 느리며, 어쩌면 바보 같다고들 했지만, 그건 내 하루에 담은 작은 선언 같았다.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고집스럽고 느린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