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가루를 접하게 된 건 아빠가 건강에 좋다며 구매한 것 때문이었다.
계피라고는 계피맛 사탕, 놀이동산에서 먹던 츄러스 밖에 몰랐는데 가루로만 가득 있는 건 처음 봤다.
한 스푼씩 떠서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걸 보고 궁금증이 든 나는 계피가루를 어떻게 먹어볼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녁으로 밥을 먹기 귀찮았던 나는 양배추와 적양배추, 그래놀라 한 줌, 레몬즙, 자몽을 넣은 샐러드에 실험을 해보기로 생각했다.
꿀을 한 티스푼 정도 넣고, 그 위에 계피가루를 뿌린 후에 그대로 잘 섞어서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포크를 쉴 새 없이 움직였었다.
계피를 그렇게 좋아하던 것도 아닌데 잘 먹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신기했다.
언젠가 계피 원액이 들어간 걸 먹고는 이걸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내가 계피가루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화이트데이에 초콜릿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덜 달게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계피가루를 본 순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동산의 츄러스가 설탕과 계피가루의 혼합이니 초콜릿도 분명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계피가루에 찍어 먹어봤다.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렸다. 계피 특유의 매운 듯 하면서 따뜻한 맛이 초콜릿과 만나니 단맛은 줄고, 초콜릿이 따뜻하게 느껴지면서 깊은 풍미가 입안을 휘감기 시작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 맞았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그 이후로는 좀 비슷한 실험을 강행했다. 투게더 아이스크림과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투게더 아이스크림 위에 코코아 가루처럼 계피가루를 마구 뿌렸다. '이게 바로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이유인 걸까?' 하고 생각했다. 바닐라 맛과도 생각 외로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았다. 추운 날에 찬 걸 먹는데, 따뜻하고 달달하며, 약간 스파이시한 향이 느껴지는 게 딱 적당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해본 건 사과와 계피가루의 조합이다. 사과를 조각내서 접시에 펼쳐두고 계피가루를 솔솔솔 뿌렸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약 2분 정도 가열하고 나니 따뜻한 사과가 나왔다. 가열된 탓에 계피가루가 있던 자리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토치로 구운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단 사과가 아니었는데,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니 단맛이 올라왔다. 생각보다 사과가 맛있었고, 계피가루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며칠 전에는 그래놀라 시리얼에 우유를 부은 뒤에 시나몬 가루를 넣어서 먹어봤더니 시리얼 특유의 단맛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 거였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우유는 입안에서 스팀밀크처럼 느껴졌다. 왠지 맛보다 기분으로 먹게 되는 시리얼이었다.
다음에는 내가 만든 과자+빵 조합의 케이크 위에 계피가루를 뿌려서 먹어볼 생각이다. 어떤 맛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든 디저트에 한 번씩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