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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92화 - 한 땀 한 땀 작업기

by 덕후감

집에 모자가 4개 정도 있지만 주로 쓰는 모자는 2개, 애착 모자는 딱 1개 뿐이다.


애착 모자의 가장 큰 문제는 재질상 먼지가 너무 잘 달라 붙는다는 것이다.


놀러 다닐 때, 외출해야 할 때 모자를 쓰기 위해 그때마다 먼지를 매일같이 떼어내야만 한다는 게 여러모로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로맨스 판타지 장르의 웹툰, 사극 드라마가 떠올랐다. 둘의 공통점은 모두 자수를 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다.


보석십자수는 해봤어도, 십자수까지는 해봤어도 직접 자수를 놓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무지 볼캡에 내가 만든 도안으로 수를 놓을 결심을 했다.


모자부터 주문을 넣고. 실과 바늘이 든 반짇고리를 준비한 후에는 도안 작업을 했다.


도안 작업 전에는 도안 그리는 게 귀찮아서 와펜을 붙일까도 생각했지만, 쓸만한 천을 찾지 못 해서 포기했다.


처음에는 데이지를 생각했지만, 너무 흔해져서 넘어갔다. 그 다음에는 민들레를 생각했다. 민들레는 데이지보다 꽃잎이 작고 많아서 까다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치고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 고양이를 선택했다. 고양이는 친숙하고, 사람의 머리 위에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모자의 정면에 고양이를 수 놓게 됐다.


도안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가 막막했고, 처음에는 와펜으로 나온 고양이 디자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참고 용도로 보면서 다르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도안이 위의 그림이었다.


모자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도착한 날, 수예용 펜을 들고 모자에 그림을 그렸다. 말라가는 그림 위에 수를 놓다 보니 모양이 계속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거 할 때마다 수정하면서 도안과 다르게 가보자고 생각했다.


몸을 완성하고 나서 먼저 그려둔 도안과 비교하니 차이가 많이 느껴졌다.



너구리 같기도, 여우 같기도 한 몸체가 고양이로 변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 내가 잘못했나? 라는 걱정과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한 거 고양이로 확실하게 만들면 되겠지 하며 매일 조금씩 작업했다.


원래 예정에도 없었던 고양이 발바닥에 수를 놓았다. 생각보다 앞발의 크기를 크게 수놓게 되었고, 다 뜯어내고 다시 하기에는 모양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귀와 발바닥을 했는데, 이상하게 발바닥이 계속 신경 쓰이는 거였다. '냥젤리라면 좀 더 폭신하고 핑크빛이어야 할텐데...' 생각한 나는 만들어놓은 발바닥을 기어이 다 뜯어내고 다시 수놓았다.


파란 눈에 분홍색의 코, 수염까지 다 하는데 약 2주가 걸렸다. 발바닥은 수를 놓다 보니 세모 모양의 중앙 발바닥이 반대로 돌아가게 됐다는 걸 인지했지만, 뜯어내지 않기로 했다.


이런 실수가 수작업의 묘미인 거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다 하고 나니 왠지 눈이 심심해 보였고, 눈에도 하늘색과 흰색의 빛을 스티치로 작게 넣어주고 나니 눈이 반짝거렸다.


완성된 모습은 완벽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내 노력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니 고양이가 더없이 귀엽게 느껴졌다.


실의 색도 모자에 맞추려고 노력했고, 자수 또한 모자에 이질감이 없어서 만족하고 있다.


한 땀 한 땀 만들었으니 이제는 이 모자를 내 애착 모자로 삼고서 잘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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