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아침 운동 직후 시원한 커피의 첫맛이 그렇게나 맛있을 수밖에 없는 날씨를 실감한다. 기껏해야 영상 10도 언저리의 날씨임에도 흘러내린 땀 덕분에 끝물인 겨울의 차가움을 잊는다는 발견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인상적이지 않은 하루하루를 평온으로 친다고 하면 나는 너무나 평온한 시간들을 게으르게 즐기고 있는 중이긴 한데 사실 지금의 막연한 쉼이 나에게 필요한 시간들인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막연한 쉼, 살아감의 의욕은 없고 그저 존재 자체에 대한 자유 의지만 남아있는 상태로 쓸데없는 마음들로 하루를 채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건 불안은 아니다. 여유가 있고, 배고픔은 없고, 읽어야 하는 책은 있고, 상처는 없고, 시린 겨울은 지나갔고, 따뜻함은 남았으니 오래 전의 언젠가처럼 불안에 떨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체력은 중년에 들어서면서 많이 저질이 되었다지만 지금까지 이러저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마음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음을 알아차리는 정도의 지혜는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통찰은 나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예쁘게 피어나는 방법을 배웠다면,
이제부터는 멋지게 떨어져 날리는 방법을 터득해 보려 한다.
벚나무의 아름다움이 꽃이 피어 있는 순간만은 아니니까.
꽃 잎이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져 나리는 그 순간에도 그것만의 아름다움은 존재하니까.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사람들은 말들을 하지만, 그래서 오늘의 자신에게 좀 더 가혹해지기도 하는데 사실 수명을 얻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한 번의 삶의 주기에서 마냥 예쁘게 피어나고, 지속적으로 자라나지만은 않는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절대적 진리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 만물에도 적용이 되는 절대적 진리이다. 겨울 내내 축적된 양분으로 봄이 되면 있는 힘껏 피어나 여름 한 철 화려하게 푸르르다 건조한 가을이 되면 자연스럽게 말라가고, 또다시 겨울이 되면 다음의 삶을 위해서 앙상하게 죽어간다. 우리는 이러한 순리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 혹은 이치로 바라본다.
살아감의 주기에서 지금의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나는 인식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여유가 많아 쓸데없는 것들에 마음을 쓰다 보니 이런 것들에 까지 마음을 쓰게 된다. 떠오르는 태양보다 저물어가는 태양이 더 예쁘다고. 피어나는 꽃보다는 떨어져 나리는 꽃송이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다고. 밀려오는 파도의 밀물보다 물러서는 파도의 썰물이 더 인상적이라고. 지금의 나에게는 화양연화보다는 화무십일홍이 더 어울린다고. 팽팽하게 당겨져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쉽게 내려놓고 소소한 것에 만족을 하는 삶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 누군가는 아직은 이르다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그저 나만의 방식인 것이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요즈음 즐겨 듣는 노래의 가사에서도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다하여 활짝 피어났었으니 앞으로는 아름다움과 무게와 분위기를 가지고 품위 있게 떨어져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