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유통기한을 긍정한다

그렇게 끊어진 관계들이 수두룩하다

by 천사의 시

사람들이 관계에 대하여 미련과 집착을 가지는 시기는 언제까지이며, 또 그러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게 되는 시기는 언제부터일까를 생각해 본다. 사실 인생사 가장 어려운 '문제'이자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정립이었기에 그동안 나는 인간관계에 대하여 감정적인 글을 많이 써 왔다. 그러나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관계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내 던져지고 보니 살아감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맺는 것이더라. 그런데 관계를 위한 '소통'이라는 것이 절대 일방적일 수 없어서 시작부터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 이후 최초의 사회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소위 '학교'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 감정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서로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모두가 똑같은 정도의 사회화를 형성하지는 못하였는데 그 이유에는 성격의 개인 차이도 있을 것이고, 주변의 환경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사회화가 잘 된 편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판단을 한다. 선뜻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함을 지녔고,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이유 없는 괴롭힘의 시간도 있었고, 친구 없이 혼자인 시간도 있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계'의 시작이 이러한 사람에게 그것은 사실 두려움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사람에 대한 예민함을 지니고 있어서 타인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경계를 하고, 이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는 목적이 무엇일까부터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가 세워놓은 '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학교'를 벗어난 '사회'에서는 좀 다르기를 기대해 본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은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부담감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조금은 수월한가 싶지만 사실 다른 사람으로의 위장일 수밖에 없다는 건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롯이 혼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벽이 존재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누구나 나름의 방법으로 필요 이상의 관계들을 맺으며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에 한 명이고. 덕분에 많은 경험들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몇몇의 사람들이 남았다. 깊이가 있다거나, 다양한 사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중반부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확실한 것은 관계에서 시간은 힘이 없다는 것이고, 관계가 끊어지면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이다. 오랜 관계의 권태와 새로운 관계의 신선함 같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서로 간의 감정의 문제였고, 피곤함의 문제였으며, 필요성의 문제였던 것 같다.


관계에서 시간은 힘이 없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였어도 서로가 각자 개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자기만의 방식을 강요하고, 주고받음에 질과 양을 따지기 시작하여, 상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으로 마음대로 이용을 하려 하여,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감정의 파괴로 인해 관계는 끊어지고, 오히려 너무 가까웠다는 이유는 더 큰 상처가 되어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감정으로 인한 시간차를 만들어 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다. 회복되지 않는 감정의 시간차로 인하여 관계는 피곤함을 불러오고, 결국에는 관계의 필요성을 따지게 된다. 인생의 절반을 함께 보낸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렇게 끊어진 관계들이 수두룩하다. 모든 관계는 감정의 소통인 것이고, 감정이 파괴되면 관계 역시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쯤에서 신기하게도 끊어진 관계만큼 새로운 관계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어쩌면 참으로 위안이 된다. 하나의 관계가 끊어지면 새로운 하나의 관계가 생겨나더라. 사회적인 필요에 의하여 생겨나는 관계들은 생각보다 많고 그래서 우리는 필요 이상의 관계들을 맺는 것이긴 하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너무나 정확한 등가교환이 인간관계에서도 발생한다. 관계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기만 한다면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그렇게 지나가는 관계는 그대로 두고 새로운 관계에 집중을 하면 되는 것이다.





임경선 작가의 책 '태도에 관하여'를 읽고, 이석원 작가의 책 '보통의 존재'를 읽는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생겨나는 문제들은 사건이 벌어진 그 '때'에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지금 내가 가진 풀리지 않는 감정과 지금 내가 가진 풀지 못한 관계들은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버린 묵은 것들이어서 나는 그냥 어제까지의 나의 뒷모습을 과감히 포기한다. 나 혼자 조용히 묵은 감정을 꺼내어 버림으로써 남은 감정은 이제 없으며 묵혀진 관계들의 미련의 끈을 놓음으로써 놓은 관계와는 이제 영원히 안녕이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이 방법만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게 내 행위를 설명해 줄 논리적 정당성에 대하여.(2020.01.27)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어서 관계단절의 이유가 어느 한 사람만이 원인일 수는 없고, 관계회복의 조건 역시 일방적인 감정의 치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은 개인의 자존심과 만나 관계 유지의 피로감과 그로 인한 불필요함을 발생시키면서 관계 회복의 단계로 넘어서지 못하였다. 만약 지금 누군가 인간관계로 인하여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럼에도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면 관계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관계의 생로병사를 인정하고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로 남겨두어도 살아감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관계의 유통기한을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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