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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Jan 09. 2023

07. 내가 상상하던 공간에 발을 들이면

울산광역시, 경북 경주

이 이야기는 본인이 2018.09.27~2018.11.02까지 직접 다녀온 전국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쓴 국내 여행 에세이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고 있는 여행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챕터7

#7 내가 상상하던 공간에 발을 들이면


<울산도서관>은 처음부터 방문객들을 환하게 맞아주었다



어젯밤 힘들었던 일정을 마치고 후배랑 만나서 신나게 놀았더니 아침에 일어나기 쉽지 않았다. 포근한 이불에 파묻혀서 뒹굴거리다가 오늘 일정이 빠듯한 것을 깨닫고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울산도서관>이다. 울산은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서 최근에 큰 규모로 완공된 울산도서관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울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 같은 여행객도 쉽게 방문하기 좋았다.


울산 남구의 대표 도심하천인 여천천을 건너야만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어 졸졸 흐르는 물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울산도서관’이라 크게 적혀있는 입구가 보였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입구의 팻말이 크게 서 있어서 제대로 환영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울산 시민들이 사랑하는 핫플레이스라고 들었는데 의외로 차랑 사람들이 별로 안 보여 편하게 구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울산도서관> 내부 사진



말도 안 돼! 무슨 월요일에 도서관을 쉬는 거야! 불이 꺼져서 깜깜한 도서관 내부를 바라보며 혼자 소리를 질러보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싶더니 월요일은 도서관 정기 휴무일이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도서관을 비롯한 문화시설들은 주말에 오는 손님들을 받아들이고, 월요일에 휴식을 취한다는 사실을… 그 후에도 월요일 휴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해 생긴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후에 소개하겠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도서관을 빙 둘러 걸으며 외관을 구경하고 주변에 만들어 놓은 놀이터와 조경들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에 언젠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러 다시 와야겠다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서 창고 위치는 어디에 있으며, 이용객의 동선과 직원 동선은 나누어져 있는지, 화물차량은 어디로 들어오는지 등 자못 건축가스러운(?) 시선으로 건물을 살펴보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계획했던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해 시간이 많이 남아 경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 여유가 생겼다. 시간을 어떻게 쓰면 효율적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헌혈을 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살아가기 바빠 남에게 베풀지를 못했는데 다행히 몸이 건강해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시간이 될 때마다 헌혈을 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조금만 서두르면 헌혈을 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근처 헌혈의 집을 찾아갔다.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울산도서관> 광장시설



월요일 이른 오전 시간, 그것도 추레한 모습으로 헌혈의 집에 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지 않을까? 헌혈을 도와주시는 간호사분들이 처음 내 모습을 보고 약간 당황하신 듯하더니 곧바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여, 늘 하던 혈장 헌혈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른 시간이라 헌혈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간호사분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저는 지금 학교를 휴학하고 전국 배낭여행 중이며, 잠시 시간이 남아 울산을 떠나기 전 헌혈을 하러 온 것이다.’라는 스토리를 전하니 응원의 말을 해주시며 헌혈증과 함께 초콜릿과 유사시에 바를 수 있는 연고까지 챙겨 주셨다. 남을 위해 내 피를 나누어 주는 것이 헌혈이라고 하지만 항상 헌혈을 하러 가면 내 마음이 더 따뜻해져서 돌아온다. (이때 받았던 초콜릿은 나중에 정말 큰 도움이 되는데, 그 이야기는 뒤에 등장할 예정이다.)


헌혈을 무사히 마치고 경주로 향하는 버스에서 짧은 단잠을 즐긴 나는 드디어 비수기, 성수기를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모이는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는 내 기준으로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하나는 내가 방금 도착한 경주역과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한 도심지이고, 하나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보문 단지 주변이다. 물론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면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지만, 나처럼 짐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목적지를 구분할만한 거리이다. 처음 계획은 보문 단지 주변을 구경하고 도심지로 넘어와서 숙소에 짐을 맡기고 첨성대, 동궁과 월지의 야경 등을 구경한 뒤 다음날 바로 경주를 떠날 생각이었지만 이날 묵게 될 숙소의 발견으로 나는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된다.



한 번에 내 마음을 빼앗아버린 경주 게스트 하우스 <북홈>



경주에 도착하기 전 버스에서 숙소를 검색하던 도중 내 눈에 들어온 <북홈>이라는 게스트하우스. 위치는 보문 단지 주변에 있었기에 만약 여기서 묵게 되면 경주에서 하루를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홈>의 홈페이지 설명에 적혀 있는 책장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그 특별한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가격도 상당히 저렴했다. 이미 숙소에 마음을 뺏겨버린 나는 서둘러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아.. 역시 사진만 보고 믿는 게 아니었나… 굉장히 허름해 보이는 외관의 건물을 보며 몇 번이고 위치를 다시 확인했지만 이 건물이 맞았다.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 조금 전의 나를 지탄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체념을 하고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는 3층으로 계단을 오르는 순간…!! 내가 해리포터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게스트 하우스가 시작되는 3층부터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느낌을 받아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되는 9와 4분의 3번 승강장처럼 말이다.)


황급히 뛰어 올라간 곳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아주 깔끔한 인테리어에 북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결합된, 묘하지만 한 번쯤은 상상해 본 공간의 모습들은 나를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혹여 늦을세라 서둘러 체크인한 뒤 책장 안에 있는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서 ‘오늘 그냥 나가지 말고 여기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경주의 상징 <경주 타워>



그래도 경주까지 왔는데 경주타워는 보고 가야 하지 않겠나 싶어 힙색을 메고 길을 나섰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경주타워는 경주의 랜드마크답게 우뚝 솟아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거대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마냥 신나 보인다. 우리 부모님도 나 어렸을 때 저렇게 두 손 꼭 잡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었는데… 잠시 추억에 빠졌다가 경주타워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전망대가 있는 84층에 올라보니 경주 전체가 눈앞에 펼쳐진다. 압도적으로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녹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확실히 경주는 옛 역사와의 공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한 층을 내려가니 석굴암 HMD 체험관에서 커플 한 쌍이 VR을 이용해 석굴암 내부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우와! 꺄악”거리며 신문물(?)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가격도 비싸고 혼자 가상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남들이 보기 흉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지나쳤다. 시선을 돌려 반대쪽을 바라보니 석굴암에 대한 설명과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세한 설명에 집중하여 글을 읽어보다가 갑자기 석굴암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핸드폰을 꺼내 거리를 확인해 보니 내일 가려던 경주 도심과 정반대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여행 중에는 참 많은 결정사항들이 생긴다. 사실 지나고 보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소한 사항들이지만 고민을 시작할 때만큼은 세상에서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 수가 없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석굴암을 보러 갈까?’ ‘아냐.. 나는 오늘 숙소에서 만화책 보면서 늦게 자기로 마음먹었는데…’ 사실은 고작 이 정도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보았을 때는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용사가 된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전국 30개의 도시, 100여개의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국내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제의 및 협업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작가 본계정 인스타 (@smg_dm)

쪼렙여행자 인스타 (@jjolevel_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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