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울산광역시
이 이야기는 본인이 2018.09.27~2018.11.02까지 직접 다녀온 전국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쓴 국내 여행 에세이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고 있는 여행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의 폭풍 같던 사건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조용한 아침이 찾아왔다. 찜질방에서 잔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 목욕탕에 들어가 몸에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었다. 그동안 쌓였던 다리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밖으로 나오다가 문득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궁금해졌다. 주 내용물은 옷이 전부인데 어쩜 이렇게 무거운지... 5kg 정도는 나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체중계에 올린 가방의 무게는 무려 10kg! 아... 이럴 때 쓰는 말이 모르는 게 약이라던가... 괜히 2배나 무거워진 듯한 배낭을 메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왔다.
카운터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가 “잠은 잘만하셨는가?”하며 아침 인사를 전하신다. 웃는 얼굴로 물음에 대답한 뒤 여기서 통도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여쭤본다. “여기서 걸어서 30분이면 가요. 젊은 사람들은 다들 걸어서 가드만.”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는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선다.
날씨도 좋고, 바람은 적당히 불고, 조용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통도사 입구가 보인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놀랐는데 여기서부터는 흙길을 꽤 걸어 들어가야 한단다. 흙길을 걸어보는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운이 좋게도 통도사에서는 <개산대제>라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어쩐지 절로 들어가는 길에 부처님들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더라니, 이 모든 것이 다 축제의 일부분이었다. 푸르름을 내뿜고 있는 나무들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흙길 그리고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들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에게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어제 늦은 시간 절에 도착하지 못하게 하신 건 아닐까 싶다. 한 걸음을 걷고 카메라로 찰칵,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가 또 찰칵. 도무지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활기찼다. 종교라는 보수적인 성격 때문에 축제가 열리더라도 경건하고 엄숙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번 축제의 주제는 ‘어린왕자와 부처’로써 절의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어린 왕자의 모습들이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나도 그 축제의 무리에 포함되어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구경을 하다가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께 절을 올리며 지금 하는 여행을 무사히 끝마치도록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 간절하게 빌었던 것 같다. 그만큼 혼자 하는 여행은 자유롭고 즐거웠지만, 때로는 외로웠고 가끔은 두렵기도 했다.
어깨를 누르는 배낭을 다시 꽉 메고 통도사를 나오니 조금씩 배가 고파왔다. 통도사쯤 되는 관광지라면 분명 유명한 식당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 평이 좋은 메밀국수 전문점이 있었다. 면보다는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늦은 아침으로 메밀국수를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조금 외곽에 떨어져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도롯가에 <울렁도모밀국수>라고 간판이 보였다. 걸었으니 쉽게 간판을 발견했지 차를 타고 지나갔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소박한 간판이다. 다시 한번 도보여행이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가게에 들어서니 내부가 굉장히 소박했다. 메뉴는 단 하나. 오직 메밀국수! 이런 곳이 맛집이구나 싶은 내공이 느껴진다. 2판은 시켜야 1인분이라는 사전조사 내용에 따라 2판을 주문했다. 굉장히 깔끔하고도 소박한 메밀 특유의 맛과 적당한 양의 간 무, 파, 쯔유가 입안을 자극했고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릇을 깔끔하게 비워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늦지 않게 울산에 도착한 나는 저녁에 만나기로 한 후배와 연락을 한 뒤 그전에 구경할만한 곳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사실 내가 가진 울산에 대한 이미지는 광역시라는 이름답게 사람이 굉장히 많고 활기찬 도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중공업의 도시인 울산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폐교의 증가는 막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울산은 이를 그냥 방치하지 않고 폐교를 재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 중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는 곳을 방문했다. 폐교는 울산 외곽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있었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했다.
매우 한적한 곳에 위치한 폐교는 도착해서 정문을 보자마자 어릴 적 뛰어놀던 초등학교가 생각났다. 방치되어있는 듯하지만 그게 또 매력인 무성한 풀들과 은색 미끄럼틀이 있고, 자정이 되면 움직일 것만 같은 위인들의 동상들이 지키고 있는 폐교는 정면에 알록달록한 색깔로 <다담은 갤러리>라는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려고 하는데 관계자로 보이는 선생님께서 “아이고, 지금 막 전시가 끝나서 작품 교체 중이라 2시간 뒤에나 작품이 도착할 텐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하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많고 많은 날 중에서 하필이면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작품을 교체하다니...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기다렸다가 작품을 보고 떠날 테지만 오늘 스케줄은 꽤 빠듯했다. 아쉽지만 공간만이라도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내부를 돌아보았다. 복도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지만 교실 내부는 조명들과 가벽들로 구성되어 깔끔한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하얗게 색칠된 벽들에는 다담은 갤러리에 대한 기사가 실린 신문들이 붙어있기도 하고 때로는 건담들이 걸려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여기가 아이들이 성장하고 뛰어놀던 학교였다는 사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간을 다시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빈 곳에 벽지를 새로 바르고, 예쁜 가구들을 들여놓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게 전부가 아니라 시대에 맞추어 용도가 바뀌더라도 예전 모습들이 어떤 형태로라도 남아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추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하루 종일 쉼 없이 이동하느라 가방을 맡길 곳이 없어서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계속 돌아다녔더니 어깨는 빠질 듯이 아프고 다리는 점점 저려오는데 후배와 약속했던 시간은 아직도 3시간이나 남았다. 근처에 경치도 좋고 커피 맛도 좋다는 카페가 있다지만 솔직히 조금 지쳤다. 목적지를 카페로 향할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카페에 갈지 말지 고민 중인데 여길 들렸다가 가면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핑계를 투척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카페에 가지 말고 조금 일찍 만나자는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수화기 너머 후배는 내 마음을 전혀 모르고 나를 배려해줬다. “오빠,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갔다 와. 오빠가 언제 또 울산에 와보겠어? 나는 조금 기다릴 수 있어.” “그... 그렇지? 고맙다 하하하...” 약속 시간을 핑계 삼아 쉬려고 했던 계획이 실패했다. 결국 나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서 경치가 좋고 핫한 카페에 가기 위해 10kg의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일 이른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핫한 카페라는 것을 증명하듯 몇 번이나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한 걸음씩 올라 결국 걸어서 카페 <온실리움>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자기 몸만 한 배낭을 메고 땀에 온 몸이 젖은 채로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카페 직원들과 손님들은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곧 자신들의 일에 몰두했다. 식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카페에 들릴 때면 가장 저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나였지만 이 정도 고생했으면 뭐라도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커피와 함께 초코빵을 하나 시켰다. 시원한 커피 한 모금과 입안 가득히 퍼지는 초콜릿에 정신이 돌아오며 기분이 좋아진다. 잠시 이 행복한 느낌을 즐기다가 문득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 내려갈 때는 어떡하지...? ✈
전국 30개의 도시, 100여개의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국내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제의 및 협업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쪼렙여행자 인스타 (@jjolevel_trave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