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 없이 나아가는 당신들이 제일 멋있다
이제야 주변이 보인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될 때도 됐건만, 여전히 체육관 가는 길은 즐거움 반, 두려움 반이다. 사실 몇 번을 더 경험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적응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어쨌든 즐겁든, 두렵든 체육관 가는 길에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뛰는 건 마찬가지니, 그냥 좋게 '체육관 가는 길이 두근거린다'라고 표현하기로 했다.
주 3회씩 꼬박꼬박 출석을 채우다 보니 순식간에 앞서 기대했던 운동 10일 차가 되었는데, 운동이 끝나고 아무렇지 않게 서서 코치님과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여전히 운동이 끝나면 주저앉아 헉헉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 체력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다면, 이 힘든 운동을 하는 우리 체육관에 생각보다 여성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오해는 말아달라. 의도적으로 여성분들을 눈으로 좇으며 체크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야 운동 도중에 내 호흡조차 관리하지 못해서 눈에 뵈는 것 없이 바닥에 엎어져 헐떡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며 내 눈에 들어온 피사체가 뇌에 저장되는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어떤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스스로 느끼는 이런 사소한 현상들을 통해 내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뿌듯해하게 된다. 종종 내 몸무게의 반이나 나갈까 싶을 정도로 연약해 보이는 분이 나보다 훨씬 정돈된 호흡으로 그날의 운동을 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기가 죽기도 하지만, 나도 곧 저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언젠가는 올바른 호흡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매번 코치님들의 정성스러운 수업을 통해 한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강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지며 깨닫는 것들이 생겼는데 이를 설명해 보려 한다.
코치님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선, 타격할 때 펀치를 더 강하게 날리기 위해서는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강하고 빠르게 주먹을 날리기 위해 팔에 힘을 많이 주게 되면 어깨가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들면서 오히려 주먹이 빠르게 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한데, 늘 그렇듯 힘을 주는 것보다 적당히 빼는 것이 훨씬 힘들다. 이는 초보자가 의식적으로 조절하기는 힘든 부분이니, 코치님은 늘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하면 된다면서 주먹을 쥐기도 힘들 때까지 훈련시킨다. *금스흠느드 코츠늠...
체력이 좋다는 뜻은 운동을 하는 내내 지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체력이 좋은 사람은 휴식을 취할 때 회복하는 속도가 일반인들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체력이 좋을수록 쉬는 시간이 짧아도, 호흡이 금방 안정되며 원래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결국 회복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상처를 입어야 한다는 뜻이며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중요한데, 쓰러질 것 같을 때 한 번 더 주먹을 뻗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의지는 늘 고통 앞에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코치님들은 내가 앉아서 쉬고 있을 때마다 귀신같이 찾아와서 나를 다시 일으킨다. 금스흠느드 코츠늠...
가장 빨리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
혹시 가장 빨리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나는 이 방법을 수십 번 한계를 넘으며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심장에서부터 올라오는 비릿한 피 맛이 입에서 맴돌고 방금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던 몸이 부들부들 떨릴 때, 이 고통을 최대한 빨리 완화하는 방법은 바로, 그 순간을 조용히 참으며 버티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생각보다 고통을 가만히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통이 닥쳤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안절부절못하여 다른 방법을 찾으려 움직이면 아픔은 더 오랫동안 내 몸에 머무른다. 고통이 솟구치는 그 순간은 괴롭지만, 영겁같이 느껴지는 그 짧은 격정의 순간만 이 악물고 버텨내면, 자연스럽게 통증은 완화되고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수십 번 경험하며, 문득 모든 고통은 사실 그 순간을 참아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당장 고통이 몰려오는데 초연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고통이 영원한 것이 아닌 일시적인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이겨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란 결국 그 순간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깨져가며 깨닫고 나니, 하나의 운동이 끝나고 최소한의 호흡만 가다듬고 곧바로 다음 운동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단순히 체력이 좋다는 사실을 떠나서 한 번 겪은 고통을 기억하면서도 과감하게 전진하는 모습들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비록 한 걸음뿐인 발걸음일지라도 고통스러울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운동 기구 앞에 서서 운동을 시작하기 전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들. 그 찰나의 준비 기간 뒤에 주저 없이 발을 내디뎌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면 존경을 넘어 가끔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 나도 저런 뒷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겠지. 그 뒷모습이 구부러진 등이면 조금 부끄러울 것 같아서 괜히 어깨를 쫙 펴고 가슴을 내밀어 본다. 여전히 즐거운 건지 무서운 건지 구별이 안 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는 심장을 가지고.
*금스흠느드 코츠늠 : '감사합니다 코치님'의 이 악물 버전. 종종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성과 힘들어 죽겠다고 원망하는 감성이 부딪히면 의도치 않게 이런 소리가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