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키기 전에 일단 나부터 지키자
생각을 멈추는 방법
편안한 내 방에서 체육관으로 출발하기 전에는 여전히 짧은 순간이나마 멈칫거리게 된다. 이제는 몇 초간의 심란함을 이겨내고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 꽤 자연스러워졌지만 어쨌든 반드시 찾아올 고통을 알면서도 길을 떠나는 데에는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운동을 하면 온몸이 땀에 젖을 것을 알기 때문에 거울을 보며 눈곱만 살짝 떼고, 모자를 눌러쓰고 신발을 신으면서 새삼 체육관이 깔끔하게 꽃단장하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면 내 출석률이 굉장히 저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항상 생각이 많지만, 체육관에 들어서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기 시작하면 생각하는 것을 싹 멈추게 된다. 물론 머리가 쉬는 동안 육체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물리적인 고통을 쌓아간다. 사람은 원래 한 번에 두 가지 활동을 못 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하더니 그래서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일부러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하나 보다. 사람의 몸에 버튼이 있어서 생각과 행동 버튼을 적절하게 껐다 켰다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지금도 잠시 쉬는 시간을 못 참고 지금 내가 경험하며 느끼고 있는 체육관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면 재미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체력이 좋아진 건지, 오늘 운동에서 적당히 요령을 피운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기분은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니, 체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뿌듯해하기로 했다.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체육관에 한 달 이상 꾸준히 다녔더니 조금씩 몸에 힘이 붙는 것이 느껴진다. 제멋대로 허우적거리던 팔다리에 힘이 실리며 자신이 뻗어 나가야 하는 방향을 지키고 있고, 자유롭게 쿵쾅거리며 뛰어대던 심장 소리도 리듬에 맞춰 자신이 움직여야 할 타이밍에 뛰고 있다. 내가 내 몸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이 결국 고통을 견디는 것을 넘어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은 그만큼 스스로 매일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겠지. 자신의 몸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스스로 의미를 붙이고 매번 되뇌는 이 문장은 체육관으로 출발하기 전 항상 하는 고민의 시간을 줄이고 신발을 신게끔 하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지난 고통의 시간 덕에 조금씩 내 의지대로 몸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나의 이 멋진 모습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코치님께 양해를 구하고 처음으로 훈련하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분명 내 팔은 내 지시에 맞추어 정확한 박자에 정확한 궤도를 그리며 뻗어 나갔고, 호흡도 안정적이었으며 스텝도 나쁘지 않았다. 일부러 기합 소리조차 평소보다 한 옥타브 올려서 외쳐대며 촬영한 영상 속 내 모습은 마치 주인공이 너무 많은 B급 콩트 같았다. 쭉쭉 뻗었다고 생각한 내 팔은 내 코앞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으며, 안정되지 못한 호흡 때문에 몸은 전체적으로 너무 들썩거렸고, 스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에 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상에서 주인공은 나 하나여야 하는데, 신체의 각 부분이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등산을 한다더니, 신체가 각자 주장을 펼치니 등신(?)이 되어버렸다.
세상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
내 상상과 너무 다른 낯선 영상 속 주인공을 멍하게 보고 있자 코치님이 스윽 옆으로 다가오셨다. 부끄러워서 영상이 나오고 있는 화면을 나도 모르게 슬쩍 가렸지만, 코치님은 매번 정면에서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살면서 내 모습을 내가 제일 적게 마주한다는 사실을 종종 깜빡하곤 한다.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은 스스로 인지할 수 없는 모습이기에 낯설게 보이는 것이라며 정신 승리를 해버렸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이고 있는데, 옆에서 영상을 보던 코치님께서 좋은 팁을 알려주셨다. 촬영한 영상 앞뒤를 잘라내고, 제대로 펀치를 날리는 몇 초의 영상을 가지고 온 다음 재생속도를 1.3배로 빠르게 돌리면 꽤 그럴듯해 보이는 영상이 된다는 것이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든 생각은 오늘 촬영의 목적이었다. 내가 오늘 복싱하는 모습을 촬영한 목적은 기록이 아닌 *과시였다. 그렇다면 굳이 지나치게 솔직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일 필요가 있을까? 목적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이라면 조금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수정하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대다수의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이 세상을 지키거나 남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가치 있는 의미가 아닌 단지 개인적인 기록과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일지라도. 세상을 지키는 것은 지금 당장 나보다 더 능력 있고 멋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일단 영상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내 모습부터 지키자고 생각했다.
운동을 끝내고, 따뜻한 물로 샤워한 뒤 책상 앞에 앉아서 오늘 찍었던 영상의 앞뒤를 잘라내고, 몇 초 되지 않는 영상을 1.3배로 빠르게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매일 세수도 제대로 안 하고 떡진 머리로 체육관 구석에서 탈진하여 뻗어 있기 일쑤였던 나의 운동 목적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제어하고 지켜낼 체력을 얻고자 했던 것이 확실하다고.
*과시 : 자랑하여 보이다. 사실보다 크게 나타내어 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