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것을 참는 용기도 필요하다. 가끔은,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는 방법
체육관이 열리는 오전 9시에 맞춰 가장 먼저 도착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아직 데워지지 않은 차가운 바닥의 촉감을 느끼면 어김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두망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나 또한 밝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인사를 맞받아치며 기분 좋게 체육관 안으로 들어선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몸을 풀고 있으면, 코치님이 슬그머니 오셔서 말을 건넨다. "와! 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요? 요즘 밥 안 드세요?" "정말요? 저는 살이 안 빠지는 것 같아서 속상한데" "아니에요. 제가 처음 오셨던 날을 기억하는데, 배가 쏙 들어갔는데요?" 몸을 푸는 것을 멈추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가면 어느새 내 몸은 약간의 예열과 함께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
운동하는 사이사이 이어지는 대화가 좋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대화. 형식적인 안부 인사보다는 따뜻하고, 지루한 설교보다는 무심한 그 적당함이 좋다. 최근에 내 이름을 이렇게 따뜻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내가 변하고 있는 모습을 알아보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하루 중 유일하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어쩐지 몸이 아파서 끙끙대면서도 계속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더라니. 역시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
내 변화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내 노력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지난날의 성과와 사소하지만, 특별했던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이렇게 좋은 점이 차고 넘치니, 몸이 조금 고통스러운 것 정도는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는 대사를 운동하는 도중에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매번 운동이 끝나고 호흡이 안정되고 나서야 부리는 허세에 가깝다. 여전히 운동할 때는 살려달라고 엉엉 울고 싶을 때가 대부분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지옥을 경험하라
앞서 말했듯이 나는 주 3회의 일정으로 체육관을 다니고 있다. 지금은 월,수,금에 맞춰서 가는 편이지만 처음 한 달은 화,목,토에 체육관에 갔었다. 요일을 바꾸게 된 이유는 요일마다 체육관 운동 스케줄이 변경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이다. 처음에는 운동이 끝난 후에 제대로 서지 못해 기어서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화,목,토 스케줄이 체력을 올리는 것에 초점을 둔 타바타 운동과 샌드백 훈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월,수,금 스케줄은 코치님과 개인 훈련, 그리고 기본 근력 운동으로 진행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타바타 운동 스케줄이 2배는 더 힘든 것 같다. 다행히 아무것도 모를 때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하며 지옥 같던 타바타 운동을 버텨낸 덕분에 지금은 운동이 끝난 후 오늘은 제법 할 만했다는 허세를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요일을 바꾸어 체육관에 다닌 지 몇 주나 지났지만, 이번 주는 월요일에 체육관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화요일에 체육관에 입장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칠판에 적힌 오늘의 운동량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 뒷걸음질 쳤지만, 코치님이 내가 체육관에 들어온 것을 인지하고 인사를 건넸기 때문에 도망가기에는 늦어버렸다. 생각해 보니, 운동 스케줄만 보고 도망가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 코치님들이 입구에서 인사를 하는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오기가 사람을 병들게 한다
타바타 운동이란, 짧은 시간을 정해두고, 그 안에 폭발적으로 힘을 사용해 집중적으로 강도 높은 운동을 수행하여 크게 효과를 보는 운동이다. (우리 체육관에서는 20초 운동, 10초 휴식을 1세트로 총 8세트를 진행한다. 고작 20초라고 우습게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오랜만에 숨이 차다 못해 넘어가는 타바타 운동을 하며, 바닥과 한 몸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앞선 경험과 배움을 통해 1초씩 버티다 보면 반드시 이 고통이 끝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이를 악물고 총 4분을 견뎌낸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사람이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러우면 이성을 상실하여 실수할 때가 있다. 바로 오기를 부리는 것이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더니, 분명히 조금 전에 운동을 끝내고 주저앉았으면서 호흡이 다시 돌아오며 살만해지자 무의식중에 이 정도는 거뜬하다고 생각했고, 지나가는 코치님을 붙잡고 발차기에 힘이 실리지 않아 고민이라는 말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친절하신 코치님은 당장 나를 일으켜서 발차기를 해보게 했고,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코치님은 내 발차기를 받을 미트를 착용한 상태였다.
거의 엉엉 울다시피 뻗은 발차기를 보고는 코치님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주셨다. 내 발차기에 힘이 실리지 않는 가장 큰 문제점은 보폭을 너무 넓게 잡아서 디딤발에 체중에 제대로 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발차기를 할 때 무릎을 굽혔다 펴며 차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완전히 편 상태에서 그대로 후려치는 느낌으로 뻗는 것이 더 빠르고 강하게 나갈 것이라고 하셨다. 코치님의 시범을 보고 반복해서 연습하니 오른쪽 다리는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는데, 왼쪽 다리는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왼쪽 다리를 뻗자마자 이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고 해야 하려나. 몇 번을 반복해도 이거다 할만한 느낌이 오지 않아 속상해하자, 코치님은 원래 왼쪽 다리는 컨트롤이 힘들다며 나를 위로했다.
처음에는 후회했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까지 채웠으니 후련한 마음으로 코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샤워실로 향하려고 하는데, 코치님이 옷깃을 붙잡으셨다. 순간 휘청하며 본 코치님의 얼굴은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원래 배운 것은 바로 반복해야 몸이 기억해요. 지하에 내려가서 샌드백 양발로 50번씩 차고 퇴근하세요" 그리곤 내가 무슨 변명을 하기도 전에 쌩하고 자리를 떠버리시는 코치님. 내가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라면 참 좋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과제가 주어지면 미련할 정도로 끝까지 해야 하는 사람이다. 과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 계속 미루다가도 마음이 불안해서 결국 끝까지 해내야 하는 사람. 이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해라고 하면 하는 스타일. 학창 시절 반에서 꼭 한 명씩 있었던 선생님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숙제가 있었음을 알리고는 친구들의 미움을 듬뿍 받는 녀석. 그게 바로 나였다. 그날, 이미 땀으로 푹 젖은 몸으로 지하에 내려가 왼발로 샌드백을 차는 내내 코치님을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소리가 더 크게 난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