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부자 1편
추석 기차표 구하기에 실패했다. 아이가 어릴 땐 눈에 불을 키고 구하더니 이제 차로 가도 된다고 생각해서 느슨해진 거 같다. 기차로 안 가면 6시간 정도 차를 타야하는 하행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을 하니 좋은 시간대표는 없지만 새벽 시간 표가 있었다. 서울역에서 6시 출발하는 기차를 타는 일이 용인에 사는 우리에겐 다소 무리이나 다행히 친정 엄니가 서울역 근처에 산다. 엄마 집에서 자고 다음 날 기차 타러 가면 못 할 것도 아니다. 어찹 명절 지내고 엄마집으로 갈 거니 우리차도 거기에 주차해 놓으면 되고 말이다.
나-기차표 끊었어.
남편-표가 있어?
나-어, 새벽시간에
남편-그럴리가 없는데
카톡내용이다. 아니 내가 구했다는 데 왜 아니라고 할까? 안 구해지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내가 못한 걸 니가 했다고? 심정일까?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2월 남편이 차 사고를 크게 내서 산 지 3년이 안 된 새차를 폐차하고 새로 차를 구입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저기 대리점도 가보고 견적을 받아 차를 비교할 때였다. 남편은 기아 스포티지에 꽂혀 있었다. 소렌토는 대기가 너무 길고 업그레이드 된지 얼마 안 된 스포티지를 사고 싶어했다. 나도 뭐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현대차 대리점에 갔더니 산타페 가격이 스포티지와 비교했을 때 얼마 차이 안 났다. 대기도 한 달이면 되었다.(스포티지는 4개월) 당시 우리는 렌트카를 이용하고 있었기에 이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카톡으로 말했다.
나-산타페 견적 000만원이던데?
남편-그럴리가 없는데
나-아니 내가 대리점에서 견적을 받아왔는데 뭔 소리야
남편-아니...
자꾸 그럴리가 없단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신혼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내가 디지털 카메라 충전선이 다른 방에 있는 컴퓨터 근처에 있으니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남편은 한참을 찾더니 없다고 한다. 분명 컴퓨터 옆에 뒀는데 왜 못 찾는지 답답해서 내가 몸을 일으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컴퓨터 옆에 떡하니 있다.
"여기 있잖아."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
지금 해 보자는 건가? 그럴리가 없는 데의 최초 버전이었던 걸 그땐 몰랐다. 암튼 내 말을 부정하는 그에게 화가 나서 증명해 보였다.
"여기 이렇게 충전되고 있잖아."
충전선을 카메라에 연결했다. 구멍도 잘 맞고 충전중이라는 빨간 불도 들어오고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온다고 다 충전이 되고 있다는 건 아니야."
이쯤되면 막나가자는 거다. 충전선이 맞는지 안 맞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이기나 기 싸움에 돌입한 거다. 한 성깔하는 나도 질 수 없었다.
"그래? 이게 아니라는 거지? 그럼 필요없는 거네?"
하고 충전선을 가위로 잘랐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각 기계마다 거기에 맞는 선이 나와서 그 선을 자르면 다른 거로 대체할 수도 없었다.(그니까 구멍도 맞고 핀도 맞는데 왜 아니라고 우기냐고!!)
여기까지는 그냥 해프닝 정도였는데 더 황당했던 건 그 사건이 있고 2년 후에 기호가 되서 부부상담을 10회기 받을 때였다. 남편의 똥고집에 대해 이야기하며 디카 충전선 이야기를 상담사가 있는 가운데 했다.
"남편 분 왜 아니라고 하셨어요?"
"제가 생각하기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 충전이 되고 있었잖아요."
"제가 보기엔 아니었거든요."
그날 남편은 끝까지 그게 충전선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한 번 아니라고 생각한 걸 수정하지 않았다. 와 내가 이런 사람하고 결혼을 했다니 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세월의 힘인지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어서 그런지 이 일을 잊고 기차표와 자동차 견적서에서 '그럴리가 없는데'를 듣고 또 열이 받았다. 우리 부부의 기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혼 15년차가 되었으나 여전히 진행중이다.
박수도 두 손이 마주쳐야 나고, 줄다리기도 둘이 같이 당겨야 가능하다. 남편의 똥고집, 지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 우기기를 이젠 내가 놔줘야할 것 같다. 기차표와 견적서, 충전선은 내 손에 있다. 그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다.
라고 생각해 보지만 잘 안된다. 이유는 이건 인정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기 때문이다. 그가 내 말에 동의해 주지 않는 게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내 편 안 들어 주는 서운함으로 느껴진다. 실제 사실은 그가 아무리 우겨도 바뀌지 않는다. 내 눈으로 보고 있음으로 중요하지 않다. 내 말에 '그렇구나'라고 해주는 동의, 공감, 동감이 필요한 거다.
하지만 그 하고는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힘들 것 같다.
지난 설에 남동생네랑 친정 엄마, 우리 가족 다같이 이천 테르메덴에 갔다. 그날 목욕탕에서 이상하고 요상하고 똘끼 충만한 아줌마를 만났다. 온 가족이 목욕이 끝나고 밥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 가족만 있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 목욕탕의 패러다임을 모를까봐 그 부분부터 설명했다.
남자 목욕탕은 어떤지 몰라도 여자 목욕탕은 앉아서 씻는 곳에 자기 물품을 놓고 샤워를 한 뒤 탕에 들어가 몸을 불리고 다시 자리에 와서 씻는다.
이 설명을 전제 한 뒤 내가 겪은 사건을 이야기했다. 목욕탕에서 내가 샤워용품이랑 수영복을 놓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어린 아이, 아이 엄마, 친정 엄마 일케 셋이 내 자리에서(내 목욕용품이 있는 곳에서) 씻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친정 엄마로 보이는 할머니가 사람왔다며 가자고 하고 나갔다. 근데 이 젊은 아이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자리 맡아 놓으시면 안돼요.”
라고 하는 거다.
헐…
그래서
”화장실 다녀왔어요.“
라고 했는데
”자리 맡아 놓고 그러면 안된다고요.“
”화장실 다녀왔다고요.“
”사람 없으니까 사용한 거죠.“
”아니 제가 뭐라고 했나요? 저 아무말도 안 했어요.“
”이렇게 자리 맡아 놓으시면 안된다고요.“
”아니 화장실 다녀왔다고요.“
”그게 그거죠.“
하고 간다.
그 아줌마는 처음부터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화장실도 못 다녀오나? 내가 실제 화장실에 다녀 온 거기도 하지만 앞에 말한 것처럼 탕에 들어갔다 올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목욕탕 처음 오시나? 이 똘아이 엄마엑 대해 남편에게 말했더니 내게 한다는 말이
”그러니까 왜 자리를 맡아놔. 맡아 놓으면 안되지.“
야!!!
아…내가 이 인간하고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정말…윤석열 같은 인간!!!(인생 최고의 욕을 날려주마)
후후...참아야지. 참을 인자 세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데 일단 참아보자.
아이 T!!! 이건 T도 아니고 뭐야.
참을 인을 다시 되새겨 본다
이 인간은 왜 그런 걸까? 나랑 기싸움할 때는 지기 싫어서 그런다고 치는데 목욕탕은 그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까?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해결되었다.
<내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라는 책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 실제 겪은 일을 쓴 에세이다. 이 책 첫 시작으부터 '스몰토크'가 자폐인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길게 설명되어 있다. 직장 동료가 지나가는 말로 "주말 잘 보냈어?"라고 말하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답해야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 받은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사회화 되어 학습한 것이다. 그런데 자폐인들은 이게 안된다고 한다. 개그 프로처럼
"아니. 주말에 잘 보냈는지 왜 물어보는 데요?"
하면서 솔직하게 답하게 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암묵적 룰에 대해 둔감한 것이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이런 게 개그코드로 쓰였다.
스몰토크는 사회적 의사소통으로서 '의사소통'보다는 '사회적'이라는 단어에 무게가 실려 있으며, 대화의 내용보다는 대화를 통한 연결 그 자체가 중요하고, 침묵을 향한 거부감도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안다.
(위의 책 31쪽)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무릎을 쳤다. 남편은 나와 대화할 떄 '사회적'이라는 단어에 무게를 싫지 않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거다. 그러니까 나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자기 혼자만의 독백을 하는 자폐 상태랄까? 그러니까 충전이 되고 있어도 '아닌데...' 그러고 자꾸 '그럴리가 없는데'라고 하는 거다. 같은 상황이 회사나 밖에서 벌어졌다면 '사회적'이라는 암묵적 규칙에 따라 행동했을 텐데 나에겐 그걸 안 하는 거다. 특정인에게만 반응하는 자폐.
그래, 남편이 아내한정 자폐로 반응한다고 생각하자. 그런 그에게 화내봤자 나만 손해지. 스스로에게 갇혀 있는 그가 나와 대화할 때 '사회적'이라는 단어게 무게를 실을 날은 다음 생에나 기대하는 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