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근로 소득세를 부과하라!
결혼 전 내가 몰던 아반떼가 결혼 후 우리 가족 패밀리카가 되었다. 15년을 함께 한 아반떼와 4년 전 이별하고 그랜저로 차를 바꾸었다. 이때부터 남편의 차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아반떼는 지저분하던, 어디가 긁히던 신경 안 쓰더니 그랜저는 손수 세차하고 타이어에 흠집만 나도 난리다. 그런데 정작 가드레일에 박아서 차문을 수리하고, 폐차 지경까지 만든 건 남편이다. 만 3년을 타지 못하고 그랜저를 폐차하고 산타페로 바꿨다. 이전 그랜저도 손수 세차를 해서 이번에도 그렇구나 했는데 한 발 더 나갔다. 회사사람들과 모여서 동호회처럼 손세차를 한단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은 평일에 차량 주 사용자가 나다. 수원에 살 때는 남편이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내가 차량을 사용했다. 4년 전 용인으로 이사 오고 나서도 남편은 통근버스를 타기에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다. 반면 나는 아이 라이딩과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매일 다른 학교에 수업을 나가기 위해 차량을 이용했다. 이런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부부 사이에서 차량 이용에 문제가 없었다. 세차 동호회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남편이 동호회에서 세차를 한다며 평일에 차를 가지고 출근하면 안 되냐고 한다. 그날 다른 일정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아이 학원 라이딩이나 내가 일정이 있으면 불가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너는 매일 차 쓰면서 나는 왜 한 번도 못 쓰게 하냐?”고 한다. 자신이 차로 출퇴근하면 편한데 통근 버스를 타는 게 나를 배려하는 거란다. 내가 내 편의만 생각한다고 화를 낸다. 아니, 내가 내 편의로 차를 쓴 건가? 내가 작년처럼 매일 수업하러 가기 위해 차를 사용했다고 해도 똑같이 말했을까? 남편은 내가 수업가기 위해 사용한 거 외에도 차를 사용하는 이유인 가사노동, 돌봄 노동은 보지 못하고 있다. 이걸 설명하려니 <페어플레이 프로젝트> 책에 나온 카드 게임이 떠올랐다.
<페어플레이 프로젝트> 책에 보면 가사노동, 돌봄노동, 그 외 가정생활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노동을 100장의 카드로 만들어 게임을 하는 게 나온다. 이 카드의 제일 큰 장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가시화, 구체화, 현실화 해 준다는 거다. 예를 들어 돌봄 노동에서 아이의 숙제나 프로젝트를 돌봐주는 일과 스크린 타임을 관리하는 일도 각각 하나의 카드가 된다. 이 카드들을 놓고 부부가 각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가져가 보는 거다. 남편과 해보면 싸움날 거 같아 혼자 해봤다. 내가 하고 있는 가사, 돌봄 기타 우리 가족을 위해 하는 일에 해당하는 카드는 82장, 남편이 하는 일은 8장이었다. 그 외 10장은 우리 둘 다에 해당되지 않거나 둘 다 하는 일이었다. 남편은 육아와 관련된 카드가 한 장도 없다. 집안일 중 몇 가지를 가지고 있고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보는 게 몇 가지 있다.
오늘 내가 사용한 노동카드는 ‘설거지, 세탁기 돌리기, 건조기 돌리기, 빨래 개기, 화장실 청소, 아이 학원 라이딩, 아이 학원 알아보기, 학원 전화하기, 아이 학원 등록 설득하기, 학원 등록하기, 영어샘과 상담통화, 졸업앨범 사진 선택하기, 아이 옷 환불하기, 아이 롱패딩 구입하기, 저녁차리기, 아이 숙제 관리하기, 아이 폰 관리하기, 노트북 AS, 시가 가족 단톡방에 아이 사진 업로드, 아이 샤워, 양치 관리, 잠자는 시간 관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 일반 쓰레기 처리, 화장실 휴지 채우기, 배민 리뷰 쓰고 포인트 적립’까지 26장의 카드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 카드 중 라이딩과 옷 환불과 구입, 노트북 AS를 위해 차를 사용했다.
앞으로 차량을 사용할 때마다 “장보기 노동을 하기 위해 차량을 이용합니다.” 하고, 남편에게 페어플레이 카드를 제시해야 하나 싶다. 나는 '편하자고'가 아니라 '일하기 위해' 차를 쓴다. 남편은 그걸 내 ‘개인적 편의’로만 여기지만, 실은 가정을 굴러가게 만들기 위한 필수노동이다. 카드까지 동원해서 내가 일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고 씁쓸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전국 단위의 ‘가사·돌봄 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들자. (전 세계면 더 좋고!)
우리의 슬로건은 이렇게 정하고 싶다.
“가사, 돌봄 노동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라!”
“우리에게 근로소득세를 부과하라!”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흐뭇하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말이 돼야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