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써서 가슴을 채우는 모임중독자
서지은
2019년 가을 어느 날 편두통이 생겼다. 뇌파검사, 경동맥 검사, 뇌mri까지 해서 이상 없음을 확인했지만 큰병일까봐 불안해서 잠들지 못했다. 수면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호르몬 불균형이 와서 가슴 통증이 생기고, 불안은 커지고 악순환이었다. 집 앞 정신건강의학과 간판이 보였다. 살려고 그랬는지 ‘정신’은 안 보이고 ‘건강의학과’만 보였다. 몸 전체를 보는 건강의학과에 가보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정신과’였다.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약을 먹고 난 뒤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인생 두 번째 번아웃이자 처음으로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엄마가 와서 돌봐주었다. 종일 누워서 책을 보다 아이 오면 몸을 일으키는 일상을 보냈다. 엄마는 “무슨 사시 공부하냐!”며 책 좀 그만보라고 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읽었다. 반년 이상 시간이 지나니 좀 나아졌다. 나아지고 나니 사람이 그리웠다. 혼자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수다 떨고 싶었다.
서울이면 친구들, 동문들과 뭐라도 해 볼텐데 남편 직장 때문에 내려온 무연고지 수원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지. 아파트 단톡방에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 공고를 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지원했다. 7명 정도 모여 모임을 시작했다. 10명까지 늘었다줄었다 하면서 고정 멤버가 생겼다. 문학, 비문학 매 월 번갈아가며 책을 정해 읽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시작한 아파트 독서모임이 고정멤버 8명에 올해 7년차다. 코로나 때는 카톡이나 줌으로 모임하며 버티고, 4년 전 내가 수원 옆 동네 용인으로 이사 왔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아파트로 가서 모임을 하고 있다.
“어릴 적에 엄마가 제 말을 안 들어줬어요. 생각해 보니 저는 어디서도 제 의견을 말해 본 적이 없어요. 친구들이 뭐라고 말하면 항상 그 말에 따랐고요. 여기 모임에 오고 여러분이 제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하면서부터 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이번 달 책 ‘내가 누군지도 모른채 마흔이 되었다’를 가지고 모임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60대 한 모임원이 꺼낸 이야기다. 다양한 나이 대의 모임원들이 책을 읽고 어디에서도 꺼내본 적 없는 자기 이야기를 말한다. 내 이야기를 말하고 누군가 들어주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 함께 성장한다. 나의 내밀한 모습과 다른 사람들의 내밀한 모습이 직조해내는 안전, 신뢰, 공감의 연대가 아파트 독서모임의 핵심이다.
아파트 독서모임 외에 오래 된 모임으로는 모닝낭독 모임이 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가입해 활동하던 그림책 카페에서 2022년 토지 읽기 북클럽을 했다. 1년 6개월 계획으로 토지를 읽는 모임이었다. 5권까지 읽고 완독을 못한, 언젠가 읽어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는 토지를 같이 읽기 힘으로 읽어 보자 해서 시작했지만 과연 완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돈을 내고 듣는 수업도 아니고, 벌금이 있는 것도 아닌 강제력 없는 같이 읽기에서 중도하차는 쉬우니까 나를 믿을 수 없었다. 토지 완독을 위해 고안해낸 방법은 낭독모임이었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아침 7시에 모여서 30분간 토지를 읽는 거다. 몇 명이 모일지 모르지만 모인 사람 수만큼 30분 시간을 한 정해서 읽는 거로 해서 사람을 모았다. 토지 북클럽을 하는 분들 중 4분이 손을 들었고 나까지 5명 멤버로 1년 6개월 토지 낭독 대장정을 완료했다. 그리고 낭독하기에 좋은 한국문학을 대상으로 낭독모임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나는 필요하면 모임을 만든다. 클레어 풀리의 <진실프로젝트> 소설을 읽고 좋아서 원서로 읽고 싶은 마음에 영어책 읽기 모임을 만들었고, 아이 영어책 읽히는 걸 혼자하면 잘 안되니까 사람들과 인증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모임은 ‘걷기인증 모임, 아침 루틴 인증 모임, 읽기일기모임, 월1회 카톡 독서토론, 아파트 독서모임, 모닝낭독, 페미니즘 책읽기 모임(격월)’이다. 모두 자발적 모임이고 무료이며 강제성은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모임을 많이 할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혼자 하기 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편두통에서 시작되어 우울의 시간을 거쳐 쓰러졌다 기력을 되찾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독서모임을 만든 거였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책을 통해 교감하고 각자 지나온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안전한 공간이 생기자 활력이 생겼다. 코로나 때 다시 한 번 무기력과 우울이 찾아왔었는데, 그때 모닝 낭독이 큰 힘이 됐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과 위로가 됐다. 7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을 힘이 없어줌에서 비디오 끄고 청취만 한 달 정도 했다. 모닝낭독 멤버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내 몫까지 낭독해주며 기다려줬다. 다른 모임들도 많지만 이 두 모임은 나의 소울 메이트 존이다. 모임에 중독된 이유는 관계지향형인 성격과 기질탓도 있겠지만 함께 하는 힘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 할 때 할 수 있는 것, 그 울타리가 주는 든든함 때문에 모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