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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Oct 03. 2019

잠을 애태운다

습관적 가위눌림


새벽은 아직 한참 남았고, 이젠 뜬 눈으로 잠을 애태운다. 


자의든 타의든 나는 잠드는 시간이 늘 달랐다. 12시가 넘어야 게으른 몸을 뉘이곤 했고, 불규칙한 수면 습관 덕에 그보다 몇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잠들곤 했다. 중첩되지 못한 수면은 눈밑에 깔려 침작되었으며 주먹처럼 움츠러든 내 어깨에 대해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매일 같은 자리였음에도 낯설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것처럼 한참을 뒤척이며 내 목의 미세한 각도를 맞춰야 했다. 조금의 흠집도 용납하지 못하던 장인처럼 오랜 시간을 심사숙고했고 결과는 매일이 달랐다.


하루의 밑단을 적시는 불쾌한 저녁 비에 습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머리에 눌린 베개의 패인 정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으며, 가장 문제가 되는 스스로도 가늠되지 않는 지랄 같은 기분이 나를 끝낼 수 없는 하루에 묶어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목줄 매인 강아지처럼 몸을 뒤틀며 짖었다. 내가 세워둔 밤은 누구보다 느렸고, 또렷하게 째깍거리는 시간은 썰물처럼 빨랐다. 나는 잃어버린 새벽을 계산했다. 


잠든다는 건 이렇게 열 줄의 문장을 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작은 반이라 했지만 난 아직 남은 반을 지켜야 보랏빛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엔 공포로 다가왔다. 비 내리던 날 학교 선생님이 해주던 무서운 이야기나 TV 속에서 풀어대는 시시한 말들이었지만, 어설프게 주워들은 내용들은 이미 내 안에서 충분하게 발효되어 있었다. 


목 뒤부터 죄어오는 꿈의 손길. 붙어있지만 내 것이 아닌 듯한 팔과 다리. 코 끝을 스치는 피하지 못한 밤의 입김. 감은 채 잠겨진 눈두덩 뒷면에서 낯선 인기척이 느껴졌다. 숨을 빼앗아가는 중력과 멈춰버린 피의 순환 속에서 잊지 않고 기억해둔 한 가지. 심장을 쥐는 듯한 가위에서 벗어나는 법은 손가락 끝에 힘을 줘서 움직이면 된다고 했었다. 바싹 자른 손톱이 하얗게 질렸고 보이지 않은 인기척은 한결 가까워졌다. 더 감을 수도 없는 눈을 감으면서 나는 입력된 명령어처럼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만 반복할 뿐이었다. 손가락 끝에서 이 낯선 공포가 튕겨져 나갈 때까지. 흠뻑 젖은 이불을 걷어차며 튕겨 오를 때까지.


밤에 젖어 뉘이는 자리. 아마도 9년 전쯤 처음으로 눌렸던 가위.


앞서 말했지만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스무 살이 넘도록 이 십여 년 말로만 듣던 가위눌림은 한 번 찾아온 뒤로는 익숙한 얼굴을 시도 때도 없이 드밀었다. 모처럼의 외박에 바뀐 잠자리가 불편할 때면 여지없이 함께였고, 때론 무탈했던 하루에 찾아와 훼방을 놨다. 공포가 무뎌진 자리에는 짜증이 눌러앉았다. 이제 가위를 깨는 건 어렵지 않았고, 그저 불청객 같은 불면에 이은 또 하나의 수면장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버릇이 된 가위눌림은 마음둘 곳 없는데 왜 이토록 괴롭히는걸까.


소화해내지 못한 하루가 발끝에서 체해 뱉어낸 악몽. 그것이 낳은 솔직한 새벽의 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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