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쯔와 호쇼르가 있는 몽골음식점, 잘루스 & 새응배노
몽골의 사람들은 고기를 정말 많이 먹습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아 농사를 짓기 어려운 유목민의 특성상 곡식보다는 육류 위주로 식습관이 형성된 것입니다. 수십 마리의 양 떼를 가볍게 몰고, 거친 말을 힘으로 제압하는 그들의 근육을 보고 있노라면 그만큼 고기를 먹어줘야 하는 게 십분 이해되고도 남습니다.
몽골 고비 사막에 일주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고 느낀 게 있습니다. 몽골 음식은 고기+밥, 고기+면, 고깃국 아니면 그냥 고기라고요. 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요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채식주의자들은 물론이고 평소 고기 잡내나 누린내에 민감하다면 몽골 여행의 현지식이 입에 맞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만두도 예외가 아닙니다. 만두소에 중국이라면 부추, 한국이라면 두부와 김치, 이렇게 식물성 재료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몽골의 만두는 완전한 고기만두 그 자체입니다.
언젠가 몽골 여행을 다녀온 추억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에는 서울에서 만난 몽골 음식점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근처 골목에는 ‘몽골타운’이 있습니다. 이 근처에 러시아, 우즈벡, 네팔 음식점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몽골 음식점까지 있다는 건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실. 몽골 슈퍼나 식당이 모여있는 몽골타운은 인천 차이나타운이나 이촌 재팬타운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몽골 식당 '잘루스'가 있는 건물은, 지하부터 꼭대기 층까지 모두 몽골 가게로 가득했습니다.
‘잘루스’에 들어가기 전 먼저 같은 건물의 몽골 슈퍼를 구경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냉동고 안에 양고기를 덩어리째 팔고 있던 겁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몽골 요리에는 고기가 빠지지 않는데, 몽골처럼 양고기를 쉽게 구하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이런 마트를 애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고기뿐 아니라 미리 예쁘게 빚어놓은 고기만두도 냉동제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잘루스’에 들어와 메뉴를 처음 봤을 때, 저렴한 가격에 사뭇 놀랐습니다. 한 접시에 만원을 넘지 않는 착한 가격. 몽골분들이 현지의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했다면 생소한 외국음식이라는 타이틀로 음식값이 제법 비쌀 만도 한데, 이 가게는 아무래도 타깃이 조금 다른 듯하니까요.
몽골에서 제일 유명한 만두는 ‘보쯔’와 ‘호쇼르’입니다. 보쯔는 찐만두, 호쇼르는 군만두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약간의 채소와 함께 양고기를 다져 넣은 보쯔는 우리가 흔히 아는 한국, 중국의 만두와도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중국어 바오쯔(包子, 포자)와 발음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두툼한 피를 찢으면 육즙이 새어 나옵니다. 진한 육즙이 감싸고 있는 만두소는 고기완자라 해도 믿을 것 같은 갈색. 지극히 몽골스러운 맛입니다. 현지에서는 케첩과 함께 먹곤 했는데 여기선 사워크림이 함께 나옵니다. 느끼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꽤 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호쇼르는 몽골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비주얼의 만두입니다. 가게에 따라 살짝 둥글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반달 모양을 띠고 있고, ‘속이 있긴 한 건가? 싶을 정도로 납작한 것이 특징입니다. 보통 몽골 식당의 몽골분들은 메인 메뉴 외에 호쇼르를 인당 하나씩 주문해서 먹곤 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공깃밥 개념인가 싶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다른 메뉴를 주문하지 않고 호쇼르 두세 개만 먹고 나가는 분들도 있고요.
몽골에서는 빵 먹듯이 손으로 집어 반으로 접어 먹곤 했습니다. 잘루스의 호쇼르는 절인 양배추를 함께 내어주어, 느끼하지 않고 아삭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양배추 절임을 곁들여도 느끼하다 싶으면 보쯔와 마찬가지로 케첩을 곁들이면 좋습니다.
두 만두요리 외에도 면과 고기를 함께 볶은 칼국수 볶음, 그리고 큼직한 양갈비가 채소, 감자와 함께 담겨 나오는 양갈비 요리까지 주문했습니다. 이곳의 양갈비는 흔히들 말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것과는 느낌이 살짝 다릅니다. 조금만 힘을 줘도 쉽게 썰리는 부드러운 갈비가 아닙니다. 껍질이 그대로 붙어있어 야성적인 향과 식감을 자랑하는, 야생의 양갈비. 터프하고 질긴 맛입니다. 하지만 몽골 여행을 추억하는 저로서는 이 강인한 ‘몽골스러움’이 이상하게 자꾸만 생각나더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돌곶이역 근처 ‘새응배노’라는 식당을 다녀왔습니다. 새응배노(Сайн байна уу)는 몽골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입니다. 인사말과 감사인사 정도는 다양한 나라 말로 알아두어도 나쁘지 않겠죠? 외국에 있는 ‘Anneyonghaseyo'라는 한식당에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요상한 생각을 해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SNS 후기를 보고 얼추 예상하긴 했지만 이곳의 한국인 손님은 저희밖에 없었습니다. 이문동 쪽에도 몽골분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는 건지, 아니면 이 가게가 몽골분들 사이에 워낙 유명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장님과 손님들이 살갑게 몽골어로 잡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기가 서울 이문동 맞나 싶은 위화감이 살짝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직원분이 한국어를 못하시는 것은 절대 아니니 지레 겁먹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번에는 호쇼르와 함께 야채미니만두국을 주문했습니다. 이 만둣국의 비주얼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익숙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만두, 고기, 양배추와 함께 들어있는 것은 프렌치프라이에서나 볼법한 주름 잡힌 감자채. 이 예쁜 감자가 튀김이 아닌 국물 재료로 나온다니 사뭇 생소합니다.
국물은 살짝 주황빛을 띠는데 이걸 어떻게 간을 했을지 일단 궁금하죠. 한식이었으면 당연히 된장과 고추장 베이스를 생각했을 텐데 몽골 요리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맛을 보니 살짝 케첩 맛이 나는 것이, 양배추와 토마토로 국물을 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제일 중요한 건 만두인데요. 수제비처럼 두툼하고 쫄깃한 만두피를 씹으면 그 안에 고기 한 조각이 들어있습니다. 만두 자체의 맛도 좋지만 고기와 채소 같은 다른 재료, 그리고 국물 한 숟갈과 함께 먹으면 더 좋습니다.
몽골에 가보면 가게마다 호쇼르의 맛도 모양도 정말 다양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새응배노의 호쇼르를 먹고 또 한 번 그걸 느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삭한 만두피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호쇼르는 바삭함과는 살짝 거리가 있습니다. 튀김만두보단 지짐만두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요. 만두피의 안쪽은 부드럽다 못해 살짝 쫄깃하기까지 합니다. 상상이 가실지 모르겠지만, 만두보다는 호떡믹스에 좀 더 가까웠습니다. 많이 느끼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케첩을 곁들였습니다. 손님들이 자주 요청하는지 계산 카운터 쪽에 이미 케첩 몇 개가 놓여있으니 사장님께 이야기하고 부담 없이 가져오면 됩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맛이지만 저에게 있어 몽골 음식은 유난히 특별합니다. 먹을 때마다 저를 이 시끄러운 도심에서 잠시나마 떨어뜨려놓는 어떤 느낌. 만두만 놓고 보자면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만두라고 할까요.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유유히 지어진 게르에서 먹던 호쇼르가 자꾸만 생각납니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요즘, 만두 맛집으로라도 잠시 여행을 떠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