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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봇 Nov 15. 2020

만두로 국내여행2 - 부산 명장동

힘든 심신을 치유해주었던 두 만두가게

부산으로 출장을 간 날이었습니다. 지방 출장은 잦은 일이지만 그날은 좀 달랐습니다. 오후 느지막이 시작해서 해 지기 전에 끝나는 여느 일정과는 달리 그날은 새벽부터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 출구조사의 조사원 감독관 업무였는데, 꼭두새벽에 조사원들을 데리고 투표장으로 가야 하니 제가 그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저는 잠이 정말 많습니다. 평소에도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11시 전에는 꼭 잠에 듭니다. 새벽 1시 넘어서 자는 날은 정말 드뭅니다. 그렇다고 딱히 새벽같이 일어나지는 않지만요. 최소 6시간의 잠을 보장해줘야 다음날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한편 잠을 못 자는 날이 계속되면 몸의 어느 한구석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면서 아프기 일쑤입니다.


 그런 제가 불편한 숙소에서 몇 시간 눈도 못 붙이다가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났으니까요. 겨우 조사원들을 배치하고 이 투표소 저 투표소를 돌아다니다가 문득 시계를 보았을 때, 그리고 아직 아침 8시밖에 안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좌절감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면 아직 출근도 안 했을 시간에 나는 몇 시간이나 일을 한 거람.... 그때부터는 졸린 수준을 넘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맛있는 음식도 저를 즐겁게 해 줄 순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오직 잠만이 필요할 뿐.


 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결국 끼니가 되면 밥은 먹고살아야지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저는 다짐했습니다. 한 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맛있는 만두라는 보상을 내릴 자격이 충분하다고요.

 

 점심 먹을 동네로 낙점된 곳은 명장동이라는 동네였습니다. 맡은 투표소에서 가까웠다 뿐이지 평소에는 가보기는커녕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동네. 이곳에 제 지친, 아니 졸린 영혼을 치유해줄 두 개의 만두 맛집이 있었습니다.



 

처음 찾은 곳은 '태산손만두'였습니다. 겉보기에는 흔한 동네 만두가게처럼 생겼지만 만두의 맛만큼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만둣국 한 그릇을 주문하니 만두 8알이 든 뜨끈한 한 그릇이 나왔습니다.

 


 이 만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만두피.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얇고 부드러워서, 국 안에서 하늘하늘거립니다. 마치 부산의 명물인 '완당'을 연상케 하는 고운 비단결, 아니 만두결입니다. 부드러운 피와는 달리 소의 식감은 빽빽하면서 고소한 고기 향이 확 납니다.


  뜨거운 국물이 어느 정도 식자 만두를 한입에 넣어 먹어봤습니다. 이렇게 앙증맞은 부드러움 덩어리가 한입에 쏙 들어간다는 건 큰 행복입니다. 잔치국수처럼 계란, 양파 등을 넣어 담백한 감칠맛이 있습니다.

 뜨거운 만둣국 국물이 들어오니 그제야 굳었던 머리가 다시 돌아가고 눈에 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동네 만둣국일지도 모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불어넣는 소중한 요리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원래 메뉴에 튀김만두가 있어서 같이 주문하고 싶었는데, 튀김만두가 최근 메뉴에서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막 꾸물꾸물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저의 머리와 위장은 한 그릇의 만두를 더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생소한 동네에서의 맛집 투어를 여기서 멈출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근처에 있는 '일미만두'입니다. '태산손만두'가 동네에 있는 정겨운 만두가게 이미지라면, '일미만두'는 오랜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노포 그 자체의 이미지입니다. 오래된 천막에는 간판조차 붙어있지 않아 미리 알지 않으면 찾아가기도 어려울 듯합니다. 이런 오래된 외관에서 저는 맛집이라는 강한 확신을 찾는 편입니다.


 앞서 만둣국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군만두를 한 접시 주문했습니다. 이미 한번 찐 후에 상온에 식혀둔 조그마한 만두. 생김새는 잎새 만두를 닮았는데, 한입에 먹기 딱 좋은 앙증맞은 크기입니다. 가게 안쪽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튀기듯 굽습니다.



 후추의 터프한 향, 그리고 잡채에 들어갈 것 같은 큼직한 고기 조각의 육질이 느껴집니다. 이 조그만 만두 안에 담기기엔 너무나 힘이 넘치는 만두소. 게다가 철판에서 무심하게 튀겨낸 만두피는 완벽하게 바삭하면서 부드럽습니다. 앞서 먹은 만둣국이 가냘픈 비단결의 이미지라면 이 군만두는 도복을 둘러맨 무술인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한입 먹을 때마다 얕은 펀치 한방을 먹는 듯한 만두랄까요.


전혀 다른 매력의 두 만두를 먹고 나니 졸음이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이렇게도 깨울 수 있는 것이군요. 만두의 힘 덕분인지 그날 감독관 역할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다시 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명장동의 두 만두집은 지금이라도 다시 찾아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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