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원의 중국 만두, 마야크의 조지아 만두
부산 여행을 가면 꼭 들리는 곳이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입니다. 꼭 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들린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역 바로 앞에 있으니 여행의 시작과 끝에 잠깐 다녀오기 좋기 때문입니다. 서울행 기차 출발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남는다면 역으로 가기 전에 차이나타운으로 먼저 향합니다.
1884년 초량동 지역에 청나라 영사관이 설치된 것이 그 시초라 하니 부산 차이나타운의 역사는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지금은 지역 특화 발전 특구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죠.
부산 차이나타운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신발원(新發圓)의 콩국을 먼저 꼽습니다. 만두 맛집으로도 유명한 신발원에서 왜 만두봇이 만두가 아닌 콩국을 꼽는지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신발원에 처음 간 그 옛날 콩국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두 번째는 이런 콩국을 다른 어디에서도 맛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탕을 딱 적당히 넣어 너무 밍밍하지도 달지도 않은 뜨끈한 콩국. 한 숟갈 떠먹으면 건강하고 담백한 고소함이 속을 가득 채웁니다. 여기에 바삭한 과자를 넣어 먹으면 간식으로도, 아침식사로도 제격입니다. 가족들도 이 콩국을 너무 좋아해서 서울로 가기 전 한 두 그릇 포장해가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요즘 이곳의 대표 메뉴는 역시 고기만두인 것 같습니다. 얇음과 두툼함의 애매한 경계에 있는 만두피 안엔 고기소가 빽빽하게 가득 차있습니다.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육향. 마늘 넣은 양념장에 찍으면 고소함을 더합니다.
혹시 고기만두를 평범하다고 느낀다면 새우만두를 추천합니다. 이제까지 본 새우만두 중 가장 크고 실한 통새우가 들어있었습니다. 부추가 예쁘게 박혀 있는 만두피는 딱 기분 좋게 얇고, 고기와 새우, 채소를 한입에 모두 먹을 수 있어 나무랄 데 없는 맛입니다.
만두 한 그릇을 다 비운 후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여기서 디저트도 사가면 됩니다. 월병, 공갈빵, 꽈배기 등 지극히 중국스러운 제과류가 많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직접 만든 것이니 공산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맛있습니다. 1951년부터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이어져오는 전통의 그 맛을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차이나타운에서 신기한 것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식당들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빨간 가로등과 홍등을 따라 죽 걷다 보면 어느샌가 간판의 언어가 한자에서 키릴 문자로 바뀌어있는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찾은 정말 신기한 식당이 마야크(Маяк)라는 곳이었습니다. 러시아어로 ‘등대’를 뜻하는 마야크는 러시아도, 우즈베키스탄도 아닌 조지아(Georgia)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놓여있는 조지아. 소련 시대의 기억이 남아있는 분이라면 조지아, 그루지야는 러시아의 일부가 아닌가 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지아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현재의 러시아와는 엄연히 다른 국가입니다. 인류 최초 와인의 발상지라는 타이틀도 있고,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는 휴양지가 많다고도 해서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입니다.
마야크를 처음 가본 것은 초록 검색창에 후기도 몇 건 올라오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바깥에서는 큰 간판만 보일 뿐 유리창 하나 보이지 않는 수상한 가게. 내부는 유럽 어느 나라 동네 술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소박한 분위기였습니다.
조지아 전통 빵인 ‘하챠뿌리’, 고수를 넣어 특이한 향의 고기스튜 ‘챠호크빌리’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힌칼리(킨칼리)라는 만두였습니다. 생긴 것은 중국의 소롱포를 닮았고 육즙이 꽉 찬 것도 비슷합니다. 다만 그 크기와 두께가 소롱포의 거의 2~3배에 달합니다. 고기가 빽빽하게 찬 만두소는 중국보다는 몽골의 것을 연상케 합니다.
힌칼리는 먹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다. 밀가루가 뭉쳐있는 꼭지 부분을 손잡이처럼 들고 만두를 먹은 뒤 꼭지는 버린다고 합니다. 마야크의 사장님은 구멍을 뚫어 육즙을 먼저 마신 다음 나머지를 먹으면 된다는데, 식사 후 주방의 요리사분께 다시 물으니 국물이랑 고기랑 그냥 한입에 다 먹으면 된다고 합니다. 같은 식당의 두 명의 이야기가 다르군요…. 어느 쪽이든 개인 취향에 맞게 먹으면 될 것 같습니다. 육즙을 흘리지 않도록 부드러운 만두피와 고기를 한입에 먹으면 입안에 만두가 가득 차 흐뭇해집니다.
20대의 여행객이 음식 하나하나를 너무 맛있어하는 모습이 사장님은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조지아의 역사와 요리, 그리고 가게 곳곳에 있는 소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십니다. 러시아어 발음이 지배적이지만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는 그 특유의 한국어 실력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지아 전통 모자를 쓰고, 소뿔로 만든 와인잔을 들고 사진을 찍으니 흡사 민속촌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의 마야크는 맞은편 건물로 이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록 예전 그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미지의 세계 음식점은 얼마든지 많지요. 그 생소하고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쁨이 아직도 종종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