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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봇 Aug 20. 2020

만두소가 고마워!

당연하게 생각했던 만두소에 감사했던 이야기

치아교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른쪽에 큰 덧니가 있고, 살짝 무턱의 모양새가 있는데 이걸 잡아주는 게 낫겠다는 이유입니다. 정작 본인은 별 생각이 없었지만 애인과 어머니의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두 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한다면서요.


 아무리 현대 의술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치아교정이라는 것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년 넘게 잘 쓰고 있던 이빨을 갑자기 밀고 당겨서 위치를 잡아주겠다는데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건 큰 고통입니다. 교정기에 음식물이 끼는 것은 문제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한 입 한 입 씹을 때마다 ‘이게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잇몸과 이빨이 아픕니다. 먹는다는 것이 곧 고통스러운 행위로 치환되는 것은 눈물 나게 서럽습니다.


 교정장치를 부착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순댓국을 먹으러 간다기에 저는 따로 빠지기로 했습니다. 평소였으면 맛있게 먹었을 순댓국이지만, 그 안의 각종 내장, 머릿고기들이 쫄깃쫄깃하게 이빨을 괴롭힐 것을 생각하니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하염없이 식당가를 헤매다 문득 눈에 들어온 곳이 어느 만두 체인점이었습니다.


 떡이 들어서 떡만둣국은 제외, 바삭하니까 튀김만두는 제외, 질기니까 피냉면은 제외. 이것저것 다 빼고 나니 남는 건 찐만두뿐이었습니다. 고기찐만두 한 접시를 주문하고 홀로 걱정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쪄서 나온 만두피는 그래도 좀 부드러울 거라는 일말의 기대. 하지만 그 기대는 첫 입에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세상에 만두피가 이렇게 씹기 어려운 음식이었나요? 밀가루가 이만큼 뭉쳐졌다고 해서 교정기 끼운 이빨이 이렇게 아플 수 있는 것인가요? 만두의 모양을 잡기 위해 피를 겹쳐놓은 부분은 훨씬 더 씹기 어려웠습니다.


 의외로 만두피보다 더 씹기 쉬운 것은 만두소였습니다. 만두소의 재료는 고기와 야채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 잘게 다져서 들어갑니다. 그렇다 보니 씹기 많이 어렵지도 않고, 조금만 씹어도 삼키기 쉬웠습니다.


 조그맣게 다진 돼지고기를 보고 있으니 문득 그날의 아침식사가 생각났습니다. 출근하기 전 닭고기를 부드럽게 굽고 가위로 잘게 잘라서 겨우겨우 먹었거든요. 제가 고기를 가위로 잘랐듯, 만두소 재료들을 다진 것은 곧 저의 씹는 행위를 대신해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날 열심히 고기와 야채를 갈아서 만두피 안에 빚어넣었을 누군가가 있어 저는 아프지 않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만두에 재료를 다져 넣는 것을 얼마나 당연하게 생각했던가요. 너무나 새삼스럽게도 저는 이날 만두에게, 그리고 만두를 만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만두소를 만들기 위해 들였을 시간과 노력이 감사했습니다. 혹자는 만두 가격에 포함된 것을 정당하게 받았을 뿐인데 뭐가 감사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살다 살다 만두에 감사할 일이 있구나 싶기도 하네요.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가 우리의 마음을 아주 조금씩 더 따뜻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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