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한 개를 넣고 입 안에서 우물거리면 밥과 다양한 속재료가 어우러져 밥과 반찬을 따로 먹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맛을 내준다.
내가 만든 김밥은 일명 ‘지혜 김밥’으로 먹어 본 사람마다 맛있다며 역시 집 김밥이 최고라는 찬사를 날려준다.
재료는 간단하다. 다진 소고기에 양념을 직접 하고, 단무지, 우엉, 게맛살, 계란과 함께 오이를 채 썰어 넣는다.
오이를 소금에 절이는 절차가 귀찮아 잘게 채 썰었던 것이 오히려 아삭한 식감을 살려준다. 처음부터 내가 소고기 김밥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큰 아이가 5살 무렵,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간다는 주간 계획표를 보내주었다. 준비물에 도시락이 적혀 있었는데, 이를 보자마자 거의 일주일 간 대단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9시에 버스를 태워 보내는데, 과연 내가 그전에 김밥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 아침 일찍 문을 여는 동네 김밥집에서 김밥을 한 줄 사서 도시락 통에 넣어줬다.
그런데 아이가 먹기에는 사이즈가 큰 것이 문제. 다음 소풍부터는 내가 직접 싸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6살 때인가, 유치원에서 소풍을 간다기에 마트에서 김밥용 햄과 단무지, 우엉 등 김밥용 속재료를 사서 전날 미리 다듬어 놓고, 아침 5시부터 일어나 복작 거리며 김밥을 서툴게 말아 보냈었다.
다행히 맛도 좋았고, 사이즈도 아이가 먹기 적당하게 만들 수 있었다.
소풍에서 기분 좋게 돌아온 아이에게 당당하게 “김밥 맛있었어?”라고 물어보자 “응.”이라는 단답형의 대답과 함께 “근데 엄마, 왜 우리 김밥에는 소고기가 없어?”라는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응?? 그건....” 적당한 대답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에 소고기를 양념하고 볶기까지 해서 김밥을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야, 안돼에~ 어떤 애가 김밥에 소고기 넣어왔어? 엄마는 아침에 출근도 해야 해.. 너무 바쁠 것 같은데?”
“△△네 김밥에 소고기 있었어.”
“어???”
△△네 엄마는 애가 셋에, 출퇴근도 왕복 3시간 거리를 한다고 저번 학부모 모임에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 그렇구나.. 그래....” 그 이후, 우리 아이들의 소풍 김밥에는 항상 소고기가 들어간다.
처음 시작은 두려웠지만, 막상 해보니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전날 김밥 재료를 미리 준비하며 다진 쇠고기를 양념에 재워 놓고, 아침에 볶아주기만 하면 끝. 물론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나의 김밥 싸기 속도가 빨라진 것도 한 몫했다.
이제 아이들은 내가 김밥을 말기만 하면 옆에 몰려와 꽁다리를 하나 달라고 입을 벌린다.
나에게 김밥은 행복한 기억만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셨다.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9시 정도에 문을 닫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꽤 늦은 시간에 집에 오셨고 그 모습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엄밀히 말하면 국민학교 시절) 운동회에 학부모님들이 오셨었다. 학생과 그 가족까지 모두 모인 운동장은 모래 먼지가 살포시 깔려 있었다. 밝은 태양 아래 삼삼 오오 모여 돗자리를 깔고 앉은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해 운동회에는 우리 부모님이 모두 오시지 못했다.
대신 엄마는 쿠킹 포일에 고이 포장한 김밥을 한 줄 놔두고 출근을 하셨다. 나는 그 김밥을 들고 학교에 갔다.
부모님이 안 온 나를 본 친구 어머니가 같이 먹자는 말씀에 교실에 있는 나의 김밥을 챙겨 나오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에 있어 결국 친구 가족을 찾지 못하고 혼자 교실로 돌아갔다.
다행히 교실 안에 나와 같은 아이들이 한두 명 더 있었던 것 같다. 친한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큰 안도감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생생하다.
친구들은 모두 돗자리를 깔고 엄마 아빠와 김밥에 치킨까지 맛있게 먹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나는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었다.
김밥은 약간 말라 있었고,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혹여나 누가 내 김밥을 볼까 서둘러 먹었다. 그때 나는 꽤 서러워서 혹여나 눈물이 나올까 봐 김밥을 꾸역꾸역 입안에 넣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다.. 말라 붙어 쉬어가는 김밥도, 교실에 혼자 남은 모습도, 친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안도감을 느끼는 내 모습도..
그래서 내가 우리 아이에게 그런 김밥을 싸주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소풍을 가지 않기도 하고 아이들이 많이 크기도 해서 김밥을 쌀 일이 없다. 그래도 가끔 집에서 김밥을 만든다. 스팸을 넣기도 하고, 어묵과 볶은 멸치만 넣기도 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더 이상 이른 아침부터 복작거리며 소고기 김밥을 만들 일이 없지만, 가끔은 지금보다 더 아기 같은, 그때의 우리 아이들이 그립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였을 그때의 엄마를 나는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