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의 '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열 손톱을 다 물어뜯고 헤집어 놓을 정도로 긴장되고, 어려워하는 것도 글쓰기다.
앉은자리에서 술술 써내려 가고 싶은데, 갈수록 잘 되지 않았다.
막힘없이 자판기를 두드릴 수 있을 때만 책상 위에 앉고 싶었고, 예전이라 함은 얼마의 세월을 암시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무튼 잘 쓴 글이든 그렇지 않은 글이든 예전에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가능했으나 지금은 머릿속에 글감이 될만한 단어와 문장이 수십 개 떠올라도 멈칫 거리며 끙끙대느라 쓰는 행위에는 등을 지고 살았다.
(매일 다이어리를 쓰긴 하지만, 하루 50자 안팎의 짧은 일기는 문장의 나열일 뿐이다)
힘들고, 어렵고, 나를 고민하게 하는 난관 앞에 포기하는 일.
한 적이 없으니 포기한 것이 아니다고 자위하는 일.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주의자인 내가 선택한 포기이자, 감당할 몫이라고 체념해도 큰 아쉬움이 없었지만. 다른 것들은 그렇게 살아도 글쓰기는 어쩐지 그렇지 않았다.
어쩌다 필요할 때가 아니면 되도록 긴 글은 안 쓰고 살아도 된다.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을까?
정말?
취미도 특기도 또렷하게 규정할 수 없고, 혼자 단절되어 있을 때가 많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적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무 살 이후로 살 수 있을까,
자꾸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살 수 있을까,
내가 나인채로 살 수 있을까,
물음 아래 10대, 20대, 지금의 30대를 차곡차곡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쓰고 다짐하고, 화를 내고 나를 토닥였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형태로 지껄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읽으나 마나 한 불투명한 글 말고, 아 이건 누가 봐도 무뚝뚝하지만 정을 갈구하는 그 애가 쓴 거야 라고 알아볼 수 있는 개성과 인격을 갖춘 글을 쓰고 싶었다.
일단 저질러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라며 남들은 잘도 위로해주면서, 스스로는 잘할 수 없다면 시작하지 않는 사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참 웃긴다.
지금까지 블로그며, 일기장이며, 편지며 쓰고 싶을 대로 던져두고, 일단 ' 썼다. 뿌듯해라 ' 에서 만족했었으면서 갑자기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 날들이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수원시 평생학습관 강좌를 기웃거리다가 시민인문학교 '언어 발명하기-삶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일일 과정을 만날 수 있었다.
2시간에 걸친 작가 은유님의 강연을 들었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과 사유에 내가 얼마나 부적합했던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좋아하면서도 가까이할 수 없었던 애증의 글쓰기가 구체적인 이유를 갖춰, 돌아보게 했다.
글짓기의 좋은 문장을 만드는 기술적인 방법도 짧게 알려주셨지만, 글을 쓰는 행위의 근본적인 이유와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셨다.
글을 쓰는 것은 현실과 이론 사이의 갭을 메워가는 것.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자기표현 및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 중 나와 무관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존재와 존재를 갈라놓으려는 나쁜 언어에 맞서 존재와 존재를 연결시키는 좋은 언어를 짓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나의 경우와 결부시켜,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동안 글을 쓸 수 없었던 답답한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강연 내용 정리)
1.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생각을 형성하는 도구이다. 글을 써야 생각이 만들어진다.
=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생각이 나야 글을 쓰는 게 아니다고 먼저 작가님은 짚어주셨다. 그럼에도 생각이 나야 쓸 수 있다고 말할 거리를 마냥 기다렸기 때문에 쓸 수 없었다.
1-1. 글에 대한 공포는 글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1-2. 내 생각이 얼마나 초라하고 빈약한지 확인해야 한다.
1-3. 지나친 자의식으로 자신이 해체되는 것을 두려야 하면 안 된다.
초, 중, 고 학창 시절 내내, 곧잘 글을 쓴다고 늘 칭찬과 상을 받았었고, 또래보다는 잘 쓴다고 자신했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다.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책을 읽고 인터넷 속 타인의 글을 보면서 유려한 문장의 이어짐과 박학다식함을 부러워만 했다.
그에 비해 작정하고 쓴 내 글이 형편없을까 봐 두려웠다. 작정하지 않는 것은
뭐, 못쓴다는 말을 듣고 살진 않았으니까. 평균 이상은 되겠지라며 뒷짐 지고 글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1-4. 자기만의 속도로 배우되,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
1-5. 꾸준히 내 속도로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6. 글쓰기는 성공체험이 아니라 실패 체험이다.
1-7. 글쓰기는 혼자 쓰면 늘지 않는다. = 같이 글을 읽고 다듬을 친구가 필요함
1-8. 자기중심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써도 다 아는 것 아니야?)
반대로 내 경우에는 나에 대해 많은 정보와 느낌을 알려주고 싶어, 시작할 수 없는 경우였다.
글 안에서 표현되는 나에 대한 정보가 다일 텐데,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고 싶었고, 조금 더 이해받길 원했다. 그러다 보면 서두가 장황해지고 쓰는 동안 지쳐 스스로 나가떨어지곤 했다.
2. 무엇을 쓸까 / 글감 찾기 (일상생활에서 겪은 일을 중심으로)
2-1. 속상한 일, 화나는 일, 억울한 일, 자꾸만 따라다니는 감정과 사건을 글감으로 한다.
감정에 무디어지면서, 속상할 것도, 화날 것도, 억울할 것도, 적어볼 만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적당히 모른 척 슬쩍 넘겼고 혼자 참는 게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간단한 내 마음 상태도 정의 내리지 못할 때가 잦았다.
눈물은 나는데, 슬프다고 해야 할지 서럽다고 해야 할지.
2-2.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노력으로 믿어지는 것이면 좋겠다.
2-3.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살아온 삶 속 내 안에 글감이 누적되어 있다. 즉 내 경험이 글이 된다.
2-4. 내 안의 편견과 통념이 깨지는 질문을 포착하여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3. 내러티브(이야기) 글쓰기 1원칙 '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
3-1. 추상적인 표현은 몰입이 안된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서 시각화될 수 있도록)
3-2. 자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쓴다. 진실하게 기만하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 후회되는 일의 원인을 모색할 때면, 그리고 그런 글을 쓸 때면 가정환경의 트라우마가 있었고 다시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나 자신을 구제 불능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글을 보고 어떤 사람은 먹잇감으로 삼아 나를 비난했었다.
내가 그를 모르는 만큼, 그도 나에 대해 쥐뿔도 몰랐다. 솔직하게 감정을 올려놓기 위해 적은 몇 줄의 글이 저당 잡혀 내게 상처를 주었다. 있는 그대로 적어간다는 것은 아직도 조금 두렵다.
3-3. 소설의 3요소를 참조 = 인물, 사건, 배경
- 글을 쓴 사람이 보여야 좋은 글이다
- 구체적인 사건이 있어야 한다
- 어떤 장소와 시간, 상황에서 시작해야 한다.
3-4. 서두를 장황하게 쓰면 안 된다. 자기한테 도취된 글이며 불친절한 글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짓이다.
감정에 격양되어, 몇십 페이지는 쓸 것처럼 폼을 잡아두다가 쓰는 동안 기운이 쇠한다.
단순히 힘만 빠지는 거라면 다음날 이어 써도 되겠지만, 쓰는 동안 내용도 주제도 뒤죽박죽 되다가 머리가 텅텅 비어 버린다.
4. 어떻게 쓸까 /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쓰기
4-1. 용기.
어설픈 첫 줄을 쓰는,
남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자기 약점과 결핍을 드러내는
글에 대한 어떤 평가도 받아들이는
다시 글을 쓰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4-2. 글쓴이의 자기 성장이 글 속에 보이도록 써라.
4-3. 상식과 규범을 뒤집어서 생각해봐야 한다
4-4.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은 축복이다.
- 해명해보고 싶은 것, 설명해보고 싶은 것에 글을 써보라
5. 더 나은 글로 고치기
5-1. 중언부언 금지 / 한 말 또 하기는 정작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리게 한다.
5-2. 경제성, 정확성의 원리의 글에 울림이 있어야 한다
5-3. 근거와 사례가 탄탄하면 부사는 필요하지 않다
5-4. 접속사 남용 없애기
5-5. 자신 없는 표현 없애기 (~라고 한다, 그랬던 것 같다)
5-6. 소리 내어 읽어보고 걸리는 부분 고치는 퇴고 작업
5-7. 문장이 너무 길지 않은지, 단어가 중복되지 않았는지, 주어와 서술어가 정확한지
뭔가 영감이 떠올라 글이 술술 써지는 밤도 물론 있었다.
그런 우연에 기대하기엔 나는 더 이상 감성적인 소녀도 아니고, 그렇게 쓴 글이 다시 보아도 괜찮았던 글인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많은 꿈을 포기하고 몇 안 되는 사람들도 지킬 수 없었지만 글은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내가 쓴 글을 사랑하고 싶고, 언제 꺼내어 읽어도 그때의 기억과 감정에 사무칠 정도로 살아있게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글을 못쓰는 사람으로 지그시 눌러두고 싶다.
쓰는 사람은 곧 나이며, 글이 나를 설명해 줄 것이다.
진실되고, 솔직함에 겁먹지 않도록 잘 다독거리며 다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