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조) 변명

잠시 쉬겠다는것이지, 니트족은 아닙니다

by 사막물고기

다시 백수가 되었다.


이번엔 약 1년 6개월 정도 다녔나?

오랜만의 실업자 신분이지만, 낯설지 않고 전보다 다른 점이 그나마 있다면,

실업급여를 탈 수 있는 조건과, 하루에 1-2개 정도 스케줄을 짤 수 있을 정도로 혼자의 시간을 조금은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꼭 퇴사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할 만큼 했다는 느낌과 함께 미련이 사라졌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사람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존경심이 든다.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는지 의기소침해질때도 있고 말이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무색한 시대의 탓을 하고 싶진 않다.

안정적이라고 볼 수 없는 파견직, 계약직, 도급직 신분의 고용형태에 속해있을 때가 더 많았지만 신분이 날 처단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다면 내 성격, 성향에 문제가 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와 방임을 최선의 가치로 알아서 스스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난, 틀에 갇힌 반복되는 사이클링에 더 안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직업을 원하는 것은 이상일 뿐이고, 현실은 책임에 회피하고 수동적인 일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던 거다.

익숙하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뒤늦게 발견한 업무 성향과 타협해 심사숙고하여 일자리를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인내심과 버티기의 한계는 미리 정해져 있던 것처럼 차근차근 갉아먹고 있었다.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자 신분을 회사보다 내가 먼저 더 만들게 된 꼴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큰 비중의 이유가 평탄하지 못한 이런 사회생활의 실망감이었다.

내가 사람들과 더 잘 지낼 수 있었다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났더라면, 끈기가 있었더라면, 참을성이 있었더라면 등등등.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던 결과지를 받고도, 나와 다른 가정의 목표를 만들어 괴롭혔다.


한 친구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큰 목표이고 정말 일이 재밌어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마지막 직장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고, 그것이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은 목표의 식 없이 출퇴근만 반복한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큰 기대를 갖지 말아야겠다며 이를 갈았다.


회사에 기대를 가지고 근무를 하던, 출근 도장 찍기 식으로 근무를 하던 어떤 것도 자기 이상향에 완벽한 유토피아적 회사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더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업무 욕구를 불태워줄 회사가 없다고 부조리하다고 토로하는데,

'요즘 회사들이 그렇더라, 우리 나이가 있지 않은가',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들을 들어

입 맞게 맞게 변형해 위로해 줄 수도 있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인정하면 편하다.


나 자신의 결점을 파악하고 애를 써서라도 원하는 가치관에 맞게 직장생활을 해야겠다는 결심이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마음먹어본 적이 없으니)

회사를 내가 존재하는 이유의 큰 틀로 규정하면 일을 해야만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상실감에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한 직장을 버텨낼 에너지가 다 소모되었고, 그래서 휴식기를 갖고 싶다면 군말 없이 비워진 채로 지내도 된다.


상사나 동료들이 나와 맞지 않았고,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회사였었고,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었고 하는 생각들이야, 다니고 있는 동안에는 궁시렁거릴 가치와 자격이 있지만 그만두면 끝내야 하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물론, 아무 잡생각 없이 마냥 잘 쉬겠다고 결심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소득이 없는 사람의 마음이지만,

몇 개월 일지 몇 년 일지 모를 에너지바를 100에서 긁어낼 직장을 찾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믿을것이다.


하나로 길게 이어지지 않는 단발 통을 여러 개 가진 사람도 있고 긴 원통의 삶을 가진 사람도 있다.

각자 생긴 대로 능력 껏 살고, 그 가치가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력서를 보고 ' 아, 끈기 없는 사람이군 ' 판단받아도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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