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로 꼭 통할수 있는건 아니잖아
핸드폰에 전화 기능을 선택적으로 탑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내가 사는 동안에는 영원이 고르지 않을 기능일 것이다.
만일을 위해, 급한 경우, 비상시를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명분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긴급상황'이 일어났던 적도 없고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긴급상황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든다.
당장 자기가 하소연하고 싶고, 털어놓고 싶은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여,
부재중 전화 몇 통의 알림을 보고도 당장 전화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런 상황이 경우에 맞는 건지 질타를 받았다.
다행이게도(?)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었고 '만일'을 가장하여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냐고 전투적으로 물어오며 추궁하는데 기분이 더럽고 이상해졌다.
자기 기준대로 입맛대로 판단하고 사는 세상이라지만, 전화는 재깍 받아야 하며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다면 전화로써 다시 콜백 해야 한다는 법령이라도 있나?
나는 전화가 불편하다
어느 땐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불쑥 울리는 게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즐거움은 어쩌다 한번 가끔 느낄 만한 것이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했으면 하지 전화로는 하고 싶지 않다.
자기만의 당연하다는 기준 때문에 각자, 알아서 충분히 서운해하는 시간으로 이해관계를 망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깨는 약속, 약속시간에 늦는 문제, 언제 생길지 모를 개인의 사정이라는 것에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했고 순간적인 짜증은 나지만 그때뿐이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항상 닿아있기 위해 준비해야 될 사람들이 아니다.
개인의 시간은 소중하고, 의도적이지 않다면, 의도적이지 않음을 가장한 본심을 숨겨하는 경우라면,
그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든 사정과 비밀에 대해 알아야 할 권리도 없고 추궁할 수 있는 위치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성격이 느긋한 편은 아닌데 또 불같진 않아서
내가 상대편에게 한 번도 낸 적이 없는 화로 되돌려 받을 때는 어이가 없다.
그래도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이해해보려고는 노력한다.
나는 이해가 안 되는 일로 상대방이 속상하다고 하니 그래도 예의상 미안하다고는 해주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전 남자 친구에게 답답했던 점이 이랬던 경우였을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났다.
감정도 없고, 공감능력도 없는 사이코 패스라고 생각했는데
길게 적어놓고 보니 아, 내가 그놈과 같이 바삭하게 말라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숨 좀 고르고 다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겠지만
사람 사이 틀어지고 갈라서는 게 대단한 계기로, 누가 많이 잘못해서 그르치게 되는 것 아닌 것 같다.
사소한 것도 이해 쟁점이 다르면, 누가 잘했네 못했네 따지는 것도 피곤하고 그렇게 서로 등을 지게 된다.
성숙한 싸움이 어딨고 화해가 어디 있을까.
각자 순간의 감정만을 우선으로 쏟아내는 것에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