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운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니 아직도 그러고 있다.
나라면 결코 쉽게 건넬 수 없는 물음과, 다소 무례한 질문들, 자기식대로 내리는 판단과 평가까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을 종종 본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어휴 많으시네요”
“얼른 시집가셔야 하겠어요”
“키가 몇이나 되세요”
“꽤 크시네요” “덩치가 있어서 그렇게로는 안 보여요” 혹은 “덩치가 있어서 더 크게 보이네요”
“주말엔 무얼 하고 보내세요”
“활동적으로 지내셔야지요”
“사람은 계속 만나봐야 합니다”
가볍게 대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청하지도 않은 상담의 상담학자들이 되어 이런저런 충고를 받노라면 사람이 무서워진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다고 머리는 이해하고 있지만, 자꾸만 곱씹게 되는 마음의 귀는 어느 한구절도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불합리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 자리에서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소심하다고 말한다.
머릿속으로는 과격한 언어의 표현과 상상으로 흠씬 두들겨 패대기를 칠 수 있는데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뻥긋하지 못하는 나도 그래서 소심한 편이라고 설명한다.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어색해진 시간을 견뎌내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익숙하다.
내 말 한마디의 표현으로 틀어질 사이라면 더 만날 가치가 없는 인연이지만, 소심함에 지배되어 만나온 나의 대인 관계의 폭은 고르고 말고 할 정도로 넓지 않았다.
곁에 있는 몇 되지 않은 사람들과 최대한 문제없이 지내길 소망했고, 좁고 깊게 사귀는 편이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바람대로 흘러갈 수 있었던가?
유독 사람으로 힘든 시기가 올 때가 있다.
특정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 일만 가지고 논쟁할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다행인 편이다.
대부분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을 쌓아두다가 기폭제에 반응하듯 터트린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풀어갈 방법의 길을 잃기도 한다.
즐겨 찾을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은, 인맥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크게 반등 없이 같은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건, 내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경우엔 반대였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실시간으로 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고, 일대일로 만나는 것은 그보다는 덜 하지만 그 역시도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좁고 깊게 사귀는 편이 더 좋다고 말할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혼자라면 외로움은 당연하다.
내가 나인채로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을 때가 혼자이지만, 영원한 혼자는 싫어, 사람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버둥거리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생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는 외로움은 어쩐지 창피하고 구차한 감정이라 들키기 싫고,
만난 지 오래된 사람에게는 단순한 외로움의 결로 이해받는 것이 서운하다.
홀로 됨은 세차게 나부끼는 낙엽만 가득한 쓸쓸한 거리와 같다.
나는 이 거리에서 벚꽃이 피는 것도 보고 싶고, 손을 잡고 걸어보고도 싶다.
한그루의 나무에서 다른 한그루로 넘어가기 전까지 서로 기억할 수 있는 질문으로 한 가지씩만 차근차근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소생되고 싶다.
잎도 꽃도 다시 피고 사람이라는 풍경도 그려 넣고 싶다.
우리 이제 화해하자 손을 맞잡고 흔들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둘도 없는 친구가, 연인이 된다.
참 소소로운 일들로 다투고, 대단하지 않게 다시 만난다.
순수성이 깊다 함은, 나도 저번에 잘못했으니까 이번에는 너도 잘못할 수 있지 하며 그 잘못에 관대하고 언제든 기회를 다시 준다는 것이다.
앙금이 쌓이는 어른은 ‘어떻게’라는 수식을 붙여 마음을 편협하게 만든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내가 어떻게 했는데’
나의 좁지만 깊다고 할 수 없는 대인관계는 벽을 쌓고 있었던 나의 문제였다.
혼자가 너무 좋아 어디서든 꿋꿋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혼자 잘 지내는 편이라고, 그 편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외로움에 치를 떠는 것과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 중 그래도 후자를 택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고, 자기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하는 모든 과정이 혼자 남기로 했다면 하지 않아도 되니까.
닿아있고 싶다면, 나도 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틈을 보여주어야 한다.
틈이 많아야 숨이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제는 조금,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