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안해

엄마

by 사막물고기

병원에 다녀왔다.

엄마의 자궁하수 증상 때문에 자궁제거 수술일정을 받고자 함이었고, 증상은 일찍부터 있었다.

두세 번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증상이 심한 정도는 아니니 더 기다려보자 정도의 답변만 받아서 돌아왔었다.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날이 계속되어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자 했는데, 의사가 이번에도 엄마의 불편함을 믿어주지 않는 것처럼 기다려야 된다고 하면 어쩌냐고 물었다.

" 아니 그걸 뭘 어째, 엄마가 느끼는 것 고대로 말을 하고,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되잖아! "


답답했다.

평소엔 나보다 더 똑 부러지게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이면서, 작아 보이게 작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날에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사람처럼 망설인다.

가족이 옆에서 조금이라도 말을 거들어주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동행했다.

설령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옆에서 짐이라도 들어주는 게 꽤 위로가 되는 곳이 병원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전에 진료받았던 선생님 대신 예약실에서 추천해준 관련 전공 선생님으로 예약받았다.

자궁하수 4기였고, 진척이 많이 된 상태라고 했다.

그동안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여 증상이 악화되었고, 수술 후에도 가능하면 일을 하지 말고 쉬어야 된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살림을 기댈 수 없는 우리 엄마는 어떻게든 정년까지 회사에 다닐 생각을 해야 했다.

" 내가 앞으로 살림비 줄게 걱정하지 마! 이젠 쉬어도 돼! "라고 말해줄 수 없어서 너무 미안했다.

각자 자신을 챙기며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마에게 조차 한, 두 달도 내 힘으로 건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한 나의 무능력 증거였다.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딸이라 미안해라고 대책 없이 사과하기가 더 민망했다.

가뜩이나 엄마와 난 서로가 아니면 누가 돌보아줄까 싶어 걱정스럽고 서글픈데 그 유일한 기둥인 나마저 약체라고 상기시켜 더 울적해지실까 눈치가 보였다.


최대한 현실적인 조언과 위로를 해주면, 당장 뾰족한 방법이 없는 감상적인 우울에서 위로가 될까 싶어 수술 후에 되도록 힘쓰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몸을 사려야 한다는 당연한 소리를 했다.


엄마는 밑이 빠지도록 힘을 주어 살았고 그러다 탈이 났다.

나는 이제는 덜 애쓰고, 덜 힘주고, 그만 욕심내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매가리 없이 사는 중이었다.


같은 여자의 성이지만 엄마의 몸과 아직 엄마가 아닌 나의 몸은 달랐다.

나의 자궁은 헤실헤실 물렁하게 풀어져 있고 조금은 연약한 채로 있어도 상관없었을 거다.

반면, 아이가 둘이나 지나간 엄마의 자궁은 자신의 몸보다 아이를 기억했다.

기를 쓰고, 압을 주어 바득바득 살다 이제 더는 못하겄소 백기를 들고 탈출하려는 거다.


보통 60대 중후반에서 70대 초의 여성이 받는 수술이고 50대 중반의 엄마가 받기엔 다소 이른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착잡하고 애잔하다.


엄마와, 엄마의 자궁에게.


2017120103362141221_1512066981.jpg 자궁을 시각화 한 브라질 작가 에르네스토 네토의 설치미술 작품 '향기는 향꽃의 자궁집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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