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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Oct 10. 2016

정조대왕 능행차


전날 비가 온 뒤로 부쩍 쌀쌀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한 겹 두 겹, 옷깃을 여미고, 겹쳐 입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겠지. 



갈수록 봄, 가을 같은 '바깥활동하기에 사랑스러운 시간'들이 

짧아져 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짧고도 벅찬 시간에 지역 축제는 곳곳에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다 마주친 축제가 제일 반갑운터라 부러 찾아가진 않게 되는데 

북적대는 인파와 시끌벅적한 행사들은 적어도 내가 자주 보는 풍광은 아니기에 

가끔은 그곳에 섞여 있고 싶어질 때가 온다.


화성 행궁 축제는 해마다 성대하게 열리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찾아가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올해 최초로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정조대왕 능행차 반차도를 재현하는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지금까지 소원히 대했던 정조대왕의 행차 길을 만회하여 반겨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수원 입성기 쪽인 노송지대 쪽으로 출발했다. 


안녕 ! 드론





높고 시큰하도록 아린 파란빛 하늘 도화지에 

고운 색의 전통 볶을 입은 퍼레이드 행렬은 선명하게 찍히는 색색의 스탬프처럼 

발자국을 찍듯 촘촘히 움직이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스팔트에 또 각 또 각 발 발굽이 부딪치면서 

수십 마리의 말이 이동하는 모습을 볼 경우가 흔하겠는가? 

2016년 도로변 융단을 깔고 타임워프를 통해 조선 시대가 넘실 넘실 넘어오는 풍경이었다. 


귓가를 짱알짱알하게 때려주는 대각 악대들의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같이 했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안양~의왕을 넘어온 팀들에서 수원 팀들로 재정비를 해 

나머지 구간을 완주할 팀이 꾸려졌다. 



그렇게 전일 서울을 행차한 팀과 오늘 경기권을 행차한 팀으로 

말 수백필과 3천여 명이 넘는 대 규모의 퍼레이드가 갖춰진 것이었다. 


설마, 가마도 타지 않는 저분이 ' 정조대왕 ' 일까 싶었는데 정조대왕이었다. 

매년 능 행차를 관란 한다는 할머님께서, 

" 대체 사람들이 정조대왕이 지나가도 알아보지를 못해 " 

라고 하시며 안타까워했다. 

그 할머님의 바로 가까이 알아보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었던 나는 

지레 찔려 항변 아닌 수다를 가미한 대화를 했다. 



장안문 입성전 황금갑옷으로 환복한 

정조대왕을 맞이하는 사회자의 알림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고 

선군을 섬기는 백성이 된 기분으로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어질 정도로 

모처럼 들뜬 마음이 되었다. 




혼신의 까치발을 들며 내 안에 숨어있던 1센티의 키를 쥐어 짜내내면서 

정조와 재현행사들을 구경했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그 손인사를 받아주며 함박웃음을 짓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지막 꼬리 부대부터는 각 동을 대표하는 수원시민들, 

연등을 들고 함께 걷고 싶은 시민들이 모두 참여하여 꼬리를 이어 걸어갈 수 있었다. 

그 먼 길을 빠르지 않은 조종한 걸음으로 걸어온 참여 대도 대단하고, 

능 행차 관람을 위해 긴 길을 죽 이어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반기는 모습에서 뭉근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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