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을 볼 가치는 충분했다.

雨燦々 - King Gnu

by 이오십

애니메이션 은혼을 보고 재미있어서 만화책까지 살까 말까 고민 중에 있다. (결국 샀다. 리디 마크다운이라고 2025.12.19에서 31일까지 진행하는 할인행사에서 은혼 ebook 세트 전권을 구매했다.)


서론


> 필자가 본 일본 tv애니메이션 목록(,많지 않다)


필자가 모든 회차를 끝까지 본 일본 애니메이션은 진격의 거인, 은혼이다. 참고로 끝까지 보지 않은 애니메이션은 데스노트, 히카루가 죽은 여름, 주술회전, 배를 엮다 이다. 아마 데스노트와 배를 엮다는 천천히, 끝까지 보게 될 것 같고 주술회전과 히카루가 죽은 여름은 조금 더 시간을 두게 될 것 같다. 순전히 취향차이다.


아무튼 간에 애니메이션을 보고 만화책까지 사게 된 것은 은혼이 처음이다.


*


은혼을 본 기간 : 2025.2월 초 ~ 12월 초

시청 순서 :

은혼 1기(201화),넷플릭스 >

은혼 2기(51+13화),넷플릭스 >

극장판 요로즈야여 영원하라,넷플릭스 >>

잠시 안 보는 기간을 거쳐...>>

은혼 3기(51화),라프텔 >

은혼 4기(26화),라프텔 >

은빛영혼편,라프텔 >

극장판 은혼 더 파이널,라프텔


2025년 12월 16일 기준으로 넷플릭스에는 은혼 2기까지만 올라와 있어서 나머지는 라프텔에 가입해서 봤다. 애니메이션 은혼 1기, 2기와 3,4기의 제작사는 다른데 개인적인 취향은 1,2기가 더 좋았다. 그리고 4기로 갈수록 작화붕괴가 심해졌다. 그럼에도 만화의 끝까지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게 감사했다.


지난 여름까지 은혼 2기를 다 보고 그 이후로는 끝까지 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많은 은혼 덕후들이 은혼의 '진짜'는 장군 암살편에 있다고 해서 그 편을 향해 쭉 달렸다. 그리고 은혼의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긴토키와 타가스기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 궁금했는데, 뒤로 갈수록 풀리는 건 쇼요의 서사였고 의외였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은혼의 에피소드 재미 정도는

은빛영혼 후편 >= 은혼 3기(장군암살편, 안녕진선조편) >>> 낙양결전편 > 은빛영혼 전편

이다. 1기,2기는 제외했고 내용이 진지해지는 3기 이후의 것들만 비교해보았다. 은혼의 경우 1기,2기까지의 한 분기점을 지나고 나면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으로 느낄 정도로 내용 전개가 뒤바뀐다. 근데 그게 억지스럽지 않고 새로운 느낌이 든다. 2기까지는 은혼이라는 일상적 배경에 녹아드는 시간을 만들어서 각 캐릭터들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고, 3,4기는 조금 더 만화스러운 '목적성'을 가지고 캐릭터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든다.



본론 1) 스포일러 있는 후기.


끝까지 보고 나서 느낀 점 : 은혼은 긴토키가 허무(우츠로)를 끝내러 가는 이야기다.



> 요상하고 절묘한 소년(?) 만화 주인공의 매력.


처음 은혼을 봤던 이유는 주인공 캐릭터의 독특함에 있었다. 대개 소년 만화물이면 상상되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는데 은혼의 주인공인 긴토키는 조금 달랐다. 은혼은 소년 만화물이라기에는 청년 쪽에 가깝고 개그장르라서 가능했던 설정일지도 모르겠다.

긴토키는 해결사이다. 솔직히 말이 해결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이지, 거의 신부름 센터에 가깝고 그마저도 일이 들쑥날쑥 들어온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파치와 카구라도 '긴상 돈 벌어야죠.', '직원들 월급을 줘라.' 멘트를 할 정도로 그렇다. 다시말해 긴토키의 캐릭터성에는 '근면성실','열정','낙천'이런 게 없다. 적당히 무관심하고, 파칭코를 좋아하고... 책임감은 있지만 건실한 느낌도 아니다. 대의같은 건 없고 그저 눈 앞에 있는 것을 지키고 싶어할 뿐이라고 한다. 과거에 매여서 청승떠는 사람도 아니고 현재를 살아가는 느낌을 준다.

은혼 2기 이후 알게 되는 긴토키의 인생 굴곡을 생각해보면 왜 저런 캐릭터가 나왔는지 이해가 간다. 2기 사천왕편에서는 이 뜬구름 잡는 듯한 인물에 대한 실마리가 약간 풀리기 때문에 감질맛 나서 계속 이 애니메이션을 보게 만든다.


> 스승과 제자 서사.


긴토키에는 스승 쇼요가 있다. (소요는 장군의 동생, 공주이고 쇼요는 선생님이다.)

은혼의 후반부 서사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모두 쇼요와 깊이 관련되어있다. 쇼요에게는 긴토키, 타가스기, 카츠라 세 제자가 있고, 그 셋이 가진 공통된 경험으로 인한 결과와 영향이 은혼 전반에 녹아있다. 그리고 그 셋은 각각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고 제각각이라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관계성이 매우 흥미롭다.

은혼의 시간선을 살펴보면 그들의 감정선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time.1 쇼요가 긴토키를 줍다.

쇼요는 전쟁통에 혼자 살아남은 어린 긴토키를 거둔다. 송하촌숙(쇼카촌)이라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이후 타 서당을 다니던 카츠라와 타가스기도 쇼요의 서당에 합류하게 되고, 타가스기, 긴토키, 카츠라는 쇼요의 제자로써 한 시절을 보낸다. 인체 비례로 보면 대략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 시기 쯤? 되는 것 같다.


time.2 막부에 끌려간 쇼요.

이후 쇼요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상한 사상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막부에 끌려간다. 당시 정권이 안정되지 않았기에 추후 위협이 될 수 있거나, 혹은 굳이 왜 하는지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잡아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렇게 잡혀가고 서당 3인방의 안정된 시기도 끝이 난다. 쇼요는 잡혀가면서 긴토키에게 '모두를 지켜주세요.'라는 부탁을 한다.


time.3 양이전쟁 패배.

긴토키, 타가스기, 카츠라는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양이전쟁에 합류한다. 아마 중학생 고등학생정도 되지 않나 싶다. 전쟁을 하면서 물자 담당을 하는 사카모토 타츠마 캐릭터 등장. (사카모토는 상업쪽으로 트여있는 사람이고 전쟁이든 사람이든 일단 협상하고 거래해서 해결하는 캐릭터.) 이렇게 4인방과 동원한 군대는 전쟁을 끝내려고 노력하는데, 결국 패배한 채로 전쟁은 끝났다. 왜냐하면 쇼요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

**아주 큰 스포일러.

수세에 몰려 긴토키는 천인(나락 일당, 우보로)에게 선택을 강요당한다. 너의 동료와 선생 중에 누구를 구할 것인지에 대해. 긴토키는 선택을 내린다.

** 긴토키의 선택

긴토키는 타가스기의 부탁보다 쇼요의 부탁을 우선했다. 타가스기는 양이전쟁 중에 자신이 죽게되면 선생님을 부탁한다, 라고 했지만 쇼요를 더 믿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양육해준 가족과도 같은 스승을 죽이는 게 아마 본인에게도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지만서도.

은혼은 긴토키의 이런 트라우마에 대해 질질 끌며 표현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 타가스기와 카츠라의 반응

타가스기와 카츠라 모두 긴토키가 무거운 선택을 짊어졌어야 했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함. 다만 타가스기는 자신의 스승을 죽게 한 세상을 부셔버리겠다, 라는 파괴의 방식을, 카츠라는 그럼에도 스승이 지켜낸 것을 지켜내는 선택을 하겠다,라고 양이지사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time.4 해결사 사무소 개소. 신파치+카구라 합류 [은혼 1기, 2기]

전쟁이 끝나고 긴토키는 오토세의 셋방에서 해결사사무소를 차린다. 카츠라는 양이지사로 활동하고 타가스기는 강경 양이지사로 활동하고 사카모토는 우주상인으로 우주를 누빈다. 할일이 없어서 해결사를 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긴파치는 천인들에게 모욕당하는 신파치를 도와주고, 카구라를 만나고, 사다하루를 만나고, 그 거리에 사는 사람들과 여러 에피소드로 인연을 맺는다.

뭔가 깊은 관계를 맺는데에 크게 미련없고, 그런 이유가 굉장한 허무를 경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애초에 전쟁으로 고아처럼 지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해결사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그런 허무를 조금씩 닦아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물론 만화에서는 이를 뭐 그렇게 처절하거나, 애잔하거나, 우울하게 표현하지 않고 다만 꼿꼿한 자세로 자신만의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좋다.


time.5 장군 암살,진선조 해체/우츠로(쇼요)는 불멸의 존재 [은혼 3기, 4기-낙양결전 편]

장군은 암살당하고, 진선조는 해체된다. 낙양결전에서 천도중의 최종 보스가 자신들의 스승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 불사의 힘을 보여준 순간 사실 쇼요는 살아있다, 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쇼요가 아니라 우츠로가 살아있는 것이지만. 쇼요의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 아닌 인격의 소멸이었음을 알게 된다.

**천도중

용맥의 힘인 알타나를 독점하여 우주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조직이다.


time.6 폭파당할 위기의 에도를 지키기 위해 결집. [은혼 4기-은빛영혼 전편]

천도중의 알타나 독점으로 많은 피해를 본 이들은 알타나 해방군을 조직, 해방군은 천도중을 몰아내고 알타나를 약탈한다는 명목으로 알타나 용맥이 있는 지구에 대규모 무장 세력을 투입한다. 에도가 천인들에게 식민지화된 모습이다.(사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 역사가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다.)

긴토키와 해결사, 가부키초 사람들, 인연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달려와서 에도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이 때 우츠로와 긴토키는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수세에 몰린 우츠로는 스스로 용맥에 몸을 던진다.

결국 지구와 에도는 지켰지만, 우츠로 내면의 인격 쇼요는 구하지 못했다.

**우츠로

우츠로는 죽어도 그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불사의 몸이다. 죽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우츠로를 고문하거나 가두거나 두려워하거나 죽이거나 아무튼 고독하고 고통스럽게 죽게 했다. 그 결과 우츠로는 21아이덴티티 마냥 여러 인격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은 자신을 탄압한 사람들에 대한 미움, 두려움, 분노를 담은 인격이 나왔지만 그와 대척점에 있는 쇼요같은 인격도 나왔다.

우츠로가 이 난동을 부리는 이유는 자신의 불멸을 끝내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불멸을 끝내려면 지구가 파괴되어야하고, 긴토키와 그의 동료들은 그런 그를 저지한 것.

'우츠로(うつろ)'는 일본어로 '공허하다', '텅 비어 있다'라는 뜻이다. 아마 자신의 의지로 만든 선택이 만들어낸 유한한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살아나게 되는 무한한 삶에 대해 느끼는 권태, 공허함 같은 것을 표현한 이름 같다. 이 점이 좀 천재적인 것 같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스승은 불멸의 허무이고, 제자는 그를 끝내기 위해 움직이고...

**하지만 우츠로는 죽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츠로가 태어난 곳이 용맥이기 때문에, 긴토키는 그가 살아있을 것으로 추측.


time7. 어디선가 살아있을 우츠로를 찾아다님 [은혼 4기-은빛영혼 후편]

긴토키는 우츠로가 용맥 어디선가에서 다시 탄생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찾아나선다. 모두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결국 쇼요는 구하지 못했다라는 생각에 쇼요의 제자로써 우츠로를 찾아 나선다. 아마 가엾음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또 혼자가 된 건 우츠로이니까. 영원한 탄생과 죽음의 고리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 긴토키는 아기를 데리고 2년간 유랑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우츠로의 불멸을 숭배하는 종교단체로 발전한 나락이 아이 상태인 우츠로를 노리고 긴토키를 급습, 우츠로는 자신의 심장이 그 종교에 넘어가 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용당하는 것을 막고자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긴토키에게 건넨다.


time.8 쇼요를 구원 [은혼 더 파이널]

타가스기와 긴토키, 카츠라는 제자로써, 쇼요를 구원하기 위해 나아간다.

타가스기가 세상의 재앙과도 같은 우츠로를 일단 살리고 보자는 입장이라면 카츠라는 쇼요가 남긴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츠로를 죽이겠다는 입장이다. 긴토키는 둘의 선택의 반대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타가스기는 죽음으로써 쇼요를 구원하고, 긴토키에게 빚져있던 무거움을 조금은 덜어낸다.

긴토키는 남아있는 우츠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다. 굉장히 축약했지만 이 두 문장에 담겨있는 컷의 연출이 굉장히 마음이 동하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만화로 직접 보기를 추천드린다.




본론2) 소재에 관하여.


은혼은 사무라이의 나라였던 에도가 외계에서 온 '천인'들의 침략을 받아 반강제적으로 개항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개그 만화이다. 곳곳에 성적 드립과 개그이다. 사실 애니메이션에 나온 말장난의 50%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긴 하다. 일본 문화를 잘 알고 있어야 알 수 있는 말장난이라던지, 유행이라던지, 당시 일본인들이 거의 다 아는 유명한 연예계 사건이라던지, 동음이의어나 다의어라던지. 하지만 한 에피소드 마다 완성도가 높다고 느꼈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캐릭터의 매력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사무라이가 소재인 만화..


> 사무라이 정신?? 한국인인 내가 이걸 봐도 되는 걸까?


내가 가진 일본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은 일제강점기 당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무사 정도이다. 한창 역사를 배울 시기에 고종의 아내인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비극을 담은 '나가거든' 뮤비를 봤었기 때문이다. 그 뮤비에서 일본인 낭인이 가차없이 한국인을 벤다. 꽤 충격적이어서 어릴 때 봤는데 오래 남아있다.


낭인은 주군을 잃거나 소속 없이 떠도는 사무라이를 말한다. 일본의 에도막부 시절의 사회체제는 우리나라의 사회 체제와는 다른지라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서양의 봉건제를 게임이나 드라마를 통해서 이해하고 나면 일본의 봉건제도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 때 조선 초기, 후기의 정치 사회적 변화에 대해 배울 때 사회,경제적 특징에 대해 배울 때에는 그 특징을 명확하게 느낄 수 없었다. 원래 그런 식으로 나라가, 문명이 발전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여타 근대문명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달까. 요약하자면 서양식 봉건제 사회를 살면서 경험해본 적도 없거니와, 우리나라 역사 중심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서양의 봉건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양의 봉건제에 대해서는 <크루세이더 킹덤(게임)>을 플레이해보거나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시면 좀 가닥이 잡힌다. <문명5>게임도 추천드린다.


*


아무튼, 샛길로 빠졌는데 일본의 봉건제는 서양형 봉건제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변형, 정착시킨 사례에 가깝다. 일단 일본 봉건제의 핵심 성격은 1)권력 분권 구조, 2)토지 기반의 주종 관계 성립, 3)인신적 충성 관계를 강조, 4)군사 집단 중심 사회(무사계급), 이렇게 네 가지이다. 그 중 권력 분권 구조, 무사 계급에 대해 이해하는데에 도움되는 자료를 찾았다. 참고한 자료는 <국화와 칼> 이라는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즉 미국인이 쓴 '일본인 관찰 논문'이다.


*


1) 권력 분권 구조


천황(종교적, 상징적) - 쇼균(실권자) - 다이묘(각 지역의 실권자)

로 나눌 수 있고, 이는 서양에서의 왕 - 제후 - 기사와 유사하다. 즉, 중앙 집권적이지 않다.


16세기 일본에서는 내전이 풍토병처럼 번졌다. 몇십 년에 걸친 혼란 끝에 1603년 이에야스가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도쿠가와 가문의 첫 쇼군이 되었다. 이에야스의 가계는 2세기 반 동안 쇼군의 지위를 물려받았고, 근대에 접어들어 천황과 쇼군의 '이중 통치'가 폐지된 1868년에야 자리에서 내려왔다.

...

이에야스는 도자마 다이묘들이 각자의 영지와 사무라이들을 통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들은 일본의 모든 봉건영주 중 자기 영지에서 가장 강한 자치권을 누렸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이들에게 자기의 가신이 되는 영예를 주지 않았으며, 주요 직책도 맡기지 않았다.

...

정권을 유지하기란 무척 어려웠기 때문에, 도쿠가와 가문은 봉건 영주, 즉 다이묘가 힘을 비축하지 못하게 하고, 쇼군의 통치에 위협이 될 만한 동맹을 차단하는 전략을 폈다. 도쿠가와 가문은 봉건제를 폐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강화하고 더 견고하게 다졌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현대지성, 82-83p>


2) 무사계급 ; 사무라이의 위치


다이묘에 대한 개인적 충성을 가진 사무라이가 영토 관리에 도움을 준다. 서양의 기사와 유사하다고 느낀다.


일본의 봉건사회는 복잡한 계층으로 나뉘었으며, 개인의 신분은 세습으로 정해졌다.

...

황실과 조정 밑으로 네 계급이 있었는데, 사무라이, 농부, 공인 상인 순이었다. 그 아래는 천민이었는데

...

상인의 지위는 천민 바로 위였다. 미국인은 의아하게 여기겠지만, 봉건사회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었다. 여태껏 상인 계급은 봉건제도를 붕괴시켜왓다. 상인이 존경받고 번성하면 봉건제도는 세퇴한다. 도쿠가와 가문은 17세기에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집행한 적 없는 극단적 고립정책을 시행해서 상인이 설 공간을 없애버렸다.

...

하지만 당시 일본은 화폐경제로 이행 중이었기 때문에 상인을 열등한 지위에 두려는 도쿠가와 가문의 정책은 실패했다.

도쿠가와 가문은 봉건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두 계급, 즉 무사와 농부를 엄격한 틀에 묶어놓았다.

...

그(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농민의 무장을 해제했고, 사무라이에게만 칼을 찰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

심지어 가장 신분이 낮은 무사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생산활동을 할 수 없었다. 무사는 농민들이 낸 세금에서 연공미를 받는 기생적 계급이 되었다. 다이묘는 자기의 가신인 사무라이들에게 각자 할당된 몫만큼 쌀을 분배했다. 이로써 사무라이가 어디에 기대야 하는지 명확해졌다.

...

일본의 무사는 유럽의 기사들처럼 자기 땅과 농노들을 가진 소영주가 아니었고, 용병도 아니었다. 도쿠가와 시대 초창기에 사무라이는 가문에 따라 정해진 봉급을 받아 생활했다. 액수는 많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사무라이의 평균 봉급이 농민들의 수입과 비슷했다고 추정하는데, 이는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갈 만한 수준이었다.

...

사무라이가 그들의 특권이자 신분의 표시로 차고 다니는 칼은 장식용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를 권리가 있었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현대지성, 84-86p>


*


은혼에서는 천인(외계인)의 강제적인 개항요구로 사무라이가 칼을 잃은 배경을 다루기 때문에 도쿠가와 때의 '다이묘에 대한 충성심'에 대한 강조보다 (구) 사무라이의 칼이 서야 할 곳, 새로운 시대 정신에 대해 캐릭터(긴토키, 카츠라, 사카모토 등.)로 이야기한다. 더 확실하게는 만화책 1권에서 나레이션을 하는 16세 신파치의 상황이 그러하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만화책 1권이나 애니메이션 2화를 보면 와닿는다. 그래도 보기 귀찮을 사람을 위해 대략 설명을 하겠다.


*


[첫 장면]

신파치와 그의 누나 타에가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듣는다.


신파치 아버지 :

무사의 검은 칼집에 간직하는 게 아니라 네 영혼에 간직해두는거야.

세상은 더 이상 무사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잊어서는 안 될 게 있어. 설령 검을 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영혼에 간직한 곧은 검만큼은 잃지 말거라.


[장면 전환], 변화한 에도의 거리, 신파치 나레이션.


무사의 나라.

이 나라가 그렇게 불린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과거에 무사들이 올려다보며 꿈을 키우던 푸른 하늘에는 외계의 배들이 날아다니고, 과거에 무사들이 당당하게 걸었던 거리에는 이제 이방인들이 으스대며 걸어 다닌다. 그게 우리의 세계이며, 그게 우리의 마을이다.


[장면 전환]

카페인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파치. 능숙치 못해 점장에게 타박당한다.


점장 : 무사고 칼이고 망한 지 오래된 거 몰라?

(참고로 신파치는 무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표범천인 : 요즘 무사들을 보면 안쓰러워서 말이야, 우리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는 무사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는데 ...(중략)

자꾸 시비를 걸고 싶어진단 말이지.


천인들이 물을 서빙하는 신파치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20년 전에 갑자기 에도에 내려온 이방인 '천인' 이들의 등장으로 무사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검도 지위도 빼앗긴 우리는 긍지고 뭐고 다 버렸다. 아니, 무사 뿐만이 아니다. 아마 이 나라에 사는 자들은 이제...


긴토키 : 이봐. 무사?

표범천인 : 네놈은 또 뭐야! 폐도령 내린 지가 언젠데 목검을 차고 다녀?

긴토키 : 시끄럽게 엄청 꽥꽥대네, 발정기라도 왔냐?

(...이후 중략)

긴토키가 표범천인들을 제압, 신파치 나레이션.


그 사람은 무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칠고 양아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올곧은 눈빛의 남자였다.


[장면전환], 제목 <곱슬머리치고 나쁜 놈은 없다.> 오프닝 표지 음악 삽입.



> 은혼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


변해버린 시대에서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내는 것이 은혼의 테마다. 해결사 긴토키와 동료들이 온갖 의뢰와 혼란을 유쾌하게 수습하는 이야기로, 은혼의 에피소드 소재는 일상이다. 그마저도 저급해보이는 개그로 채워져 있어서 '별 거 아닌' 것들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하나, 둘씩 쌓이고 만나게 된 인연들, 동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이야기는 결말로 흐를 수록 하나의 거대한 구조가 된다. 이내 마지막엔 긴토키와 인연이 된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해 움직이는데 그게 쌓인 시간만큼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참고로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자가 지키고 싶어하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 그런 것들을 살펴보면 캐릭터마다의 역학적 관계가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재미있다.


*


은혼의 배경이 개항기의 일본이기 때문에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일본쪽이 만들어낸 판타지 개그 만화를 내가 보는 게 ((한국인 정서에)) 알맞을까? 생각하긴 했다. 심지어 4기(은빛 영혼) 초반부를 보면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가 생각나긴 한다. 일제에 핍박받던 민중들말이다. (에도를 침략하러 온 천인들이 술집에 들어가서 난동부리는 장면이나, 돈을 걷으려고 민가에 가서 행패부리는 장면.)


생각보다 거부감은 거의 없었다. 보면서 조상님들이 겪었을 그런 고통을 본 것 같아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피해자인 척하려는 작품이다.'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일지도?) 다만 사실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있는 나라에서 '침략당하는' 만화가 나온 것이니, 역사적으로 겪어본 적 없는 식민지화를 판타지 소재로 사용한다고 불편하게 느낄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


요약하자면 은혼은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나간다는 주제를 여러 상징과 에피소드로, 캐릭터로 일관된 메세지를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개그로 넣은 에피소드도 취향에 맞다면 누군가에게는 인생만화가 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공허한 하루하루를 동태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현재의 일상에서 지키고 싶은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하는, 무겁지 않고 적당히 건조한, 억지로 유쾌한 게 아니라 저질개그로 상쾌하게 웃기는 그런 만화다.


애니메이션으로 나오지 않은 부분만 전자책으로 사서 읽었다. 76권(세미 파이널)과 77권(파이널)부분을 사서 읽었는데 일본의 만화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느꼈다.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있고 컷과 컷 연출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속도감도 느껴지고 감동도 느껴진다.



본론3) 만들어 본 놈이 맛있게 만든다.


확실히 나라마다 잘 만드는 게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아이돌?을 잘 배출하듯이, 일본은 만화를 맛있게 잘 만든다. 그 산업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간에 작가를 서포트하는 방식이나 작가가 작업하는 방식이나 일본 만화계에는 특별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배울 점을 찾아서 배워나가면 그게 또 좋지 않나 싶다.


> 오프닝과 엔딩, 캐릭터 테마곡


> 캐릭터의 매력

다 아는 교훈을 캐릭터의 상황과 대사가 맞물려 연출되면 훨씬 더 감동적이다. 특히 각 캐릭터마다 상징성이 돋보일 때, 왜 이런식으로 연출했을지, 왜 이런 상황에는 이 캐릭터들을 만나게 했는지 유추하면서 보면 참 재미있다.

간단한 예시로 타가스기와 긴토키, 카츠라는 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다른 해석을 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결국 모두가 바라는/추구하는/소원하는 것은 유사하지만 그 과정과 디테일의 차이가 있고, 갈등이 있다.


캐릭터마다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것도 재미있다. 예시로 긴토키와 신파치는 목검을 가지고 다니고, 타가스기와 카츠라는 검, 사카모토는 총을 사용한다. 검을 휘두르는 방식도 달라서 재미있다. 나는 무술에서 필살기를 사용했다, 그 효과는 어떠했다, 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는 편이기 때문에 단순히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연출이 편안했다. (그래서일까 주술회전은 조금 흥미가 덜했다...)



> 조언.

은혼은 77권 분량의 만화이고, tv방영 애니메이션 분량은 367화라고 한다. 꽤 양이 많아서 슬렁슬렁 혼자 밥 먹을 때, 자기 전에, 트레드밀에서 운동할 때 등 보면 쏠쏠하다.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보는데에 1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참고로 극장판 은혼 중에서 tv에 방영되지 않은 게 세 편이 있다.

- 극장판 은혼 : 완결편 해결사여 영원하라(2013년)

- 은혼 더 세미 파이널 (2021년?)

- 은혼 더 파이널(2021년)

이렇게 세 개인데 은혼 더 파이널은 원작 만화의 결말부를 다룬 정식 후속작으로, tv 애니메이션에서 다 끝내지 못한 분량을 완결시킨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해결사여 영원하라는 원작에는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된 것으로, 추후 본편의 전개와 일부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참고로 은혼 더 세미 파이널은 국내에 나와있지 않아서 못 봤다. 그래서 만화책(76권)으로 해결했다.


개인적으로 느낀 건 2013년에 나온 <해결사여 영원하라>가 훨씬 퀄리티가 좋고, 영화라는 매체에 적합하게 만든 이야기같다. 2021년에 개봉한 <은혼 더 파이널>은 이전의 만화 내용을 다 보고 관람해야 이해가 될 것 같다. 연출적인 면에서는 좀 아쉬웠다. 내용이 결말부로 치닫을수록 올라가는 박진감, BPM을 다 담지는 못했고, 가능한 원작의 연출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물론 이 이야기의 팬으로써 영화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움직이는 캐릭터를 본다는 건 정말 큰 감동이 있었다. 만화로 봤을 땐 이해가 어려웠던 장면도 영화를 통해 이해가 되어 좋았다.


은혼을 보신다면 그냥 애니메이션 순서대로 쭉 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하지만 나도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이 있으면 새로운 레귤러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한 순서를 바꿔서 시청하기도 했다.



결론)


> 잘 만든 하나의 작품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나는 은혼을 보고 J pop도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정확히는 은혼 애니메이션 음악을, 운동할 때, 많이 듣게 되었다. 대부분 밴드 사운드로 드럼, 베이스, 일렉기타 사운드로 에너지가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번역에만 의존하는 게 아쉬워져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된다. 물론 은혼이 일본어를 공부하기에 적합한 애니메이션이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캐릭터가 어떤 말투를 쓰는지, 서로 반말하는지, 얼마나 친밀한 투로 이야기하는 건지 궁금해서 일본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외에도 이만한 애니메이션이 없는지 자꾸 찾아보게 된다. 확실히 일본은 애니메이션이 참 많았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라는 만화가 가장 근본있다고 말하던데 은혼은 비교도 안되게 방대한 분량같아보여서 조금 부담스럽다. 그나마 양이 볼만해 보이는 사카모토 데이즈, 헌터헌터, 강철의 연금술사, 데스노트에 관심이 간다.



> 잡설.


은혼 작가인 소라치 상...? ..님?은 대학에서 광고학을 전공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각 에피소드를 보면 유쾌한 광고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광고에서는 메세지가 참 중요한데, 매번 드러내는 메세지가 확 꽂힌다. 은혼이라는 만화도 굉장히 방대해 보이지만 하나로 관통되는 메세지가 있다. 각 회차마다 강약조절이 되어서 더 메세지가 선명해보인다. 매번 진지하게 캐릭터의 논리, 혹은 개연성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서 캐릭터의 일상을 함께 보내는 느낌이 든다. 그 외에도 인터뷰를 찾아 보니 굉장히 글을 잘 쓰신다. 굉장히 유머있고, 생각해보지 않은 방향으로 틀어서 와닿게 말하는 방식을 쓰는데 그게 참 광고학과 출신같았다. 아무튼..


요즘엔 뭘 더 하느냐보다 뭘 덜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내 시간 자체가 금이라고 생각해보면 내 시간을 무엇과 교환할 것인지가 중요해지는데 요즘 시대에서는 뭘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수월해졌다. 오히려 비우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결국엔 다 소화하지도 못할 분량을 먹어가지고 토해내는 어떤 욕망을 가지기보다 소화할만한 적당한 양을 씹어넘기는 게 참 중요하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은혼은 잘 먹었다 싶은 작품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먹어봐야 계속 먹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단 먹어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매거진의 이전글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