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벌어진 일이나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만약”이라는 가정을 붙여서 곱씹는 행위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때로는 인생의 몇몇 중요한 이벤트에 대해서는 가끔 상황을 가정해 보기도 한다.
몇 년 전,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의 정기연주회를 마친 후 소회 겸 후기로 남겼던 글이 떠오른다.
만약 뮤즈콰이어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해지는 밤이다.
게시판에 정기연주회 공지가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스마트폰 일정관리 앱을 열어 선약이 없는지 살펴봤을 것이다. 대부분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일요일 저녁일 테니, 그리고 써니 매장 바로 앞에 있는 공연장에서 진행하는 행사일 테니, 잠깐 시간 내서 데이터 겸 문화생활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초대권 신청 덧글을 달았을 것이다. 연주회 시간에 맞추어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큰어울마당 공연장에 가서 닉네임을 말하고 입장권을 수령한 후 지정된 좌석에 앉았을 것이다. 연주회가 시작되고, 뮤즈콰이어 단원들이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등장할 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익히 친분이 있는 분들을 찾아 어디에 자리 잡고 서 있는지 눈여겨봤을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가장 편한 자세로 푹신한 등받이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성악전공자들의 공연은 아니지만 정성과 열정을 가득 담아 준비한 풋풋한 아마추어 합창 무대를 미소를 짓고 손뼉을 치며 즐겼을 것이다. 그들의 노래 가사와 선율을 하나하나 새겨들으며 잔잔한 감흥에 젖어 웃고 울고 신나게 즐기고 가슴 저리기도 하고 때로는 옆 좌석 눈치를 봐가며 나지막이 따라 부르고 했을 테다. 매번 공연 말미에 있는 경품 추첨 시간에는 좌석 번호표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혹시나 하며 마음 졸이다가 역시나 하며 실망했을 것이다. 이대로 공연이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워서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앵콜을 외쳤을 것이고, 초등학생인 단원 자녀가 특별히 찬조 출연한 앵콜 무대 ‘카레’를 보면서 객석의 모든 사람과 함께 박장대소하며 공연의 마무리를 아쉬워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관람객 출구 주변에 서성대고 있다가, 초청 손님들에게 인사를 나누러 공연복도 갈아입지 않고 달려온 단원들을 만나서 삼삼오오 무리 지어 기념사진을 찍고 소소한 축하 선물을 전달하고 행복 가득한 마음을 안고 다시 매장으로 왔을 것이다. 게시판에 하나씩 새로 등장하는 공연 관람 후기를 훑어보면서, 그래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그 곡 너무 아름답지 않았어요?, 좋은 공연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라고 덧글을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며 서서히 공연 관람의 추억은 희미해질 것이다.
아마 그랬더라면, 이 무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몰랐을 것이다.
8개월 동안 매주 2시간의 반복된 연습을 통해 서로를 이끌고 다독이고 하나하나 쌓아 만들어낸 화음이 어떻게 다듬어졌는지, 춤이라고는 한 번도 제대로 춰본 적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신나고 흥겨운 안무를 딱딱 맞춰 나갔는지, 공연 몇 달 전부터 미리 주문해서 받아두었던 공연용 드레스에 몸을 맞추어 넣으려고 또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했는지, 입장과 퇴장과 공연 중 인사를 어떻게 하는 게 예의 바른 건지에 대해 얼마나 사소한 고민을 거쳤는지, 공연 프로그램 구성과 동영상 촬영과 팜플렛 디자인 및 인쇄와 공연 타이틀은 어떻게 하는 게 더 나을지를 두고 서로 머리 맞대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그 많은 단원들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 마련과 민생고를 해결할 간식과 중간중간 적당히 긴장을 풀어줄 뒷풀이 자리를 마련하느라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지휘자는 어떤 방식으로 날것의 소리를 공연용 음악으로 만들어 갔으며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온몸으로 표현했으며 반주자는 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매번 같아 보이는 반주를 수백 번 반복하며 얼마나 밀고 끌고 당기며 노력했는지, 왜 그 먼 서울과 인천에서 주일 저녁마다 여기까지 달려와서 연습을 했는지, 당분간 사정상 결석해야 한다던 단원의 빈자리를 보며 얼마나 기다림이 사무쳤는지, 공연 전까지 함께 연습을 했으나 하필 중요한 일정이 겹쳐서 무대에 서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얼마나 어려웠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무대를 함께 하겠다며 돌아와 주었을 때 동료들의 감격은 또 어땠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아마도 뮤즈콰이어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알 수 없었을 테다. 왜 아직도 내가 뮤즈콰이어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밤이다. 그룹 샤프가 불렀던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랫말처럼 조명이 꺼진 무대에는 정적과 어둠만이 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개월 동안 함께 서로 다른 소리를 버무려 하나의 어우러진 소리로 만든 시간의 부피가 가득 차서 떠흐르고 있다.
20년 전, 만약에 써니가 케이크 매장을 오픈하지 않았더라면 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써니의 생일에 맞춰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 집 근처 케이크 매장을 검색했을 것이다. 케이크 종류를 훑어보며 평소 귀담아들어 두었던 케이크를 발견하고 매장에 전화를 걸어 예약 주문을 해두었을 것이다. 케이크 위에 축하 문구를 새겨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글자 수 제한에 맞춰 메시지를 생각해서 알려주었을 것이다. 케이크 매장에 픽업을 위해 들러서는 쇼케이스에 전시된 다른 제품을 둘러볼 새도 없이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가 주정차 위반 카메라에 찍혀 과태료가 나오는 게 아닌지 조바심을 내며 포장과 결제를 독촉했을 것이다. 매장 점원이 물어보는 초의 개수와, 영수증 수령 여부와, 포인트 적립 여부에 대해 건성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케이크 상자를 받아들자마자 후다닥 차로 부리나케 달려갔을 것이다. 생크림 케이크라 온도에 민감하므로 냉장보관이 필요하다는 말을 흘려듣고 케이크 상자를 보조석에 앉힌 채 히터와 좌석 열선을 켜고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을 것이다. 메인 음식을 먹는 동안 케이크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아, 케이크도 있었지?’하고 그제야 뒤늦게 꺼내서 막대 초를 몇 개 꽂아 불을 붙이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자그마한 소리로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껐을 것이다. 디저트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크기로 조각을 내어서 맛본 후 남은 케이크는 다시 상자에 넣어서 가져왔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며 케이크에 대한 기억은 사진 속 소품의 추억으로 남은 채 서서히 희미해질 것이다.
아마 그랬더라면, 우리가 케이크 매장에서 지내온 20년이라는 무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평생 몰랐을 것이다.
매일 아침 적막을 깨고 매장 문을 열 때의 그 서늘한 설렘을, 쇼케이스의 전등을 하나둘 켜며 오늘의 케이크들이 주인공처럼 빛나기를 바라는 그 경건한 마음을,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첫 맛과 함께 하는 하루 영업의 기대를, 오늘의 공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하며 매장의 온도를 맞추는 세심한 감각을, 그리고 마수걸이 손님이 문을 여는 차임벨 소리에 가슴 한구석이 환해지는 소박한 기쁨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화려한 쇼케이스 너머 '아저씨'라는 투박한 직책 뒤에 숨겨진 소소한 노동의 가치, 물이 새는 낡은 수전을 교체하며 몽키스패너를 쥐던 손길의 긴장감을, 매일 밤 의자의 오와 열을 맞추며 어제의 피로를 오늘의 환대로 바꾸는 청소의 신성한 리추얼을, 뒷좌석에 태운 티라미수의 가루가 날릴까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그 지극한 배려의 속도를, '라지'나 '스몰' 같은 매끈한 단어보다 아내의 지시를 완수하려는 가장의 서두름이 담긴 '대짜'와 '소짜'라는 단어에 담긴 사람 냄새를 몰랐을 것이다. 매장을 거쳐 간 수많은 청춘이 남긴 눈물 섞인 손편지의 온기를, 20년 세월 동안 유모차를 타던 아기가 어느덧 루미큐브로 삼촌을 이겨 먹는 소년이 되기까지 함께 쌓아온 그 경이로운 나이테의 부피를, 칼국수집 사장님과 나누는 떡국떡 한 봉지에 담긴 애정도 몰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생이라는 악보가 결코 데이터와 예측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귀하디 귀한 진리를, 내일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태블릿 앞에 기도하듯 앉아 있는 써니의 뒷모습에서 정답 없는 삶에 필요한 것이 결국 '겸손함'이라는 사실을, 으뜸음에 닿지 못한 채 미세하게 떨리는 '시' 음 같은 우리네 오십 대가 사실은 가장 역동적인 인생의 이끈음이라는 것을, 화려한 첫눈의 예찬보다 겨울의 끝자락을 묵묵히 지키는 '끝눈'이 다음 계절을 위한 거름이 된다는 그 숭고한 마무리의 미학을, 매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써니가 20년 전 그 문을 열었기에, 그리고 내가 그 곁을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지켰기에 비로소 허락된 풍경일 테다. 만약 우리가 그저 케이크를 소비하는 관객으로만 남았더라면, 인생이라는 이 거대한 쇼가 얼마나 많은 땀방울과 눈물, 그리고 다정한 공감으로 구워지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매끄러운 생크림의 단맛만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쇼케이스의 불을 끄고 매장을 나서는 길. 우리는 이제 안다. 우리가 구운 것은 단순한 케이크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우리만의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무대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