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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Aug 24. 2023

발리유치원생의 하루

사누르 한복판에 한 반 아이들 전부가 뛰놀 수 있는 큰 정원이 딸린 발리식주택이라니…


우리 아이는 올해 말 만 다섯살이 된다.

이 곳에서는 한국과 비슷하게 만 세살부터 어린이집(N1,N2), 유치원(TK1,2)으로 점차 올라가는데 우리 아이는 현재 TK1 학년인 셈이다.


인도네시아는 7월이 새학기 시작이기 때문에 학년 구분도 7월을 기준으로 나뉜다. 하반기부터 그 다음 해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까지가 같은 학년으로 묶인다. 때문에 7월 초에 태어난 아이들은 학교, 담당 직원의 재량에 따라 월반을 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 1,2월 생들이 그 전 년도생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갔던 것과 같이 말이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한국인들에게 아이와 한달살기하기 좋은 지역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라 외국 아이들이 단기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1년 전 발리로의 이주를 결정하고 답사를 와서 둘러봤던 학교들 중 몇몇도 그런 곳이었다. 이 곳 여름 방학기간인 6-7월에 발리거주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별도로 진행하는 곳들도 있었고, 정규 학기에도 단기 학생들을 받아주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 학교는 다양한 친구들이 오가며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장점이 있겠지만 계속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분위기가 들쭉날쭉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영어로 수업을 듣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인인 곳이다. 때문에 인도네시아어가 익숙치 않았던 아이를 그것도 마지막 학기 중간인 2월에 불쑥 등록시켜 다니게 해야하는게 내심 미안했다. 그런 미안함이 무색하게 그녀는 인니말만 하는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나랑 같이 놀래?", "저기로 가서 놀자!"하는 인니말을 하루만에 익히며 그녀의 사교성이 발리에서도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픽업을 갈 때면 다른 친구들 엄마들이 본인 아이들이 우리아이에게 인니어를 가르쳐주고 영어를 배워온다고 할 정도였다.


더운 나라 특성인지 유치원임에도 아이의 등원시각은 8시이다. 집이랑 오토바이로 5분거리인데도 학교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 항상 지각한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는 매일 8시 정각에 겨우 맞춰 아이를 데려다준다. 8시부터 12시 반까지는 정규 학교 프로그램. 그리고 금요일 오전은 학교 수영장에서 수영수업. 요일마다 1시 반 부터 2시 반까지는 선택 방과후 활동을 신청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이번 학기 발리댄스, 노래부르기를 신청해 배우고 있다. 두 요일은 아침 일찍 점심 도시락까지 싸서 챙겨줘야하지만 그 덕분에 엄마 아빠의 오전 자유시간은 2시 반까지로 한층 여유로워진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시간 나는 이렇게 글을 끄적인다.


발리에서의 육아는 여러 가지로 색다르다. 국제결혼이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보다 흔한 지역이기는 하나 대부분 엄마는 인도네시아인, 아빠가 외국인인 경우가 많다. 엄마가 외국인, 남편이 인도네시아인인 우리는 일반적인 국제결혼과는 다르기도 하거니와 남편이 육아 참여도가 굉장히 높아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 곳에서 이런 저런 우연으로 Playdate를 했던 가족들은

1. 엄마아빠 모두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지만 아이와 호주에서 산 적이 있어 아이도, 엄마아빠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가족

2. 엄마아빠 모두 발리인이고 아이도 영어를 곧잘하지만 아빠가 영어를 잘 하지 못했던 가족

3. 엄마는 인도네시아인이고 영어를 할줄 알며 아이도 영어를 하지만 아빠는 중동계 외국인이었던 가족

4. 엄마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며 영어를 잘하고 아빠 또한 독일인이어서 여러 언어가 다 가능했던 가족

5. 엄마아빠 모두 인도네시아인(혹은 발리인)이지만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아이도 영어가 능숙치 않은 가족


다양한 가족들과 어울려왔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에 맞는 친구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부족한 인니어는 그렇다쳐도 내성적인 내 성격이 더 큰 걸림돌이다.


지난 주말 아이 학교 반 친구의 생일을 맞아 1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과 그 엄마들이 생일인 친구 집에서 같이 어울렸는데 인니어가 짧은 나는 남편을 끌고 아이 친구집으로 향했고 엄마들이 가득한 그 곳에서 나는 껍데기가 엄마인 관계로 엄마들 사이에서 빠르게 오가는 인니어를 열심히 들어가며 말 한 마디 뻥긋하지 못한 채 위축되어 있었고 함께 간 남편은 남편대로 혼자 한 구석에서 어색하게 거닐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뛰어놀며 너무 행복해했지만 우리에겐 무엇인지 어색하고 외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보통 엄마가 되면 육아라는 공통 주제로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들 하지만 내성적인 나에게 맘에 맞는 엄마친구를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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