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이로 일곱살인 아이를 키우며 나는 하루에 몇 번씩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요즘 우리 아이의 최고 취미활동은 방에서 혼자 팟캐스트를 들으며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 일러스트를 우리가 프린트 해주면 그 위에 옷도 그려서 입혀주고 목걸이에 귀걸이, 신발까지 그려서 덧입혀주는 셀프 종이인형놀이. 거의 한번도 빼먹지않고 조금이라도 그림을 오리다가 실수를 했을 때 다시 인쇄해달라며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어른이 된 내가 보기엔 보이지도 않는 작은 실수인데 막상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인쇄해달라고 칭얼거린다. 매일 몇 장씩 프린트에 그림을 그리는 통에 옛날부터 이면지 사용을 철칙같이 여기며 A4용지를 아껴왔던 나는 끝끝내 똑같은 캐릭터를 새로 프린트 해달라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얼토당토 않게 그림을 대충 테이프러 붙여서 써보라고 호되게 야단을 쳤다. 뜻이 통하지 않은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방으로 돌아가 울분을 토하며 엉엉 울었다.
순간 내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완벽주의 강박이 있던 나는 노트에 글씨 하나만 내 맘대로 써지지 않으면 지우개로 글씨를 지우는대신 노트 한장을
북북 찢어버리고 내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
선생님이 월요일까지 가져오라는 준비물을 못 가져간다는걸 일요일 저녁에서야 깨닫고 화장실에서 집이 떠나가라 내리 두 시간을 울어 엄마도 두손두발 들었던 내 강박이었다. 그 땐 왜 그렇게 그게 억울하고 분한지. 왜 세상은 내가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지. 엄마는 왜 나를 공감해주고 도와주지 않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준비물은 선생님이 일주일 말미를 주고 언제든 가져가면 되는 급하지 않은 것이었고 엄마는 이미 이걸 알고 나에게 설명도 해주려 하셨을 것이다.
도저히 실수한 그림을 다시 붙여쓸 수 없다며 꺽꺽 우는 아이를 보니 준비물을 못 가져간다고 눈이
퉁퉁불게 울던 어린 내가 겹쳐보였다.
이젠 이 아이가 나이고 나는 우리 엄마가 되었다. 엄마 눈에는 보이던 것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고 내 눈에 훤한 것을 이 아이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다. 살면서 나를 극한의 스트레스로 몰고가기 일쑤였던 완벽에 대한 강박을 끝내 이 아이도 가지게 되었구나. 남편을 닮아 낙천적이고 헐렁할 것만 같았던 아이였는데 결국 너는 내가 되었구나.
우는 아이를 보며 남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 어떤 일이 닥쳐도 스트레스도 안 받고 세상 유연하게 대처하는 남편에게 내 어렸을 적 얘기를 해줬더니 장모님도 너 키우며 꽤나 고생하셨겠다 한다. 내가 우는 내 아이를 바라보며 답답하고 안타깝듯 엄마도 그러셨을 것 같다. 말이 안통하면 윽박지르기 바쁜 나와 달리 기억해보면 우리 엄마는 항상 나를 먼저 달래주시고 설명해주시려고 했었다. 그게 잘 통하지 않아 결국 내가 스스로 분풀이하다가 제 풀에 지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니 잊고 지냈던 내 어렸을 적 별 것아니었던 기억들이 계속 떠오른다. 나도 어렸을 때 이랬었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화가 나는데 그 때 엄마는 나한테 화도 안 내고 어떻게 나를 달랬지. 그 때 우리 엄마 고집 세고 할 말 많은 나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신기한 경험이다. 이 아이를 통해 나는 다시 아이가 되고, 또 우리 엄마가 되었다가, 마지막으로 내 아이의 엄마가 된다. 엄마처럼만 나를 키울 수 있는 인내심이 있다면 참 좋을텐데 나는 이상하게 나를 꼭 닮은 아이에게 큰소리부터 버럭 나온다. 나를 지독하게 닮은 이 아이의 마음을 더 잘 알아서인지, 내가 평생 고생한 나의 약점을 아이가 똑같이 닮아서인지 나는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그 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른들의 대화와 세계, 궁금해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너는 몰라도 된다는 말. 나도 사람인데 왜 몰라도 된다고만 할까 불만이던 나는 이제 차 뒷자리에서 우리 대화를 엿들으며 궁금증이 폭발하는 우리 아이에게 어른들 대화이니 너는 몰라도 된다고 말하는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