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인 남편에게 한국의 싸이월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하지만 미래의 내가 이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단어 하나라도 더 고민해서 글을 쓴다고. 싸이월드에 내가 10대, 20대 때 썼던 일기들이 어쩔 때는 오그라든다는 표현으로 깎아내려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 때 내가 얼마나 진지했었는지, 절박했는지 기억한다. 서글펐던 시절에 쓴 일기를 읽으면 그 일기를 한 자 한 자 쓰며 울었던 만큼 똑같이 울 수 정도로. 그만큼 소중하기에 비밀번호를 잃어버린데다 외국에 살아 찾기도 힘들어진 이 상황이 답답하다.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끄적이는걸 좋아하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인건 맞지만 굳이 그걸 보관했다가 다시 읽어보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가끔씩 종이가 필요해 책장에 꽂혀있는 빈 공책들을 뒤적일 때면 드문드문 남편의 일기가 나온다. 이 공책 저 공책을 옮겨다니며 공책 중간 아무 페이지에나 덩그러니 일기가 적혀있을 때면 싸이월드 비밀번호를 못찾아 끙끙대는 내 모습과 겹쳐지며 이 사람은 정말 나랑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소중한 일기장" 이라는 단어는 남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듯하다.
쌓여가는 육아스트레스에 요즘 인터넷에 일기를 쓰고있다는 말에 남편은
"그 시간에 책을 읽는게 낫지 않아?" 라고 반문했다. 그 말을 듣고 나와 남편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 새삼 실감이 났다. 남편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신을 채우기에 바쁜 사람이고 나는 나를 비우기에 바쁜 사람이다. 실제로 남편은 피곤하다면서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한밤중에도 베이킹을 하는 사람. 계속 몸을 움직여서 스트레스를 푸는 남편을 보며 나는 저 설거지를 언제하나 한숨을 푹푹 쉬는 사람. 쉴 때는 정말 몸과 마음 긴장을 풀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쌓인 긴장을 풀어야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요즘 세상이야 국제결혼이 넘쳐나는 시대라 외국인 남편을 만나 사는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모든 커플은 자신들의 만남이 특별하다고 믿기에 우리 이야기가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남편과 인도네시아 시골에서 만나 인도네시아, 싱가폴, 영국, 한국을 오가며 5년 롱디 후 결혼해 살고있는 얘기를 생각나는 것들 위주로 적어봐야겠다. 그래야 나중에 나윤이가 커서 엄마아빠에 대해 물어올 때면 재미있게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