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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Aug 26. 2023

국제커플의 흔한 시작(?)

남편과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거의 매번 듣는 질문이 있다.

대부분 질문 앞에는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가 붙는다.

그 질문인즉슨 "둘은 그래서 어떻게 만났어?" 이다.


그 때마다 간단하게 답할 요량이면 "우리 여행하다가 만났어" 라고 하는데 상대방의 눈에서 그 이상의 대답을 바라는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면 우리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푼다.


내가 대학교 3학년 1년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다녀온 후 온화한 기후의 캘리포니아에서 일년을 꿈같이 보내고 돌아오니 별안간 아무 준비도 없이 대학교 4학년 (이라 말하고 취준생이라고 불리는)이 되어있었다. 4학년 1학기를 다니고 모두들 그렇게 하듯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을 신청한 후 인턴자리를 알아보던 중 작은규모의 NGO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인턴이 끝난 후 6개월 봉사자/인턴의 자격으로 인도네시아 아체라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덜컥 떠나게되었다. 그 때 나를 담당하시던 NGO팀장님은 나에게 두가지 선택지를 주셨다. 인도 아님 인도네시아.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도네시아는 발리가 있는 나라라는 정도밖에 알지 못했는데 인도에 대해서는 여자로서 혼자 가기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인도네시아를 택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인도네시아의 아체는 인도네시아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를 가진 지역이었고 종교경찰, 종교법이 다른 지역에 비해 꽤 영향력을 가진 곳이었다. 동남아 쓰나미 당시 가장 크게 피해를 받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나의 역할은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 있는 고아원에서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거주하며 영어를 가르치고 틈틈이 지역에 남아있는 국제 재난구호 NGO들을 방문해서 컨택포인트를 따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물론 아체 혹은 영어교육, 재난구호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던 나는 무식을 무기로 반다아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 곳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 또한 이야기를 풀자면 한이 없기에 이번에는 남편과의 첫만남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야겠다.


반다아체는 이슬람 문화가 강했기 때문에 모든 여성들이 히잡이라고 불리는 머리 두건을 두르고 팔다리를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긴 팔, 땅까지 끌리는 긴 치마를 입고 다녔다. 바다가 아름다운 지역이었지만 일부 서양인 배낭여행객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인도네시아의 지역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도심에서도 외국인들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들과 영어로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심심한 마음에 카우치서핑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봤더랬다.


카우치서핑은 내가 교환학생 생활 당시 친구가 소개시켜준 커뮤니티였는데 Couch + Surfing 말그대로 남의 Couch를 Surfing할 수 있는 커뮤니티였다. 지금으로 치면 에어비앤비와 비슷한 컨셉인데 집 주인의 거실 소파 혹은 집주인이 제공해주는 어떤 형태의 잠자리에서든 묵을 수 있으며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현지인인 집주인과 교류하며 로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 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온갖 미치광이들과 사건사고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생판 남의 집에 여자인 내가 그것도 홀로 내 발로 걸어들어간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미국을 여행하며 돈이 궁했던 나는 그 덕에 씨애틀, 뉴욕, 보스턴, 워싱턴디씨에서 공짜로 숙박비를 내지 않고 현지인들의 집에서 묵으며 여행을 했다. 커뮤니티에서는 호스트와 서퍼(카우치를 제공받는 사람)가 서로에 대해 리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신원이 보증되는 듯 보였고 아주 다행히도 미국 여행동안 나는 커뮤니티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커뮤니티 특성상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고 개방적인 마인드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리 폐쇄적인 아체라도 카우치서핑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검색해보자 의외로 꽤 많은 현지인들과 몇몇 서양인 카우치서퍼들이 아체에 거주하고 있었다. 여기서 연락하게 된 현지인들은 기본적으로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노출이 많이 된 사람들이었기에 영어공부를 위해서든 취미로든 영어로 소통을 즐겨했고 나는 "유레카!" 마침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현지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음주가 금기시되는 이슬람 문화에 따라 아체에는 바(Bar)나 펍(Pub)등 술을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대신 카페가 밤늦게까지 영업을 해서 밤이나 낮이나 현지인들의 놀이터는 주로 카페였다. 카우치서핑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따금씩 열리는 정모는 항상 카페였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리던 정모가 있던 어느 날 친구의 오토바이에서 내리는데 먼저 와있던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 보였다. 현지 인도네시아인 외모가 아닌 동아시아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눈코입 주장이 강한 얼굴에 동아시아계 사람을 보기 어려운 지역인지라 신기하게 쳐다본 기억이 난다. 현지 친구 중 한 명의 Couch에서 머물고 있다던 그 사람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했고 원래는 싱가폴에 살지만 1년동안 자신의 나라인 인도네시아 곳곳을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짧은 소개를 마치고 그 사람은 다른 호주인 친구들과 대화를 계속 했고 나는 다른 현지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모임이 끝났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페이스북을 열었는데 오잉? 아까 본 그 사람에게 페이스북 메세지가 와있었다.


설레임 반 궁금함 반으로 페이스북 메세지 확인을 눌렀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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