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 페이스북 메신저로 온 메세지는 이러했다.
"안녕, 오늘 오후 만나서 반가웠어. 더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내 번호는 XXX이야. 혹시 여행하다가 인도네시아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연락해. 인도네시아에서 남은 기간 잘 보내고... 연락하자!"
메세지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흥분했다가 좌절했다 다시 기대감에 부풀었다. 둘이 그리 길게 대화 나눈 기억은 없었는데 굳이 내 페이스북 프로필을 카우치서핑 커뮤니티에서 찾아서 나에게 먼저 연락하면서 번호를 준건 호감의 표시인건가? 근데 인도네시아에서 남은 기간 잘 보내라니... 그럼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자는건가? 그의 메세지는 호감의 표시인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잘 지내보자, 자주 연락하자는 느낌은 또 아니었다.
이 메세지에 어떻게 답을 해야할 것인가. 호감은 있지만 그걸 티내도 될까? 곧 이 지역 여행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한 것 같은데 뭐 연락하는게 의미가 있으려나... 수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상대가 가볍게 메세지를 보내왔으니 나 또한 가볍게(?) 무심한듯 답을 했다.
"Hey, 나도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그러게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껄... 뭔가 나랑 너랑 통하는게 있을 것 같았거든 (이 시점에서 내가 발견한 그와의 공통점은 끽해봐야 얼굴이 둘다 동아시아계라는 것 뿐이었음에도). 내 번호는 XXX야. 혹시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너가 모르는 번호라고 안 받으면 안되니까! 발리(그의 다음 행선지는 발리 마라톤이었던 것 같다)에서 좋은 시간 보내!"
답을 보내놓고 전전긍긍 심장을 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곧 답이 왔다.
"그래 너도! 나중에 안부 인사할 겸 전화 할게. 잘 자!"
그 이후 남편은 아체 여행을 마치고 발리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발리로 향했고 나는 시골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단조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남편과의 메세지 교환은 나의 삶에 꽤나 큰 활력이 되어주었다. 나중에 알게된 것은 남편은 그 때 만으로 23살이 채 안된 한국 여자애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도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고 소문난 아체라는 시골에서 홀로 현지인들과 같이 살며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에 호기심 반 호감 반이었지만 무엇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에 안쓰러워보였다고 했다.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 우리는 서로의 취미, 살아온 환경, 취향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은 커져갔지만 인도네시아 곳곳을 떠돌고 있는 사람과 인도네시아 시골에 콕 박혀있는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나는 일주일 간의 휴가를 얻게 되어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미 인도네시아 여행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니 조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느 도시를 가면 좋을지 이것 저것 물어보고 있었는데 그가 물었다.
"우리 같이 여행할래? 내가 너가 여행하고 싶어하는 도시로 갈게. 거기서 만나자"
그리고 우리는 첫 만남을 가졌던 수마트라섬 반다아체에서 3천 킬로미터 떨어진 자바섬 족자카르타에서 2개월 만에 다시 조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