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발리”라고 하면 자연친화적인 휴양지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이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모두 책상에 앉아서 문제를 푸는 공부 대신, 방과 후 밤까지 이어지는 학원들 대신, 바다와 산을 벗삼아 뛰노는 삶을 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또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싱가폴에서 이 곳으로 이주해올 때 아이의 교육환경에 대해 그런 환상을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독창적인 커리큘럼과 학교 시스템으로 유명해진 발리의 그린스쿨도 그 이미지에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곳에는 어쩌면 한국보다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홈스쿨링을 하는 외국인 가족들도 많고, 그린스쿨이 표방하는 비슷한 종류의 자연친화적인, 실용성과 기술, 공동체를 중시하는 학교들도 서양인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인기가 많은 편이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과 함께 발리로 이주하는 가족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면서 기존에 있었던 국제학교, 현지학교에 더하여 발리에도 정말 다양한 학교가 생겨나고 있다.
한달살기를 하러 오시는 분들을 우연히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의외로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발리에도 학원이 있나요?”
그럴 때면
“당연하죠! 발리에도 학원 많아요” 라고 답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아이는 현재 수영, 체조, 피아노 이렇게 세 과목을 학원에서 배우고 있다. 다만 이 곳의 학원은 관광지 특성상 체험형 학원들이 많다. 거주자로서는 좋은 점이자 아쉬운 점인데 호기심이 많은 아이가 이것 저것 한번씩 시도해보기에는 좋은 환경이지만 아이의 미술을 좀 더 심화해서 가르치고 싶다고 해도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의 미술학원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일일 미술놀이교실 수준일 뿐 제대로 된 미술 선생님의 지도 하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학원은 많지 않다. 체조도 마찬가지. 예체능 과목은 특히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닌 진지한 배움과 심화를 위한 학원을 찾으려면 정보력이 매우 중요하다.
요즘 이 곳도 코딩학원 열풍이 불어 꽤 많은 아이의 친구들이 코딩학원을 다닌다. 학교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듣는데 집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보니 아이 친구들은 영어학원을 필수적으로 다닌다. 옛날 내가 초등학생 때 하던 눈높이, 구몬과 같은 학습지공부는 이 곳에서 Kum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시던 우리랑 다르게 동네 Kumon 학습소로 정해진 시간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는 형태이다.
한국과 같이 학원이 한 곳에 몰려있거나 대중교통으로 쉽게 오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미국처럼 아이 등하교, 학원 등하원 라이딩을 엄마아빠가 오롯이 담당해야한다. 아이가 학원을 많이 다닐수록 엄마아빠는 더 바빠진다는 이야기. (물론 아이 라이딩을 위해 기사를 고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초1인 아이의 친구는 수학, 영어, 코딩, 피아노, 종합복습과외, 수영 이렇게 총 여섯 개의 학원을 다닌다. 이 아이 엄마의 라이딩 스케줄을 보고있으면 숨은 언제 쉬나 입이 떡 벌어질 정도.
우리가 발리에 이주하려 마음 먹은 이후 인터넷 검색으로 아이를 보낼만한 유치원을 추려 답사를 다녀오고 최종적으로 거주할 지역과 아이의 학교를 정하면서 언제나 1순위였던 학교가 있었다. 그 당시에도 이 학교를 들어가기 힘들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좋은 시설과 커리큘럼, 합리적인 학비, 길지 않은 역사에 비해 빠르게 성장한 학교로 발리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발리에 사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아 아이를 낳자마자 유치원에 대기를 시켜야될 정도로 들어가기 힘들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우리가 답사 당시 이메일로 이미 답사일정을 문의해 확답을 받고 방문했을 때도 안내직원이 ”어차피 들어올 자리가 없다“며 유치원 시설조차 제대로 보여주려 하지 않을 정도로 콧대가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발리는 많은 국제학교나 사립학교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유치원 입학정원 대부분이 고스란히 초등학교로, 또 중학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학교는 특히나 이탈하는 인원이 많지 않아 유치원 입학 때 자리를 잡지 못하면 이 인원이 그대로 초등학교로 진학하기 때문에 전학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심지어 만 2세부터 시작되는 유치원에 지원하기 위해 부모와 아이가 면접을 본 후 합격여부가 정해진다고 했다. 면접에서는 아이가 언제 기었는지, 언제 말을 시작했는지, 언제 걸었는지까지 자세히 물어본다고 했다.
아이를 결국 다른 유치원에 보내면서도 남편은 이 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아이의 학업에 우리도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던 발리 이주 당시 우리의 결심이 무색할만큼 남편은 매 년 유치원, 초등학교 지원철에 이 학교에 부지런히 문을 두드렸다.
낙후된 시설, 비공식적인 외부학생들의 방문 등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대한 크고 작은 불만이 쌓여갈 쯤 작년 12월 말 우리가 지원했던 학교에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아이가 2학년에 올라가는 이번 해 7월 들어올 수 있는 빈자리가 있는데 시험과 면접을 볼 의향이 있냐는 전화였다. 우리는 고민 끝에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1월 개학 후 시험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초등학교 2학년 전학생 한 명을 뽑는데 이 정도의 정성을 들인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과정은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은 영어, 인도네시아어, 수학 테스트.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학교 측에서 아이와 부모 면접을 본다고 했다. 아이가 시험을 본 지 일주일 후 면접을 보러와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면접 이틀 전 아이의 성향과 성격에 대한 질문지를 작성해서 온라인으로 제출한 후 면접 당일 아이와 우리는 학교 소속 심리상담선생님과 면담에 가까운 면접을 봤다. 아이의 성격과 성향에 대해 부모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평소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부모의 교육관은 어떠한지 상담선생님은 꽤나 세세하고 촘촘하게 우리와의 면담을 진행했다. 그냥 우리가 정상인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아닐까? 라고 쉽게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과 달리 학교는 전학생을 뽑는데 무척 진지한 것 같았다. 그렇게 면담을 마치고 일주일 뒤 우리는 2학년부터 등교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 학교의 친구들이 너무 좋아 전학가고 싶지 않다던 아이는 시험과 면접을 보러 다녀온 학교를 구경하더니 의외로 순순히 전학을 받아들였다. 사교성이 좋은 아이와 다르게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진건 또 나다. 7월이 되면 학교 정보와 아이 소식 귀동냥을 위해 다시 새로운 학교 엄마들과 어울리기 시작해야한다.
어디에 있느냐보다 중요한건 결국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키우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