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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Apr 03. 2022

싱가폴에서 꿈꾸는 발리

    경쟁심이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나는 한국이라는 학벌 중심 사회에서 학교를 다니며 때로는 사회의 시선에 채찍질 당하고 때로는 나 자신의 경쟁심에 짓눌리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받아쓰기 시간 아깝게 한 개를 틀려 90점을 맞고는 엉엉 울며 선생님께 매달렸던 적도 있었고, 중학교 땐 예체능 과목 점수가 전체 시험 평균을 깎아먹어 티슈 한 통을 다 쓰며 운 적이 여러 번. 그렇게나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열성이었던 덕분에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입학했지만 나는 항상 부담스럽고 괴로웠다. 그리고 막상 그렇게 얻어낸 타이틀을 즐길 새도 없이 난 계속해서 떠밀리듯 높은 곳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달려야했는데 그게 참 괴로웠다. 고2, 고3 매일 밤 11시, 12시에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 때 그리도 열심히 머리 속에 집어넣었던 4지선다, 5지선다의 지식들이 나의 삶에 아무런 더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먼 훗날 내가 만약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된다면 그 곳이 한국일 순 없다고 다짐했다. 그렇게나 한국에서 머무는게,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머물고 그 박자에 맞춰 살아가는게 싫었던 나는 결국 한국을 도망치듯 벗어나 싱가폴에 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열 심하고 경쟁이 심하다고 느꼈던 한국을 벗어나 정착한 이 곳 싱가폴 또한 교육열은 만만치 않다. 사실 어느 사회에 살든 본인이 그 구조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주관을 가지고 아이를 교육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냐만 난 그리 용기있는 사람은 아니기에 내가 살아가는 환경을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주말이면 이 곳 아이들은 엄마아빠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자가용을 타고 학원을 다닌다. 학원 버스, 유치원버스가 보편화 되어있는 한국과 다르게 이 곳은 통학, 통원을 대부분 개인적으로 한다. 당장은 아이가 어리기에 (아니, 어리다고 생각했기에) 아무 생각이 없던 우리 부부에게 남편 친구 부부는 이 곳에서 살아가려면 3-4살부터 중국어 학원은 필수라고 조언했다. - 싱가폴 사람들은 영어와 중국어를 둘 다 사용하는 편이지만 쉽게 노출될 수 있고 익히기도 쉬운 영어와 다르게 중국어는 쉽게 익히기 어렵다 여겨서인지 특히나 학원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긴 하다. 

"이미 영어에 더해 엄마 아빠 언어인 한국어와 인도네시아어까지 배워야하는 애를 중국어 학원을 보내라고? 이게 진짜 우리가 우리 아이에게 원하는걸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오래 전부터 했던 결심이 생각났다. 난 내 아이가 적어도 본인이 원치않게 학업에 치이며 스트레스 받는 곳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아, 또 얼마 전 싱가폴 학원에 질렸던 적이 있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겨보고 있는 중간중간 등장하던 광고. 학원 이름은 리틀닥터스쿨. 내 아이만한 아이들에게 의사가운을 입히고 의사흉내를 시키며 의사라는 직업은 좋은 직업이라는걸 (부모 대신) 주입시켜주겠다는 학원 광고였다. 그걸 보곤 확실하게 알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 광고를 보여주었다. 남편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에 더해 경기를 일으켰다.


    물론 싱가폴 공교육은 국제적으로도 알아준다고들 한다. 이 곳도 명문학교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공립학교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싱가폴은 한국보다도 더 뻔하다. 이 곳에서 돈이 많지 않은 평범한 부모로서, 그런 부모의 아이로서 살아가야하는 삶이. 주중엔 학교/직장을 다니고 주말엔 아이들은 쇼핑몰 안에 있는 학원을 전전하고 학원 수업시간 동안 부모들은 쇼핑몰을 전전하며 자질구레하게 돈을 쓰고 밥을 사먹는다. 그리고 그걸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주 무한반복한다. 


그래서 우리는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우리가 더 늙기 전에, 그리고 우리가 더 후회하기 전에.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의 목적지는 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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