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1)

평범한 사랑을 꿈꾸는 두 남녀의 이야기

by 글담

바다와 육지의 경계

내 이름은 송헌이다. 소파 베드가 내 침대다. 나는 도서관에서 일한다. 출근할 채비를 하고 낡고 어두운 밤색 양모 코트를 걸쳤다. 현관문의 문고리는 차갑게 냉각되어 있었다. 장갑을 꺼내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꽁꽁 언 차에 앉았다. 길에는 검은 얼음이 얼어있다. 길섶에는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눈이 있다. 늘 가던 길을 벗어나 기차역으로 왔다. 계단 밑 대형 거울에서 걸음을 잠시 멈췄다.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내가 서 있다. 플랫폼으로 갔다. 기차가 오는 방향을 봤다. 반대편 플랫폼에서 강원도로 가는 기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들렸다. 겨울 바다가 떠올랐다. 강원도의 겨울 바다에 가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 들었다.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달렸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겨울인데도 땀이 훅훅 솓아오른다. 아슬아슬. 마지막 손님으로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은 약간 더웠다. 찻간 바닥은 물이 줄줄 흘렀다. 탑승객이 많지 않았다. 주위를 살펴봤다. 외투를 여미고 앉아있는 사람들, 외투를 벗은 사람들. 자리를 찾아 앉았다. 도서관에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남겼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직장을 다니는 것은 슬프지만 축복이다. 내 가방이 어딨더라. 가방에는 녹지 않은 눈이 붙어있었다. 녹아들고 있었다. 노트와 펜을 꺼냈다. 주변을 글로 묘사했다. 글쓰기 중독에 걸린 내게 이보다 용한 처방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외투를 여민 객들에게 졸음이 밀려들었다. 틈틈이 창밖을 보며 창 밖 풍경을 묘사했다. 스치듯 지나가기에 긴장하지 않으면 금방 대상을 놓친다. 긴장하며 글을 쓰다 보니 내 시간은 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흘렀다. "해수욕장"을 알리는 입간판을 보고 부랴부랴 내렸다. 서너 명 내린 것 같다. 역은 해변에 바로 접해 있었다. 해변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에 앉았다.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앉을만한 자리가 있었다. 노트와 펜을 꺼냈다. 함박눈이 내렸다. 손은 좀 시렸지만 글쓰기에 괜찮았다. 회색빛 하늘과 푸른 파도가 부딪혀 만든 백색의 포말이 아름다웠다. 노트에 가끔 눈송이가 붙어서 녹아들었다.


혼자 걷는 여자가 내 쪽으로 왔다. 발목까지 오는 하얀 패딩을 입었다. 패딩에 붙어있는 모자를 썼다. 테두리를 털로 두른 모자다. 앞만 보일 정도로 조금만 밖에 내놓은 얼굴이 보였다.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이었다. 그녀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따라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다. 보이는 모든 것을 노트에 묘사하여 남겼다. 그녀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잠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넘어질 뻔했다. 뿌득뿌득거리는 습한 바닷가의 눈을 밟으며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역 대합실에 난로를 피웠는지 뿌연 김이 서린 출입문 유리를 보니 푸근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 앞에 뿌연 김이 서렸다. 안경을 닦았다. 한 번에 뿌연 김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안경을 벗어 휘휘 흔들고 다시 썼다. 앞이 보였다. 바닷가에서 봤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내 가방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나와 내 가방을 큰 눈으로 꿈벅꿈벅 거리며 바라봤다. 내 가방은 활짝 열려있었다. 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노트는 젖어들고 있었다. 해변의 기록들도 함께 번져가고 있었다.


강원도 어느 기차역

눈송이 무리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트가 눈에 빠르게 젖어 들고 있었다. 대합실의 열기에 더 빠르게 물로 전환되고 있었다. 급기야 눈은 물이 되어 노트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마지막으로 적던 노트의 페이지를 페이지 그대로 가방에 다시 넣는 습관을 원망했다. 겨울, 해변, '해변의 그녀'에 대한 기록이 내 품 안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노트를 꺼냈다. 노트를 자세히 살펴봤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는 않았다. 우선 가장 치명상을 입은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약간의 그림도 그려 넣은 페이지였다. 그림의 주인공은 지금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저 여자분이었다. 그녀는 난로 주위를 아까부터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젖은 손으로 눈을 털어내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수성 잉크는 점점 더 번져갔다. 발을 동동 구른다는 표현은 더 이상 내게 상투적이지 않았다. 나는 말 그대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종이 그대로 난로에 말려보세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었다. 종이가 탈지 말지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난로에 얹었더니 종이가 금방 말랐다. 다행이었다. 몇 장의 노트를 더 뜯어서 김을 굽듯이 젖은 종이를 말렸다. 그녀는 우글우글 해진 종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 모습이 내 눈에 꽉 찼다. 손이 고왔다. 열중하고 있는 표정을 보며 고마웠다. 작업이 끝났다.


우리는 겹겹이 페인트 칠이 되어있는 기다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았다. 난 약간 추위를 즐기는 편이다. 오히려 더우면 맥을 못 추겠다. 곧 기차가 들어온다. 해는 졌고 달은 뜨지 않았다. 함박눈은 계속 왔다. 도심에서 떨어져 나온 두 사람이 역 대합실에 있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내일은 출근해야지. 눈이 많이 와서 혹시 고립될까 걱정이 들었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지 않은 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조금 떨어져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내가 말했다.

"선향이라고 해요. 백선향." 그녀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송헌이에요."

그녀는 반갑다고 말하며 털실로 짠 벙어리 장갑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예의상 건네는 웃음이었겠지만 싱그러웠다.

"중요한 글인가 봐요"

"네, 제겐 중요한 노트예요."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

기차가 왔다. 그녀가 먼저 기차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내가 먼저 오르기를 원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객차 안을 둘러봤다. 우리는 같은 차량에 탔다. 다른 승객은 없었다. 내 자리를 찾았다. 밤 기차의 창밖에는 암흑뿐이라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창쪽 자리는 피했다. 그녀는 내 자리 앞 줄 창가에 앉았다. 본인 자리가 맞든 아니든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패딩을 벗으니 익숙한 유니폼이 보였다. 카페 유니폼이었다. 검은색 칼라가 어두운 톤의 옷을 돋보이게 했다. 잘 다려진 칼라 아래로 이어진 세 개의 단추는 모두 여며져 있었다.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가느다란 목이 둥근 얼굴과 잘 어울렸다. 다시 노트를 꺼냈다. 물에 젖어 상처 입은 기록들을 새 종이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해변에서 본 그녀 - 지금 내 앞자리의 그녀- 에 대한 묘사도 옮겼다. 이런 내용이었다. '해변을 위태로이 거니는 한 여자가 있다. 모래를 바라보며 걷고 있다. 가끔 뒤를 돌아본다. 자기 발자국이 잘 지워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건가? 앞을 다시 바라보는 얼굴에 잠시 미소가 보였다. 밝은 사람이구나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바다와 육지의 위태로운 경계를 걸어온 그녀가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리로 온다. 나를 본 것 같다. 더 가까이 왔다. 내가 그녀를 관찰했듯이 그녀도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바다만 바라봐야겠다. 내 눈동자가 떨리는 게 느껴진다. 눈인사 정도는 나눠도 좋으련만... 짝사랑의 마음을 들킨 것 같다. 노트에 아직 여백이 있지만 다음 페이지로 넘겨야겠다.' 이런 내용이었다. 새 페이지에 거의 다 옮겼다.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고쳐 앉았다. 명찰이 가장 먼저 보였다. '백선향'이라고 적혀있었다. 새 명찰은 아니었고 곱게 낡은 것이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혈액형 A형 이죠?" 난 O형이다.

"그런 말씀 많이 들어요. 저 오형이에요"

"저는 무슨 형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찍어봐요"

"... B형?"

"잘 모르겠다면서 한 번에 맞추시네요"

"우연이죠"


그녀가 다른 질문들을 쏟아냈다.

"겨울바다에는 왜 왔어요?" 뭐라 답하기 어려웠다. 말을 돌렸다.

"선향 씨라고 볼러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저는 회사일 때문에 출장 왔다가 들렀어요. " 일상이 지겨워서 여기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선향 씨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바다가 너무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일하러 가다가 말고 옆길로 샜어요." 그녀가 밝게 웃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카페 알바하면서 겪었던 진상 손님들 이야기와 나는 알지 못하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험담들을 들었다. 자기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었는지 얼마나 서럽고 무서웠는지 그녀는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왜 아저씨 이야기는 안 해요?" 아저씨라니... 난 아직 결혼도 안 했다.

"저는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좋아요."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 가족을 사고로 모두 떠나보냈다고 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자기만 살았다고 했다. 자기가 살아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스피노자는 말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만 서로를 동정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난 그녀를 동정할 수 없다. 내가 대화에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앞의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리라 나는 생각했다. 내 말이 위로를 줄 수는 없지만 내 존재가 그녀에게 위안이고 싶었다. 지금은 다른 가족들 몫까지 다 살려고 하루하루 모두 다 쓰면서 살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오늘 찾은 그 해변도 가족과의 추억이 많이 있는 해변이라고 했다.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해변이라서 사람들이 거의 찾아 오지 않는데, 내가 선향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아래 나무 계단에 앉아있어서 나를 유심히 봤다고 했다.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보여주며 앉아서 이런 내용을 적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노트를 읽는 내내 미소를 지었다. 기차 안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대화는 그 후로도 계속됐다. 내가 그녀의 삶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다. 이야기에 빠져있다가 하차 안내 방송을 놓칠뻔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들었다. 오랜 친구와 충분히 놀지 못하고 헤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내리세요?"

"여기서 내려요." 내가 대답했다.

"저도 여기서 내려요." 그녀가 말했다.

"서둘러야겠어요."

기차가 멈추기 직전이었다. 그녀가 앞장서고 내가 뒤따랐다.

"저 요 앞에 S카페에서 일해요. 놀러 오세요."

"그럴게요. " 그녀가 가던 발걸음을 돌려 내게 뛰어왔다. 그녀는 내게 펜을 달라고 하더니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꾹꾹 눌러써서 좀 아팠지만 티는 내고 싶지 않았다.

"저 카톡은 안 해요 문자도 좋지만 전화 통화가 더 좋아요."

"네. 그럴게요."

그녀는 다시 뛰어갔다. 난 우두커니 서있었다. 상황이 잘 정리가 안됐다. 그렇게 한참을 더 서있었다. 눈이 내리는 11번 플랫폼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선향의 집

플랫폼에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나는 지난 몇 시간을 다시 떠올렸다. 선향은 웃을 때 코를 찡긋거리는 버릇이 있다. 질끈 뒤로 묶은 단발머리에서는 아이보리 비누향이 났다. 엄마 이야기를 할 때는 털실로 짠 벙어리 장갑을 바라봤다. 털실로 짠 좀 작아 보이는 장갑이었는데, 목에 걸 수 있었다. 분홍빛이 도는 장갑 가운데 부분에 토끼 무늬가 있었다. 장갑 귀퉁이에는 "토끼반 백선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밖으로 나왔다. 하루 동안 꽁꽁 얼어있었을 차로 갔다. 천천히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왔다. 그녀가 100미터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나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어서 유턴할 필요는 없었다.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눈이 들어왔다. 차 밖 기온도 그새 많이 내려갔다.


"선향 씨! " 못 들었나 보다.

"선향 씨~! " 이번엔 목청껏 불러봤다. 내 목소리에 나도 놀랐다. 그녀가 돌아봤다.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 내가 말했다.

"헌이 아저씨!! " 그녀가 코를 찡긋거렸다. 웃는 모습이 좋았다. 그녀는 벙어리 장갑만으로 추위를 버티며 걷고 있었다. 그녀가 옆자리에 앉았다.

"아저씨 뭐하다 지금 가요?" 기차에서 내려서 한 시간 정도 지났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추워요 태워다 드릴게요"

"진짜 고마워요!"

그녀는 말할 때 '진짜'라는 단어를 덧붙이곤 한다. '진짜'라는 말을 덧붙이며 좋아한다고 했던 것들이 두 가지 있었다. 까슬한 이불 속에 몸만 쑥 들어갈 때, 그러고 그 안에서 잠이 들 때까지 라디오 듣기였다. 이불은 좀 묵직한 맛이 있는 목화솜 이불이 좋고 라디오는 노래보다 사연을 듣는 게 좋다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해요? " 내가 말했다.

"직진! " 그녀가 벙어리 장갑 속에서 손가락을 뻗어 앞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기차 안에서 그랬듯 지금부터 대화를 하자는 신호였다.

"그런데 아저씨 배 안 고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아 괜찮아요. "

"난 아까 매장에서 바나나 먹었는데 아저씨는 오후부터 아무것도 안 먹는 거 아녜요?"

"맞아요. "

"배고플 텐데! 근데 아저씨 열흘은 안 먹어도 괜찮을 듯!" 그녀가 내 배를 꾸욱 눌렀다. '꾸으으윽 ' 내 내장 기관이 반응하며 밥 달라는 소리를 냈다.

"하하 배가 밥 달라고 하네요! 저기서 오른쪽으로!"

우리는 중앙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들어왔다. 역 앞의 시장들이 거의 그렇듯이 이 주변은 낮엔 사람이 많지만 밤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선호 상가'라는 곳에 차를 세웠다. 문득 '선호'는 백선향의 먼저 떠난 남동생 이름이란 기억이 났다.

"여기에요. 밥 같이 먹어요! " 그녀가 차 창문에 서서 내게 말했다. 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차 받치고 올라오세요! 옥상으로!" 그러고 좁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계단은 3층까지 계속됐다. 옥상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세 개의 보조키가 달린 육중한 철문이 있었다. 보조키 중 두 개는 최근에 새로 단 것 같이 보였다. 꽤 오래된 문이었다. 활짝 열려있었다.

"바깥 문 닫고 와요." 그녀가 말했다.

'끼이이이이익.' 기름칠이 필요한 철문이었다. 이 정도로 육중한 문을 부드럽게 유지하려면 잔손질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은 처음부터 주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평상도 놓여있었다. 빨랫줄을 걸어둔 철봉이 있었다. 마당을 닮은 옥상을 가로지르면 세로로 넓은 집이 있었다. 일자로 누워있는 집이었는데 그녀는 오른쪽 끝 방에서 지내는 것 같았다. 다른 방엔 인기척이 없었다.

"라면 좋아하죠? " 그녀가 물이 끓기 직전인 냄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좋아합니다. "

"몇 개 드세요?"

"한 개요. "

"그냥 두 개 끓일게요. "

"아 네.."

재밌는 대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앞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배추김치는 꽃 무늬가 있는 금테를 두른 접시에 담겨 있었다. 김치를 씹으니 아삭아삭거렸다. 청량한 느낌이 드는 김치는 처음이었다.

"김치가 정말 맛있어요" 내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쵸!! 일층에 채소집 아주머니가 주신 김장 김치예요. 강씨 아주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를 담그세요." 그녀가 말했다.

"라면은 어때요? 제가 라면은 좀 끓여요. "

"오 정말 맛있어요. 꼬들꼬들하니 좋아요."

"그러면 좀만 뺏어먹을게요." 그녀가 밥 공기를 손에 쥔 체 말했다. 라면을 우물거리며 나는 그러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라면 몇 가닥과 국물을 떠 갔다. 마당 위 평상에 조용히 눈이 쌓이고 있었다.

"아저씨는 어디 살아요?"

"아 저는 저기 멀리 아파트 보이죠? 저 아파트 104동에 살아요." 우리는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빠르게 흘렀다. 내일 출근이 걱정됐다.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도서관이 갑자기 미워졌다.

"라면 잘 먹었어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해서요. "

"내 전화번호 잊지 않았죠?"

"네 잊지 않았어요. "

"집에 도착하면 전화하세요. 걱정되니까"

"전화할게요."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올려다보며 손인사를 건넸다. 내가 1층에 거의 다다랐을 때 철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차에는 어느새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선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기 직전에 내 심박수는 125 정도였던 것 같다. 통화 연결 신호음이 한 번 제대로 울리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 그녀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맞아요?"

"저 맞아요. "

"잘 들어갔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 제 전화가 늦었네요. 눈길이라... "

"근데 아저씨 라면 먹고 금방 자면 얼굴 더 커져요. 하하."

나는 눈이 쌓여가는 차 안에서 그녀는 선호 상가 옥상의 오른쪽 끝 방에서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