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여러 매력 중 하나는 꼼꼼함이다. 셀프 집수리 중에도 꼼꼼함은 빛을 발했다. 철거를 하면서 내 눈에는 폐기물로 보이는 것들도 나중에 쓸 수도 있다며 남편은 하나씩 분류 했다.
"버리면 쓰레기지만 놔뒀다 필요한 곳에 쓰면 환경오염도 막고 자원도 되는 거지요.
이거 폐기물 처리하면 다 땅에 묻어버리는 거예요"
셀프 철거도 힘든데 분류해서 정리하는 남편을 보며 '그냥 다 폐기물로 치우지. 자리만 차지하고 정리하려면 힘들게 왜 그러나' 싶을 때도 있었다. 쓰레기로만 보이던 폐기물이 시간이 지나 남편의 손 끝에서 집 안 곳곳에 재활용되는 모습을 보며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다. 이처럼 기존 집을 철거하면서 나왔던 폐기물의 재활용에 이은 다른 이의 집을 철거할 때 나오는 폐기물까지 재활용하기 위해 바빴던 하루의 기록을 시작해 본다.
셀프 집수리 과정에서 급한 곳 중 하나가 부엌이었는데 이사 후 1년이 넘도록 싱크대가 없이 살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남편이 생각할 때 비싼 싱크대 가격이 그중 하나였다. 우리 부엌 사이즈로 견적을 받아보니 최소 200부터 시작해 환풍기며 이런저런 옵션이 붙으면 가격은 더 올라갔다. 나무를 사서 직접 만들 경우의 자재비를 생각하는 남편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싱크대를 멋지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기다리는 시간 속 불편함을 넘어 수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시간은 생활비로도 연결이 되고 있기에 중고거래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키워드로 등록해놓고 보고 있었지만, 소식이 없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1층 거실과 부엌에 장판이 깔린 날 밤, 잠들기 전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자기야, 내일은 싱크대가 매물로 올라올 거예요"
다음날 이른 아침, 알림소리가 들려왔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의 작업으로 평소라면 일어나지 못했을 작은 소리 었는데, 나도 모르게 알림소리에 잠을 깨 핸드폰을 확인해 보는데 싱크대가 올라와있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남편을 깨워서 보여준 후 바로 구매의사를 전달하고 싱크대 해체를 위한 공구를 챙겨 이동했다. 철거 현장이기에 바로 방문을 하지 않으면 폐기물이 되어버린다.
철거를 하고 하나씩 1층으로 내린 후 화물차를 불러 집으로 돌아오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급하게 밥을 먹은 후 다시 공구를 챙겼다. 오전 싱크대 철거 현장에서 만났던 사장님이 오후에도 다른 아파트를 철거할 예정이니 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와보라고 이야기를 하셨기에 또다시 집을 나섰다.
오후 철거 현장에서는 붙박이장의 문을 분리했다. 신발장도 만들어야 하고 부엌에도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 활용할 수 있는 자재들이다. 그렇게 하나씩 분리를 해서 집으로 가져온 후 시계를 보니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 7시부터 움직였으니 한나절이 꼬박 걸린 셈이다.
장판 시공 후 넓고 깔끔해진 거실이 반가웠었는데 가져온 물건들로 다시 차 버렸다. 하지만, 이 복잡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부엌을 사용할 수 있겠다는 기쁨도 있지만, 남편의 따뜻한 한 마디가 고마웠다.
"역시 당신이 복이 있나 봐요. 이렇게 바로 필요한 물건이 나오고요."
"엄마가 고생 많이 했어. 다 잡아주고 도와주고...
두 번째 간 집에 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와서 싱크대를 철거하는데 그 아내분은 주머니에 손만 넣고 계셨는데 엄마는 굴뚝에 들어갔다 온 사람처럼 먼지투성이가 되는데도 도와줬다니깐...."
가장 바쁘고 고생했던 사람은 남편인데 자신의 힘겨움보다는 늘 나를 먼저 생각하고 아이들 앞에서도 표현해주는 따뜻한 사람, 남편의 이런 따뜻함은 어디에서든 빛을 발했다. 돈을 주고 사 오는 물건임에도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생각해서 간식거리를 사가는 사람, 판매를 위해 내놓은 물건이 아니기에 현장에 계시는 분도 이렇게 주실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니 자신의 생각을 전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파는 분 입장에서는 버리면 쓰레기이지만, 사용하는 제 입장에서는 가서 또 여러모로 잘 사용하니 그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감사한 일이지요"
사실 두 번째 현장의 물건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였는데 남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철거현장에서 물건을 가져온다는 이야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딸아이가 가져온 싱크대를 보고 한마디 했다.
"전 아예 못 쓸 정도의 싱크대일 줄 알았는데 디자인도 그냥 써도 될 정도인데요."
"그렇지?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멀쩡한데 집안을 다 뜯어서 수리하나 봐."
"자신의 취향으로 다 바꾸고 싶었나 보죠"
"그래. 그건 알겠는데...
환경문제도 생각해봐야지. 쓸만한 물건이지만 그렇게 뜯어내고 나면 다 버려지는 거거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면 필름지 작업이나 페인트 칠 등으로도 충분히 바꿀 수 있고..."
이렇게 또 생활 속에서 우리 부부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던 하루.
사는 (buy) 집이 아닌 사는 (live) 집, 화려함 대신 가족의 땀과 사랑이 깃들어 있는 집에 이어 우리 집 셀프 집수리의 모토가 이렇게 또 추가되었다.
버리면 쓰레기 다시 사용하면 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