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디악
영화 조디악은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한 여섯 번째 작품으로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디악 킬러의 연쇄살인은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 주로 젊은 연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졌는데 당시 수사기술의 부족, 증거물 부족 등의 이유로 끝끝내 미제사건으로 남아버렸다.
영화 조디악의 기본 폼은 여타 범죄 추리물과 같이 '범인 찾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태까지 흔히들 접해왔던 '셜록홈즈형' 추리물과는 다르다. 조디악은 셜록처럼 단순히 '객관적 물증'으로 추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닌 '부족한 물증'에 '합리적인 심증'을 덧대어 보다 몰입감 있게 추리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데이빗 핀처 감독의 세련되면서 절제미가 있는 탄탄한 연출력은 그러한 몰입감을 끝없이 팽창시킨다.
조디악을 보면 '거장은 프레임 속 공기까지 연출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관객들은 일순간 실제로 영화 속 공간에 있는 것만 같은 ,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기를 나눠마시고 있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 관객이라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했을 것이다. 주인공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마주한 순간, 관객 역시 주인공과 함께 심증뿐인 범인을 마주했고 또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조디악을 처음 만난 건 출처 없이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50선'에서였다. 아직까지도 누가, 무슨 기준으로 작성한 건진 모르겠으나 그 리스트는 영화를 쥐뿔도 모르던 당시 나에겐 바이블이었다. 독실한 신자가 된 난 맹목적으로 그 리스트 속 영화를 골방 같았던 첫 자취방에서 밤이 새도록 시청했다. 나중에 와서 확인해보니 그 리스트엔 데이빗 핀처의 영화가 무려 다섯 편이나 실려있었다. 세븐-파이트 클럽-조디악-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소셜 네트워크 까지. 물론 당시의 난 같은 감독일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리스트엔 감독 이름이 안 쓰여있으니 무슨 재주로 단번에 알아차렸겠는가. 리스트 작성자가 분명 지독한 데이빗 핀처 매니아였으리라 짐작해본다.
영화를 막 좋아하기 시작했던 21살에 나는 별생각 없이 세븐-파이트 클럽-조디악을 밤새 몰아봤다. 세븐과 파이트 클럽을 볼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동이 틀 무렵, 잠시 볼까 잘까 망설이다 튼 조디악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그래 이거야!'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내겐 '취향저격'이라 칭할만한 이렇다 할 영화가 없었다. 조디악은 내가 처음으로 '취향저격'이란 표현을 써가며 남들에게 추천하기 시작한 영화였다.여전히 나의 '영화 취향'을 명확히 어떤 것이라 정의 내리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간엔 분명 어떤 공통점이 존재한다.
나는 영화적 '변주'를 즐기는 편이다. 적절한 예외성은 늘 나를 흥분시킨다. 조디악처럼 탄탄한 연출에 적절한 장르 문법의 변주가 더해지는 경우에 특히나 더 그러하다. 조디악은 범죄 추리물이지만 장르에 비해 극의 속도감이 떨어지고 화려한 액션도 없다. 범죄를 과장하여 영화적으로 그려내지도 않고 범죄자에 어떤 캐릭터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 어느 추리물보다도 몰입감이 있다. 관객들은 조디악을 보는 내내 '때론 심증이 물증보다도 정확하다.'란 말을 몸소 체험했다. 단순히 주인공이 범인을 추격하는 걸 지켜본 것이 아닌 주인공과 함께 범인을 찾아낸 것이다. 범인 찾기를 오락이 아닌 '체험'으로 그려냈다는 점. 내가 조디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조디악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닮았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물증이 부족하여 사건이 미제로 남는다는 점, 그리고 심증이 가는 명확한 범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살인의 추억'을 재미있게 본 사람에게 나는 늘 '조디악'을 추천한다. 이야기만 들었을 땐 굉장히 비슷할 것 같지만 다 보고 나서는 굉장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두 감독의 다르지만 완벽한 연출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부디 두 작품 모두 즐기시길 바란다. 더불어 조디악이 입맛에 잘맞으시는 분들에겐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마인드 헌터'를 추천드린다. 데이빗 핀처가 직접 연출한 편도 있으니 빠지지 않고 보시길 바라며.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늘 즐겁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나도 모르는 영화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엔 뛸 듯이 기쁘기도 하다.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흥미롭다. 영화에 관한 고정적인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어쩌면 가장 사적이면서도 공감을 살 수 있는 키워드가 '취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디악을 시작으로 아주 사적인 취향으로써의 영화를 소개하는 '사적 영화 소비생활'을 연재해보고자 한다. 부디 즐겁게 글을 읽어주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