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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roo Jul 11. 2020

기생충, 어느 가족 그리고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여섯 살 무니의 세상, 매직캐슬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여섯 살 소녀 무니의 시선으로 미국 빈민층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의 배경은 월트 디즈니 월드가 위치한 전 세계적인 휴양지 올랜도 외곽에 위치한 낡은 모텔 '매직 캐슬'이다. 무니는 열악한 환경에서 친구들과 뛰놀며 살아간다.


그녀의 엄마 '헬리'는 홀로 무니를 키운다. 이제 갓 22살이 된 헬리는 늘 돈에 쫓긴다. 그녀는 한 달 월세를 내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무니가 살아가는 모텔의 유일한 어른은 모텔 매니저 '바비'뿐이다. 바비는 늘 걱정 어린 시선으로 모텔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지켜본다. 그는 늘 최악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그가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는 유일한 시간은 모텔 장부를 정리할 때뿐이다.


헬리와 무니, 그리고 모텔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늘 한 달짜리다. 한 달 월세를 내지 못하면 그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매직 캐슬'은 그들의 마지막 주거지인 셈이다.


영화의 말미,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헬리로 인해 무니는 매직캐슬을 떠나게 된다. 무니는 근처에 또 다른 모텔 '퓨처랜드'에 사는 친구 젠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젠시의 상상이다. 무니와 젠시는 손을 잡고 디즈니랜드로, 진짜 매직 캐슬로 뛰어간다.



B와 D 사이 C -왜 그들은 훔치는 삶을 살아가는가.


제목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7년 월트 디즈니 월드가 처음 건설에 착수할 때 불린 이름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집 없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인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빈부격차'를 배경적 아이러니로 담아냈다. 아이들의 꿈과 환상의 공간 디즈니랜드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홈리스 아이들의 삶.

한국의 '기생충', 일본의 '어느 가족' 그리고 미국의 '플로리다 프로젝트'까지. 결국 같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이 세 영화는 각국의 '빈민층'의 삶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빈민층의 삶은 쉽게 말해 B와 D 사이에 C가 생략된 삶이다. 이들의 삶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세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남의 것을 '훔치거나 훔치려 한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오사무는 어린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며 도둑질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생충에선 기택의 가족들이 단체로 박사장네 집을 탐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헬리는 관광객의 투어 팔찌를 훔친다. 그리고 모두가 말미엔 선택이 아니었던 선택들로 인해 처벌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훔친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 그들은 훔칠 수밖에 없었는가.'이다. 생계형 범죄란  그대로 '살기 위해서 저지르는 범죄' 뜻한다. 생계형 범죄자. 현대판 장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그대로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친다.


최근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남성이 1년 6개월 구형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은 상황에서 열흘 동안 굶다 5000원 치 달걀을 훔쳤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상황적 맥락을 배제한 채 그의 전과를 들추며 그를 상습적인 범죄자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들이 생략한 상황적 맥락은 이렇다. 그는 생계가 막막하여 절도를 저질렀고 총 13년 감옥에 있었다. 출소 직후 무보험 차량에 치여 장애를 얻은 그는 보상금을 받지 못해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의 통장을 팔았다. 그렇게 그는 겹겹이 쌓인 생계형 범죄로 가중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주거가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사회는 결국 모든 선택의 책임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심지어 선택지조차 만져본 적 없는 이들에게마저 그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왜 그들은 훔치는 삶을 살아가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음표이지 맞춤표가 아니다.



주거빈민 228만, 그리고 아이들.


현재 정부가 정한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거나 지하, 옥상,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주거 빈곤 가구는 2019년 기준 약 228만여 가구이다. 이는 전체 가구에 12%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 중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서 자라는 아동은 78만 9000명, 주거빈곤 가구에 방치된 아동은 약 129만 명이다. 최저주거기준이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기준'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4인 가구는 '주거면적 43미터 제곱'에 방 3개를 최저 기준으로 잡고 있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기생충'의 기택, 모텔에서 홀엄마와 살아가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 방이 없어 벽장에서 잠을 자는 '어느 가족'의 쇼타. 특히 '어느 가족'과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어린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더욱 영화적으로 비슷한 지점들이 많다. 영화 속 아이들은 도저히 상식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다. 굶주림은 물론이고 범죄 상황에도 쉽게 노출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모텔 매니저 바비는 무니에게 접근하는 수상한 남자를 쫓아낸다. 영화에선 노골적으로 그 남자의 정체가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는 쉽게 그가 '아동성애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살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의 결핍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보호망에서 벗어난, 말 그대로 울타리 밖에서 살아감을 뜻한다.

무니는 쓰러진 나무를 보며 친구 젠시에게 말한다. '쓰러진 나무도 계속 자란다.'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또 자라난다. 중요한 것은 쓰러진 나무는 결코 위로는 자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무를 일으켜줘야만 나무는 위로 자랄 수 있다.


혐오가 향하는 곳


영화 '기생충'의 박사장은 기택네 식구들에게서 나는 불쾌한 냄새에 코를 틀어막는다. 그는 그 냄새를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혐오는 늘 밑으로 향한다. 동정의 대상이던 가난은 혐오의 심볼이 되었고 넘볼 수 없는 부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늘 혐오스럽다.

그들은 아이들을 앞세워 동냥을 하고 남의 것을 훔치며 더러운 행색으로 거리를 떠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음표이지 맞춤표가 아니다.

왜 그들에겐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가?





출처:


http://naver.me/GdWUMxxz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0538628&memberNo=21967255&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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