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스 갬빗
퀸스갬빗은 성장물이 아니다. 어린 주인공이 성공하는 이야기엔 으레 성장물이란 수식이 따라붙곤 한다. 미숙한 상태가 성숙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성장이라 하니 크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럼에도 퀸스갬빗만큼은 성장물이라 뭉뚱그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드라마의 오프닝과 맞닿아있다.
1967년 파리, 베스는 엉망진창인 호텔방을 뒤로하고 서둘러 대국장으로 향한다. 대국장 문을 열기 무섭게 카메라 플래시가 주의를 주듯 요란하게 그녀의 얼굴을 덮친다. 그녀는 애써 표정을 지우며 러시아 챔피언 보르고프 앞에 선다. 베스는 그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착석한다. 카메라는 보르고프의 얼굴과 허술한 가면을 쓴 앳된 베스의 얼굴을 번갈아 비춘다. 베스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보르고프와 눈을 마주한다. 그런 베스의 얼굴 위로 어린 베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카메라는 베스가 마주한 상대의 외피를 벗겨 본질을 비춘다. 오버랩 된 장면에서 어린 베스는 어수선한 사고현장을 응시하고 있다. 여러대의 차가 놀이동산에 범퍼카마냥 이차선 도로 위에 어지럽게 흐트러져있다.
베스의 결핍은 거기서 시작됐다. 베스는 동반자살을 시도한 엄마의 차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죽으려 한 것도 살아남은 것도, 이것도 저것도 그녀가 원한 결과는 아니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날 베스의 삶은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차선 도로에 내동댕이쳐졌다는 거다. 성장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퀸스갬빗을 성장물이라 할 수 없는 이유는 퀸스갬빗이 폭력에서 시작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겪은 폭력은 깊던 얕던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생채기를 남긴다. 베스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디까지나 어릴 적 그녀가 겪은 폭력에서 기인한 결핍의 투영일 뿐, 그녀의 미숙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단순히 미숙하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일들이 아니란 거다.
이 드라마를 성장물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이야기는 빛을 잃고 구태의연해진다. 보르고프와의 세 번의 대국은 미숙한 천재소녀에서 그랜드마스터로 거듭나는 성장의 기승전결로, 베스의 중독은 어린 소녀의 방황으로, 양어머니의 죽음은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그렇게 오직 성장이란 결과를 위한 당연한 장면들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퀸스갬빗을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본다면 드라마 속 다양한 장치들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베스에게 체스는 주체성의 대체품이다. 베스는 한줄기 빛도 허용되지 않는 음습한 고아원 지하에서 체스와 운명처럼 조우한다. 어린 베스의 눈에 비친 체스의 세계는 명쾌했다. 체스의 세계는 매 순간 선택으로 구축되고 무너진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었던 어린 소녀가 매 순간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계에 매료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베스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체스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고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안정감을 준다고. 이런 체스가 주체성의 발현이 아닌 대체품인 이유는 베스가 체스에 있어서도 온전한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스는 승패가 걸린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먹게 된 마약성 안정제에 힘을 빌린다.
보르고프와의 대국은 베스의 결핍을 가시화한다. 보르고프는 이상적인 존재다. 그에겐 혈연으로 이어진 완전한 가족이 있으며 그는 체스로도 이미 한차례 큰 성공을 거뒀고 인격적으로도 흠이 없다. 그러면서도 베스의 결핍을 누구보다도 잘 꿰뚫고 있다. 그에 비해 베스는 모든 면에서 불온전하다. 이 둘의 대비가 극대화되는 건 베스가 멕시코시티 동물원에서 우연히 보르고프를 마주친 장면에서다. 양엄마 엠마의 성화 못 이겨 홀로 동물원을 찾은 베스는 여유롭게 가족과 함께 동물원을 둘러보는 보르고프와 마주친다. 호텔방에서 체스에 온 정신을 쏟던 자신과 확연히 다른 모습에 베스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보르고프와의 대국에서 베스를 비추던 화면은 베스의 어릴 적 얼굴로 오버랩된다. 베스는 그와의 대국에서 자신의 결핍을 마주한다.
이 이야기는 고아원에서 시작됐다. 엘마의 죽음으로 방황하던 베스는 친구 졸린과 함께 고아원을 찾는다. 변하지 않은 고아원 풍경 속 다리를 절뚝이는 나이 든 원장의 모습을 보며 베스는 자신이 더 이상 어릴 적 자신과 다름을 깨닫는다. 그리고 처음 체스를 만난 고아원 지하로 향한다. 그곳에서 베스는 자신에게 체스를 가르쳐준 샤이벨의 흔적을 발견한다. 지하 벽면에 붙어있는 수많은 자신의 기사들. 기억하고 싶지 않던 결핍의 공간에서 베스는 자신의 삶과 마주했다. 결핍의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삶의 순간들을 말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베스는 처음으로 선택을 한다. 그녀는 보르고프와의 마지막 승부를 위해 러시아로 떠난다.
베스는 다시 보르고프 앞에 앉아있다. 보르고프와의 대국에서 베스의 얼굴은 더 이상 어릴 적 베스의 모습으로 오버랩되지 않는다. 베스는 오롯이 보르고프를 응시한다. 대신 카메라는 베스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영화 내내 베스를 쫓던 카메라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베스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면밀히 담아낸다. 그렇게 베스는 체스판 밖 세상으로, 자신의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트라우마의 극복을 성장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성장이란 단어가 갖는 긍정성에 도취되어 누군가의 결핍을 미숙함이라 치부하는 실수를 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