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육감'을 버리고 '배움청장'으로 바꾸자!

줄세움에서 나세움으로 배움 시대를 여는 길

모둠슬기꽃, 곧 집단지성의 꽃이 피어나려면 무엇이 먼저 바탕에 있어야 할까.

그렇다. 뜻배움이 일어나야 한다. 뜻배움은 언제나 뜻물음에서 비롯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살아왔다.

그러나 ‘교육’과 ‘학습’이라는 틀 속에서 정작 배움을 놓쳤다.

왜 배움인지, 무엇이 배움인지, 어떻게 배울 것인지조차 묻지 않은 채 교육이라는 이름의 제도만 붙들고 있었다.


2026년에서 2030년까지, 나세움 배움 체제 전환이 절실한 길목에서도 여전히 ‘교육감’이라는 20세기 틀에 꽃혀 있는 뽑바라기(후보자)들이 많다.

21세기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교육백년대계’를 외치며 이미 몸으로 겪어 온 국민교육헌장(1968~1994)이나 국민학교(~1996)의 모순을 되풀이하고 있다.

‘교육대상’으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존재인 배움임자, 곧 씨알로 거듭나야 한다.

그때 비로소 새롭고 놀라운 힘이 솟아난다.

국민교육헌장이 1994년에 사라지고, 국민학교가 1996년에 공식적으로 초등학교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국민주권’을 외치며 국가가 정해 준 틀 안에서만 배움이 뒷전인 채 교육을 말하고 있다.


‘교육개혁’, ‘혁신교육’, ‘자기주도학습’ 같은 말들이 넘쳐나지만

그 말들 대부분은 빌려온 말, 가져다 붙인 말이다.

말과 글은 한때 빌린말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꾼 돈을 갚듯이 그 빌린말을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비로소 우리 말, 우리 뜻, 우리 배움이 제 힘을 낸다.

베끼고 빌리고 꾸며 따라가기만 바빠서는

제대로 참삶을 누리며 산다고 할 수 없다.


‘교육’이라는 틀은 나를 길들이고, ‘학습’이라는 말은 나를 따라쟁이로 만든다.

이제는 그 틀을 벗어야 한다.

아직도 배움은 교육과 학습이란 낡은 제도에서 방해 받고 있다.

배움은 언제나 나로부터, 그리고 우리로부터 시작된다.

제대로 오래 꾸준히 가려면, 무엇보다 내가 살아 있어야 한다.

죽은 나를 스스로 살려 ‘미운 오리새끼’가 아닌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나듯,

우리는 ‘줄세움’이 아닌 ‘나세움’으로 체제를 전환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제는 '교육감'이 아닌 ‘배움청장’으로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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